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일날 일하다가 쉬는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아빠와 누나, 셋이서 외식을 하고 있다길래 아빠와도 잠깐 통화를 했다. 아빠는 엄마 생일이라 전화했냐고,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굶지 말라는 말과 함께 통화를 마쳤다.
그 통화는 이상했다. 생일이라서 전화했냐고, 고맙다고 하는 건 으레 내 친구들에게나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늘 그래왔다. 가족의 생일에 내 친구들이 전화하면 아빠가 늘 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내가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단지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전화해줘서 고맙다는 말 뿐이었지만 아빠와 나 사이의 거리감이 아직도 좁혀지지 않음을 느꼈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대화가 적다. 필요한 말만 주고 받을 뿐이다.
“밥 먹었냐?”
“네, 먹었어요.”
실제로 나와 아빠가 주말에 단 둘이 집에 있을 때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저 두 문장으로 끝난다. 무어라 더 말을 붙여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만, 힘든 일이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대화를 지속할 수 있을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것이 아빠와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게 한다. 엄마의 생일에도 통화하는 내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계속 고민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거리감을 느낀 채 통화를 마무리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꽤 많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아빠도 대한민국의 남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군대에 관해서라면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으니 우리는 꽤 많은 군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전역을 함과 동시에 끝났다. 그래도 그 덕에 우리 둘 사이의 대화가 조금 늘어나긴 했다. 괜히 한 마디 덧붙이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 나가지만 금세 끝난다. 최근에 아빠와 길게 대화를 나눈 건 이곳으로 오기 전의 일이다. 퇴근을 하고 엄마와 아빠, 나 셋이서 장어를 먹었다. 그 때 아빠에게 프랑스로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약간의 다툼이긴 했지만 우리 둘이 27년간 나눈 대화 중 가장 긴 것이었다. 가장 길게 대화를 나눈 것이 언쟁이라는 것이 슬프다.
아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빠도 나처럼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대화를 많이 하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이 따위 고민을 하고 있는 나는 참 못난 아들이다. 27년을 함께 살면서 아빠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이 갖고 싶은지, 어릴 적 아빠의 꿈은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고 사는 아들이 바로 나다.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 우리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안주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아빠가 손찌검을 한 적도, 크게 화를 낸 적도 없는데 왜 우리는 친하지 않을까. 어릴 땐 아빠 무릎에 곧잘 앉았는데 지금은 왜 이럴까. 어쩌면 나는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우리 아빠를 한 번도 이해하려 한 적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늘 아들이자 젊은 세대의 나를 이해해주길 바랐던 게 아닐까. 27년을 살아도 아빠에게 미숙하고 삶에 미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