리암 갤러거와 허지웅, 걸출한 두 인물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가. 나는 찾을 수 있다. 아니, 나만 찾을 수 있다. 왜냐면 둘은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공통점을 가졌으니까. 그러니 이 공통점은 나만 찾을 수 있다. 이 공통점 때문에 내가 지금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에게 감사를 전한다.
햇수로 11년째 오아시스 팬을 자청하고 있다. 일전에도 썼듯이 갤러거 형제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그들의 음악에 매료되었다. 두 형제 중 누구를 고를 거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리암을 고를 것이다. 진짜 락스타라고 해야 할까. 언행은 둘 다 거칠지만 나에게는 리암이 더 락스타 같다고 느껴졌다. 잘생긴 외모와 목소리, 걸음걸이, 무대에서의 퍼포먼스까지 진정한 락스타다. 노엘이 만든 오아시스의 노래들도 결국 리암이 불렀기 때문에 완벽해진 거라고도 생각한다. 노엘이 만든 아름다운 멜로디도 청아한 목소리를 가진 리암이 쟈니 로튼과 유사한 창법을 더했기 때문에 풍성해진 것이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엄마가 잔소리 했던 팔자걸음도 리암을 보고 나서는 부끄럽지 않게 여길 수 있게 됐다. 한국나이로 48세를 통과하고 있는 그는 지금도 끝내준다.
허지웅 작가는 2015년에 알게 되었다. 마녀사냥을 통해 알게 되었고 호기심에 그가 쓴 글을 읽었다가 덕후가 되었다. 여러 구설수, 독설 등으로 숱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던 작가지만 그의 글은 아주 따뜻하다. 덤덤한 문체로 써내려가는 글 사이에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다. 그 점이 그의 글을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하지 않았나 싶다. 더불어 그의 매니아틱한 취향과 그에 관한 지식과 주관이 나를 더 사로잡았으며 동시에 에세이까지 훌륭하게 써내니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단언컨대,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허지웅 작가 때문이다.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영화에도 능하며 에세이도 훌륭하게 써내는 사람, 닮고 싶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포스트 허지웅이 되고 싶다.
이 둘의 닮은 점은 할 말을 묵혀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 밖으로 다 꺼내고 말아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나는 그 점을 아주 존경한다. 비록 나는 할 말 다 하고 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이 하고 사는 편인데 둘에 비하면 풋내기 정도 되는 것 같다.
세상에 할 말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저 둘에게만 유난 떠느냐 라고 묻는다면 온정의 차이라고 말할 것이다. 둘은 할 말을 다 하고 살아서 까칠하고 냉소적으로 비추어지지만, 사실 온정이 가득한 사람들이다. 리암 갤러거의 가사, 허지웅 작가의 글. 그 속에는 아주 많은 따뜻함이 있다. 과장하면 일종의 순수도 조금 있는 것 같다. 정의의 사도라고 하면 얼추 맞을까.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삶의 어느 시점부터 나는 조금 더 대담해졌다. 아마도 오아시스의 음악을 듣기 시작한 때가 아닐까. 가슴에 희망과 꿈을 안고 살아가는 것도, 달려가는 것도 모두 리암 갤러거와 허지웅 작가에게서 배운 것이다. 이 둘이 내 삶에서 없다고 생각하면, 나는 아마 그저 효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놈으로 살지 않았을까. 리암 갤러거와 허지웅 작가를 알고 사는 지금은 꿈도 꾸고 효자도 되고 싶은 놈이다. 일면식도 없는 둘에게 나는 평생 존경과 감사를 보내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