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크 (1991)
가끔은 최선을 다 해도 결과물이 애매할 때가 있다. 갖은 재료를 아끼지 않은 결과 네 맛도 내 맛도 아니게 된 겉절이, 온 마음을 담아 직접 그린 흉물스러운 초상화, 밤새 고민해 썼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감이 안 잡히는 원고 같은 것들.
<후크>(1991)가 딱 그런 작품이다. 여러 조건만 놓고 보면 이 작품은 당연히 걸작이 되었어야 했다. 로빈 윌리엄스와 더스틴 호프만, 줄리아 로버츠, 밥 호스킨스, 매기 스미스 같은 A급 스타들로 가득한 캐스팅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을 대놓고 노린 개봉 일정, J.M.배리의 <피터팬> 원작에, 심지어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다.
그런데 결과물은, 영 뜨뜨미지근하다. (2019년 12월 현재 <후크>의 로튼토마토 지수는 26%다.)
줄거리는 이렇다. 가족에게 무심한 M&A 전문가 피터 배닝(로빈 윌리엄스)은, 고아인 자신을 거두어 준 장조모 웬디(매기 스미스)를 만나러 가족과 함께 10년만에 런던을 방문했다가 아들과 딸을 납치당한다.
아이들을 찾고 싶다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유괴범 후크(더스틴 호프만)의 편지를 받고 망연자실하던 피터는, 자신을 찾아와 ‘네가 피터 팬이었다’고 말하는 팅커벨(줄리아 로버츠)의 인도를 받아 네버랜드로 돌아간다.
아이들의 신변을 걸고 후크와 재대결을 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딱 3일. 그 3일 안에 피터는 세파에 찌든 마음을 벗고 다시 순수했던 피터 팬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뭐가 문제였을까? 스필버그는 피터 역할에 마이클 잭슨을 캐스팅하고 싶었지만, <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984)을 비롯한 다른 작품들을 만드느라 타이밍을 놓쳤다. 자신과는 처음 작업해보는 로빈 윌리엄스를 섭외하는데 성공했지만, 주연 캐스팅이 다가 아니었다.
스필버그는 대본에 확신이 없었고, 배우들은 협조적이지 않았다. 아역 배우들은 좀처럼 스필버그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고, 내내 혼자 그린스크린 앞에서 연기해야 했던 줄리아 로버츠는 그 스트레스를 호소하다가 급기야 개인사를 이유로 촬영장을 이탈했다.
제작비는 예상했던 것의 두 배 가까이 상승했고, 촬영기간도 예정치의 두 배를 훌쩍 넘겼다. 스필버그는 영화에 대한 확신을 잃어갔다.
만든 사람부터 확신이 없었으니, 최선을 다했다 한들 그 결과물이 신통했을 리 없다. 당시 돈으로 전세계 흥행수익 3억 불을 기록했지만, 전성기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순 제작비 8천만불을 써가며 만든 영화치곤 실망스러운 기록이었다.
비평은 더 안 좋았다. 어른들의 눈에 ‘이미 어른이 되었음에도 성장을 거부하며 유아기로 퇴행하는 성인 남성’은 다소 징그러웠고, 아이들의 눈에 144분이라는 러닝타임은 길었다. 결과물에 실망한 스필버그는 영화 <링컨>(2012)을 홍보하러 출연한 BBC 라디오 토크쇼에서 공공연하게 말했다.
아직도 그 영화를
안 좋아하는데,
언젠가 다시 보게 되면
좋아할 수 있음 좋겠네요.
결과물이 애매하니 얻은 것도 없는 영화인 걸까? 적어도 스필버그에겐 그렇지 않았다. 2014년 로빈 윌리엄스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이후, 스필버그는 추모의 의미로 오랫동안 숙제처럼 여기던 ‘<후크> 다시 보기’를 실천했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끝내 <후크>를 끝까지 보지 못했다. 로빈 윌리엄스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어서, 그 때마다 일시정지를 누르고 우느라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스필버그는 깨달았다.
<후크>를 찍었기 때문에 가장 친한 친구 로빈 윌리엄스와의 인연을 쌓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매년 12월이면 한숨부터 나온다. 분명 매 순간 최선을 다 한다고 했는데, 돌이켜보면 뭐 하나 제대로 이뤄낸 것도 없이 시간만 죽인 것 같아서. 올 한 해도 정말 밥만 먹고 숨만 쉬며 살았구나 하는 자책이 밀물처럼 차오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성취를 확인하지 못해 절망하는 순간조차, 어쩌면 노력에 대한 보답이 우리 시야 밖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건지 모른다. 스필버그에게 <후크>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 우리도 2019년에게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해도 좋지 않을까.
후크, 지금 보러 갈까요?
이승한 / 칼럼니스트
열 두살부터 스물 세살까지 영화감독이 되길 희망했던 실패한 감독지망생입니다. 스물 넷부터 서른 여섯까지는 TV와 영화를 빌미로 하고 싶은 말을 떠들고 있죠. 자기 영화를 왓챠에 걸었으면 좋았으련만, 남의 영화를 본 소감을 왓챠 브런치에 걸게 된 뒤틀린 인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