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2016)
백신이 필요했습니다. 좀비가 되어 가고 있었거든요. 이 글은 제가 만났던 좀비와 백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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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영화 자체를 즐기진 않지만 일상과의 거리를 좁힌 경우엔 좋아하는 편입니다. 가령 <월드워z>의 여객기 씬은―기내에서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좀비 무리와 대치합니다.― 거리에서 무작정 살점을 물어뜯는 장면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곳에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감은 배가 되죠.
영화 <부산행>의 소재인 '열차' 역시 일상과의 근접성에 있어 매우 좋은 소재였어요. 제한적 공간이 주는 압박감, 다양한 사건을 다룰 수 있는 장치들(설국열차엔 인류가 산다던데), 국산 좀비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좀비 놀이의 갑을 관계를 바꿔버릴 것 같은 배우 '마동석'이 주연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컸죠. 관람일을 기다리며 고단한 일상의 시계추를 움직였습니다.
전날 잠을 거의 못 잤는데 아침 일찍 눈이 떠지더군요. 오전 상영이었기 때문에 혹여라도 늦을까 서둘러 깬 듯합니다. 극장에도 너무 빨리 도착했어요. 더디 가는 시간을 당기고 밀며 입장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예약한 자리에 앉았고 화면엔 광고 영상이 나타났습니다. 고대하던 시간이 순조롭게 완성되고 있었어요.
어둠이 내리고 스크린에 배급사의 로고가 나타날 때쯤, 평소와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옆자리 관객이 통화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녀는 "모자 꼭 챙겨서 가!"를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곤 "시작했어? 바로 (좀비가)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라며, 영화에 대한 긴장감을 일행에게 공유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는 트럭에 치여 쓰러져있던 산짐승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음산하게 비추며 시작했습니다. "저거 다시 살아나는 거 아니야?", "거봐. 내 말이 맞지?" 그녀가 영화의 인트로를 슥슥 앗아갔습니다. 마음속 이면지에 정(正)자의 한 획을 그으며 생각했습니다. 아직 영화의 도입부이니 집중이 덜 돼서일 거라고, 곧 조용해질 거라고.
불길하게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질 않았습니다. <인트로 도난 사건>은 상영 내내 이어질 그녀의 행태를 알리는 인트로일 뿐이었죠. "어머머!", "뒤에 있을 거 같아~", "빨리 도망쳐! 빨리!!" 10초 간격의 추임새는 기본. 배우들이 중요한 감정선을 주고받는 후반 씬에서는 "저러다가 ㅇㅇ되는 거 아니야?"라며 감동의 물 잔에 산탄총을 쐈습니다. 목소리의 크기에 속삭임은 없었습니다. 함께 온 친구 네 명이 모두 들어야 하니까요. 틈틈이 팝콘을 한 주먹 집어 먹고는 손뼉 소리를 내며 털었습니다. 손에 있는 팝콘이 소진될 때마다.
영화 관람은 단방향 서비스입니다. 중간에 영상 속의 캐릭터라던가 감독과 대화를 하며 결과를 조정해나가는 관람객은 없으니까요. 그곳에 시간과 비용을 지불한 개개인은 동등한 수준의 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망쳐서도 안 되겠죠.
사실 처음부터 극장의 에티켓 문화가 훌륭했던 것은 아닙니다. '멀티플렉스'라는 대형 서비스의 개념이 생겨나면서 한국의 영상문화 소비 수준은 상당히 개선되었어요. 본사에서 각 상영관의 불만사항을 수집하여 개선할 수 있는 체계를 꾸준히 세웠기 때문입니다. 관람객들이 약 2시간 동안 서비스에 만족을 느껴야 재방문을 할 것이고, 에티켓 문화를 만드는 것도 그 일환이었습니다.
때문에 요즘 영화 상영 중에 핸드폰을 본다던가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 앞자리를 발로 차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여러 유명인들이 영화 시작을 목전에 두고 관람 에티켓을 알려주었으니까요. 심지어 '타이어맨'은 여친 구출하기도 바쁜데 시간을 쪼개 에티켓을 전파했습니다. 우리는 더 익숙하기도 어려울 만큼 동일한 시점에 반복적으로 그 메시지를 접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옆자리 그녀의 모습에선 매우 낯선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심한 성격 탓에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것 외에는, 모든 게 평소와 다른 장면처럼 보였어요. 어쩌면 굉장히 괴기스러운 상황에 놓인 게 아닐까. 누구 하나 그녀를 제재하는 이가 없다니, 정말 이렇게 눈에 띄는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소리는 들었지만 그게 평소와 다른 장면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할 걸까. 만약 그녀가 좀비였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좀비를 만나는 경험
영화 초반, 승무원이 등에 매달린 좀비에게 목덜미를 물린 채 좌석 통로를 걸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놀라운 점은 그곳에 있던 누구도 그 존재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핀다거나 빠르게 대피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라며 의미 없는 소리만 내뱉을 뿐이죠. 그들은 친구가 괴성을 지르며 살점을 뜯기는 걸 본 후에야 질겁하며 날뛰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인간과 좀비의 첫 만남은 그런 것 같아요. 그 낯선 존재가 굉장히 가까이 다가선 후에야 겨우 알아챕니다. 답답할 정도로 '멍 때리는' 사람 투성이죠. 만약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설령 좀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한들, 그들과 달랐을까요.
아래의 영상은 내가 좀비의 존재를 얼마나 빠르게 알아챌 수 있는지 측정하는 퀴즈입니다. 간단해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총 몇 번의 패스를 하는지 정확하게 맞추면 됩니다.
정답은 15번입니다. 맞추셨다면 정말 좋은 동체시력을 가지셨군요.
그런데 혹시 영상에 등장했던 고릴라를 보셨나요?
사실 위 영상은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실험 영상입니다. 실험 참가자의 반 정도가 고릴라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흰색 옷의 패스 수를 세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의도 외의 것들을 알아채지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특정 사물에 주의를 집중하면 다른 것은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을 '부주의맹(inattention blindness)'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겪는 상황을 의도하거나 익숙한 방향으로 유지하려는 성질 때문이죠. 스크린 속 그들처럼, 나 역시 좀비가 코 앞에 다가올 때까지 멍을 때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백신을 찾는 길
일상 속 좀비를 만났을 때 "누군가 조치하겠지."라며 무시한다면 그 결과는 '좀비가 되는 경험'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 <부산행>은 끝이 났고, 기차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결국 좀비가 되었지요.
제가 만났던 옆자리 좀비도 끊임없이 바이러스를 퍼뜨렸지만 영화에 대한 집중을 거두며 주의를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 역시 부산행 기차의 승객처럼, 좀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늘 백신을 찾아냈습니다. 갖은 희생을 쌓아, 우연한 계기로, 혹은 누군가의 사소한 시도로 말이죠. 좀비 바이러스를 막을 순 없었지만, 백신을 찾기 위한 시도는 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으로 말이죠. 그렇게 상영관을 나서며, 글의 첫 문장을 적기 시작합니다.
"백신이 필요했습니다."
부산행, 지금 볼까요?
왕고래 / 작가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어요.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