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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steuryouth Dec 19. 2022

운명을 가늠할 순 없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왜 그랬는지 알려고 하면 힘들다. 그냥 그런 것이다. 운명 역시 마찬가지다. 그냥 그런 것이다. 운명은 그저 다가온다. 어떤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다. 헤어진 애인을 다시 만나는 것도, 지나치는 누군가가 눈에 띄는 것도, 매일 같은 시간에 카페에서 어떤 사람을 마주치는 것도 그냥 그런 것이다. 이유는 없다. 운명을 믿는가. 그렇다면 여기 운명에 관한 영화가 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다.


샘의 아내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조나와 둘이 남겨졌다. 아내가 떠난 후 샘은 제대로 살지 못한다. 샘은 아내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시애틀로 이사한다. 시애틀에서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시애틀에서의 삶도 만만치 않다. 아내의 흔적을 떠나 살면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여전히 아내가 보고 싶다. 밤에 잠도 못 잔다. 조나는 그런 아빠가 걱정되어서 사연을 들어주는 라디오에 전화를 건다. 아빠가 온전하게 살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한다. 얼떨결에 라디오 진행자와 통화를 하게 된 샘은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절절하게 이야기한다. 이 사연은 엄청난 인기를 끈다. 라디오를 통해 사연을 들은 애니는 샘이 운명의 남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운명의 남자를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애니와 그저 말만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샘의 일상은 빡빡하기만 하다. 약혼까지 한 남자가 있는 애니와 새로운 여자를 만나지만 조나가 싫어해서 힘든 샘. 애니와 샘은 결국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영화란 게 다 그런 것 아닌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영화 같은 영화다. 현실에서 마주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다시 묻겠다. 운명을 믿는가? 그렇다면 이미 운명을 마주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다가올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가? 운명을 믿는 어떤 이는 로맨틱한 환상이 가득 차 있을 테고 믿지 않는 이는 환상 따위 개나 줘버리라며 심드렁할 것이다. 운명이라는 건 존재하는 걸까. 믿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할까.


운명 따위는 믿지 않았던 애니는 샘이 내내 신경 쓰인다. 결국 그는 월터와의 파혼을 감행하면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향하고 샘과 만난다. 운명의 조력자가 있다. 전망대 관람 시간이 지났지만 들어가기를 허락한 경비원과 가방을 두고 온 조나가 바로 그 조력자다. 그중 조나는 가장 듬직한 조력자다. 방송국으로 전화를 걸었으며 편지도 보낸다. 결정타로 가방까지 두고 온 것은 애니와 샘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조나가 존재하는 것처럼 어쩌면 운명이란 건 둘 사이의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허술한 틈을 완벽하게 메워줄 조력자가 있어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대개 운명이란 건 설명할 수 없다. 그냥 그런 것이다. 설명할 수 있는 운명이 있다면 그건 운명이 아니다. 운명보다 필연에 가까운 것이다. 어느 날 비행기 옆자리의 앉은 사람과 사랑에 빠진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다 보니 그날, 그 시간에 그 비행기의 그 자리를 택한 것이고 하필 상대가 옆에 있던 것뿐이다. 이걸 ‘어쩌다 보니’보다 더 적당한 단어로 설명할 수는 없다. 어쩌다 보니 그런 것이고, 어쩌다 보니 사랑에 빠진 것이다. 게다가 그 상대와 공항에 도착해서 향하는 목적지까지 같다면, 이건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운명이란 건 설명할 수 없다.


운명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 오는지도 알 수 없다. 운명이 언제 오는지 예측 가능해서 대비가 가능하다면 그게 운명일까. 선전포고하는 전쟁과는 다르다. 알 수 없다. 내 운명의 상대를 비행기에서 마주칠지, 어느 카페에서 만날지, 헬스 클럽에서 만날지 알 수 없다. 예측이 불가하니 그저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애니도 월터가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러다 샘을 발견했고, 운명을 받아들인 것뿐이다.


다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지도 모르는 운명을 기다리면서 발을 동동 구를 필요는 없다. 보통 운명이란 건 불쑥 찾아온다. 만약 당신이 운명을 놓친다면 한동안 끙끙 앓을 것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마주하다 보니 그 충격이 큰 것이다. 쉽게 잊을 수 없다. 다가오는 운명을 강하게 붙들어 잡아야 한다.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사랑은 상처에 생긴 딱지와 같고 운명은 LP바에서 흘러나오는 잘 모르지만 좋은 음악과 같다. 사랑은 떼어내려 하면 아프고 피가 나는 것이고 운명은 들을 땐 좋았는데 어떤 노래인지 찾지 않아서 다음 날 기억해내려고 애쓰는 것이다. 잊지 않으려면 그 순간에 꽉 잡아야 한다. 얼른 어플을 켜서 스피커에 스마트폰을 가져다 댄 후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고 일어나서 후회한다. 운명이 그렇다. 다가오는 순간에는 너무 좋지만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하는 것이다. 사랑이고 운명이고 때를 놓치면 아픈 것이다.


애니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뛰어간 것도, 샘이 조나를 찾으러 비행기를 탄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그 둘을 만나게 했다. 운명인 것이다. 운명이 아니면 그 둘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물론 영화는 그 둘이 이야기가 끝난 후에 행복하게 연애를 했는지 어쨌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그 둘이 결혼도 하고 조나랑 셋이 행복하게 잘 살았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래도 운명을 만나 영화 같은 사랑을 하는 사이에는 해피엔딩을 쥐어주는 게 가장 좋지 않은가.


왜 나는 연애를 못 하고 있는지, 내 운명의 상대는 어디에 있는지 걱정하는 모든 당신들에게 기다리는 것보다 좋은 건 없다. 만나려고 애쓴다고 다가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웬만한 일에는 때가 있다. 때를 기다리다 보면 당신도 영화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운명을 만나고 영화 같은 사랑을 하는 건 당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 운명은 애쓰지 않아도 찾아오지만 사랑을 하는 건 당신이 쟁취해야 할 일이다. 놓치지 말라. 놓치고 나서 울고불고 후회하지 말라. 다가올 때 꽉 붙잡아야 한다.


뭐랄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도저히 상상해본 적이 없는 사랑을 꿈꾸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라디오가 진행되는 그 시간에 마침 운전하고 있던 애니처럼, 왠지 전망대에 샘이 있을 것 같아서 파혼하고 뛰어간 애니처럼 꿈꾸다 보면 운명이 나타나지 않을까. 어느 날 문득 찾아올 운명의 상대를 위해 마음의 준비라도 해보자. 시애틀이 아닌 어디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당신이라고 영화 같은 사랑을 하지 못할 건 아니니까, 우리는 모두 다 가슴 안에 뜨거운 무언가를 가지고 살아가니까. 그 뜨거운 무언가를 잊지 말고, 놓치지 말자. 생각보다 우리 가슴 안의 사랑은 로맨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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