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 미 인
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들여 놓을수 없다고, 소설을 영화화하거나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모든 경우는 결과물 사이에 큰 차이가 생긴다. 제각각의 방식으로 재미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일인데, 모처럼 재미있는 사례가 있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독한 맛’ 소설을 소설의 모국에서 영화화해 ‘덜 독한 맛’으로 만들고, 국경을 넘고 언어가 바뀌어 영어 영화가 되자 ‘순한 맛’이 된 사례. 바로 <렛 미 인> 이야기다.
스웨덴의 욘 A. 린드크비스트의 소설 <렛 미 인>은 2004년작. 2008년에는 스웨덴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둘 다 제목은 영어로 번역하면 <Let the Right One In>이었다(소설의 한국어판 제목은 <렛 미 인>이다). 스웨덴판 영화가 큰 인기를 끌면서 토마스 알프레드손 감독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연출 기회를 얻게 되었고, 영화는 2010년에 영국에서 맷 리브스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주인공 오스카는 12살 소년으로, 어머니와 살고 있으며 학교에서는 또래의 괴롭힘 대상이 된다. 어느날 오스카의 옆집에 한 중년 남자 호칸과 오스카 또래의 여자아이가 이사온다. 오스카는 공동주택의 앞마당에서 옆짚 아이 이엘리와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이엘리에게는 비밀이 있다. 피를 마셔야 살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작가 린드크비스트는 <렛 미 인>의 시공간 배경에서 성장했다. 1980년대 초, 스톡홀름 외곽의 도시 블라케베리. 그는 주인공 오스카(인명 표기는 스웨덴 영화를 따르고 있음을 밝혀둔다)처럼 동급생들의 괴롭힘 때문에 불운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십대 아이들은 비행청소년, 왕따문제를 흔히 겪었고 그들의 부모는 알코올에 의존해 살아가는 중년의 노동계급이었다. 소설에서 특히 공을 들이는 부분은 그 동네의 ‘그런’ 어른들과 동네에 대한 묘사, 그리고 학교 사내아이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괴롭히고 괴롭힘을 당하는지였다.
오스카가 지닌 폭력성에 대해서도 소설은 훨씬 노골적이다. 피를 향한 허기를 느끼는 이엘리의 모습을 잡아낼 때도 우아하거나 섹시한 성인 뱀파이어가 나오는 작품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스웨덴판 영화 <렛 미 인>은 상당부분 소설을 따라갔다. 먹잇감에 달려드는 이엘리는 짐승처럼 보인다. 허겁지겁 살을 물어뜯어 피를 들이마시면서 내는 소리 역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카가 이엘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 등은 영화에서 빠졌다.
토마스 알프레드손 감독은 특유의 유려한 화면 연출에 더해 원작에 없는 유머감각을 영화에 불어넣었다. 긴장하게 되는 장면들에서는 바람을 빼듯 한숨 돌릴 만한 포인트가 종종 발견된다. 예를 들어 이엘리를 위해 피를 사냥해오는(즉, 사람을 죽여 피를 뽑아내는) 호칸이 숲에서 개와 마주치는 대목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을 죽여 매단 뒤 피를 뽑는데, 산책 나온 개가 와서 앉는다. 멀리서 개를 부르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데 개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는다. 호칸은 사람들이 오기 전에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대목은 알프레드손의 성취.
한편 할리우드 영화로 가면 스웨덴 영화가 아슬아슬하게 유지했던 몇몇 충격적인 연출의 수위를 낮춰놓았다는 점이 보인다. 이엘리는 애비로 이름이 바뀌기도 하지만, 피에 굶주린 중성의 존재같은 느낌도 사라진다.
원래 책에 따르면 이엘리는 원래 남자 이름을 여자 이름처럼 바꾼 것이었다(어쩌면 이엘리는 남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애비로 이름을 바꾸고 클로이 모레츠가 캐스팅되면서 중성적이거나 소년같은 인상은 완전히 잘라낸 존재가 된다.
피를 먹는 순간의 연출도 게걸스러움보다는 받아들일 수 있는 허기 수준이랄까. 그래서 가장 ‘강한’ ‘붉닭볶음면’ 같은 소설 <렛 미 인>이 가장 좋은가 하면 그건 또 망설이게 된다. 소설을 읽고 나면 도저히 이 소돔과 고모라 같은 폭력의 도가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런 면에서 스웨덴판 <렛 미 인>은 받아들일 만한 절충으로 보인다. 애틋함과 불쾌함이 뒤엉켜 잊을 수 없는 감흥을 빚어낸다. 수영장에서 벌어지는 일부터 마지막 장면까지는, 소설과 영화 두 편 전부 인상적이니, 한 번 비교하며 보시길.
렛 미 인, 지금 비교해 볼까요?
이다혜 / 씨네21 기자
2000년부터 씨네21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책 읽기 좋은날』,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아무튼, 스릴러』를 썼어요. 50개 넘는 간행물, 30개 넘는 라디오에서 종횡무진 활동해 왔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