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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steuryouth Dec 19. 2022

어떻게든 영원히, <헤어질 결심>

사랑은 다양한 방식으로 생겨나고 무너진다. 애당초 생겨나지 말았어야 할 사랑도 있다. 이를테면 해준과 서래의 사랑처럼. 사랑으로 인해 점차 붕괴되는 해준과 반대로 타오르는 서래의 이야기는 다른 의미로 가슴이 저린다. 과연 이래도 되는 건가? 이런 방식의 사랑이 있다고? 꽤 많이 엇나간 그들의 사랑은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다.


부산에서 형사로 근무 중인 해준(박해일 분)은 삶에 빈틈이 없다. 탁월한 실력 덕분에 된 최연소 경감, 원전에서 근무하는 아내, 공부 잘하는 아들까지 완벽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그는 형사로서 살인사건의 해결을 즐긴다. 미결로 남은 사건들은 그를 잠도 못 자게 괴롭힌다. 살인사건 없이 조용한 날들을 보내던 중 구소산 정상에서 사람이 추락한 사망사건이 발생한다. 해준은 이 사건으로 인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게 된다. 


남편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슬픈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 서래를 해준은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를 피의자로 의심하며 조사도 하고 잠복수사도 한다. 서래를 옆에서 지켜보는 동안 해준에게 의심이 아닌 다른 마음이 치솟는다, 바로 사랑.


해준의 마음을 처음 흔드는 씬이 있다. 경찰서에서 처음 대면한 날, 남편의 사망 상태를 말씀으로 확인할 건지 사진으로 할 건지 묻는 해준의 질문에 서래는 말씀이라고 답했다가 사진이라고 바꾼다. 그때가 처음으로 해준의 마음이 움직이는 씬이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느낀 것이다. 조사 중 비싼 초밥을 사준 것과 잠복수사 중에 식후 흡연은 몸에 나쁘니 하지 말라는 음성 메모가 그의 움직인 마음을 보여준다. 


서래의 마음도 움직인다. 그의 마음을 갖고 싶다고 남긴 음성 메모, 해결된 사건의 사진을 다 떼어내는 것, 해준이 잠들기 위해 숨소리를 맞추는 것 모두 서래의 움직인 마음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후에 이포로 이사해서 다시 해준을 만나는 것은 서래의 사랑이 많이 부풀어져 있음을 알려준다.


서래가 남편의 사망사건의 가해자로 밝혀지는 증거물인 핸드폰을 해준은 아무도 찾지 못하게 바다 깊은 곳에 버리라고 한다. 이때 서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사랑한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서래에게 사랑한다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서래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동시에 해준의 사랑은 이때 끝난다. 자존감으로 일을 하며 살아왔던 해준에게 피의자의 증거를 인멸해주며 사랑이 샘솟았던 것이 그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서래가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해준은 붕괴되었으며 사랑은 끝났다. 


서래에게 해준은 나를 온전하게 사랑해주는 사람이었다. 전남편인 기도수(유승목 분)는 서래의 몸에 타투로 본인의 이름을 새길 정도로 소유욕이 강한 사람이었고, 그후의 남편 임호식(박용우 분)도 방에서 담배 피우는 것 하나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해준은 달랐다. 서래를 위해 할 줄 아는 중국음식은 없지만 유일하게 아는 것이라며 볶음밥을 해주었고 식후 흡연은 위험하다며 건강을 걱정해주었다. 게다가 사랑한다고도 했다. 풍파를 거쳐 밀항해 들어온 한국에서 개차반들만 만나다가 해준을 보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래는 그렇게 해준에게 빠졌다.


이포에서 다시 만난 해준은 서래를 강경한 태도로 대한다. 서래가 살인사건의 명백한 가해자라고 확신하며 증거를 찾아 나선다. 끝없이 의심하는 해준을 보면서 서래는 무너져간다. 해준의 미결 사건으로 남고 싶었다. 해준은 미결 사건의 현장 사진을 집 벽 한 켠에 붙여두고 계속 생각하기 때문이다. 잊지 않고 머리를 싸매느라 잠들지 못하는, 사건을 쉴 새 없이 생각하는 해준에게 영원히 미결 사건으로 남고 싶었다. 나를 평생 잊지 않고 생각하길 바랐다. 호미산에서도 그를 밀지 않은 것은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었다는 원전 관련 드라마를 보면서 서래는 주인공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포에 와서 살인을 저지르지 않으면 해준이 서래를 관심 갖고 만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말이다. 


죽음으로써 해준의 미결 사건으로 남는 것은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서래의 진한 마음이다. 이포에 와야만 하는, 사건을 저질러야만 해준을 만날 수 있는 서래에게 죽음은 영원히 그에게 기억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증거가 자명해서 서래가 체포되어 사건이 해결되면 해준은 서래를 점점 잊어갈 것이다. 서래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해준의 기억에 서래는 사라질 테니까.


사랑의 영원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으며 죽는 것, 서래의 방식은 그러하다. 사랑을 위해 기꺼이 나를 내놓으며 불사지르는 것. 그것이 서래가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조금 두렵기는 한 모양이다. 모래를 퍼내어 구덩이를 만들고는 그 속에 들어가 고량주를 들이킨다. 아무래도 죽음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결의를 다지기 위한 고량주일 수도 있다. 


사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것, 서래에게 사랑이라는 건 그 정도의 일이다. 목숨을 걸어도 아깝지 않은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원히 기억되기 위해 충분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서래가 생각하는 사랑이다. 비록 영화에서는 서래가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않지만 서래는 해준의 마음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미결 사건으로 남게 되어 서래의 사진이 해준의 집 벽에 붙여져 있을 것이며 해준은 그를 떠올리다 잠에 들지 못할 것이다. 서래의 사랑은 그렇게 지속될 것이다. 


“난 당신의 영원한 미제 사건이 되고 싶어요.”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을 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이 나게 되었고 당신의 사랑이 끝이 나자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서래의 사랑은 그렇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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