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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steuryouth Nov 26. 2019

당신과 나 사이의

엄마 생일날 일하다가 쉬는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아빠와 누나, 셋이서 외식을 하고 있다길래 아빠와도 잠깐 통화를 했다. 아빠는 엄마 생일이라 전화했냐고,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굶지 말라는 말과 함께 통화를 마쳤다.


그 통화는 이상했다. 생일이라서 전화했냐고, 고맙다고 하는 건 으레 내 친구들에게나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늘 그래왔다. 가족의 생일에 내 친구들이 전화하면 아빠가 늘 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내가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단지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전화해줘서 고맙다는 말 뿐이었지만 아빠와 나 사이의 거리감이 아직도 좁혀지지 않음을 느꼈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대화가 적다. 필요한 말만 주고 받을 뿐이다.


“밥 먹었냐?”


“네, 먹었어요.”


실제로 나와 아빠가 주말에 단 둘이 집에 있을 때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저 두 문장으로 끝난다. 무어라 더 말을 붙여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만, 힘든 일이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대화를 지속할 수 있을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것이 아빠와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게 한다. 엄마의 생일에도 통화하는 내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계속 고민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거리감을 느낀 채 통화를 마무리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꽤 많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아빠도 대한민국의 남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군대에 관해서라면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으니 우리는 꽤 많은 군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전역을 함과 동시에 끝났다. 그래도 그 덕에 우리 둘 사이의 대화가 조금 늘어나긴 했다. 괜히 한 마디 덧붙이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 나가지만 금세 끝난다. 최근에 아빠와 길게 대화를 나눈 건 이곳으로 오기 전의 일이다. 퇴근을 하고 엄마와 아빠, 나 셋이서 장어를 먹었다. 그 때 아빠에게 프랑스로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약간의 다툼이긴 했지만 우리 둘이 27년간 나눈 대화 중 가장 긴 것이었다. 가장 길게 대화를 나눈 것이 언쟁이라는 것이 슬프다.


아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빠도 나처럼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대화를 많이 하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이 따위 고민을 하고 있는 나는 참 못난 아들이다. 27년을 함께 살면서 아빠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이 갖고 싶은지, 어릴 적 아빠의 꿈은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고 사는 아들이 바로 나다.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 우리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안주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아빠가 손찌검을 한 적도, 크게 화를 낸 적도 없는데 왜 우리는 친하지 않을까. 어릴 땐 아빠 무릎에 곧잘 앉았는데 지금은 왜 이럴까. 어쩌면 나는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우리 아빠를 한 번도 이해하려 한 적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늘 아들이자 젊은 세대의 나를 이해해주길 바랐던 게 아닐까. 27년을 살아도 아빠에게 미숙하고 삶에 미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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