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2015)
“이봐 지미, 옳은 편에 서야지”
“그렇게 말하는 상대가 교회잖나. 좋은 사람들이고 좋은 일도 많이 했어.”
1997년이었을 것이다. 금란교회 사태. <PD수첩>에서 처음으로 이단 종파나 유사 종교가 아닌 기성 종교 교단의 성직자를 대상으로 부정과 부패를 폭로했다. 당시 대학생이자 열정적인 기독교도였던 나는 대단히 분개했다.
어떻게 목사가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교회가 저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을까. 다들 나와 비슷할 거란 생각으로 다음날 학교 기독교 동아리 방에 앉아서 평소에 좋아하던 선배들 앞에서 이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대화는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흥분하지 마, 전체를 생각해야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조용히 처리하는게 올바른 방법이야."
"아니, 그래도 선배. 이게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일까요? 환부를 초장에 도려내지 않으면 문제가 커져요."
"그렇지 않아. 우리는 기도하면 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을 회개시키실 거야. 넌 너무 과격해. 아직 말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신앙이 약해서 그런거 같아."
대강 이런 대화였을 것이다. 나보다 훨씬 신앙적으로 훌륭해 보이는 선배들, 성경책을 많이 읽었고 성경 말씀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선배들의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따지는 법을 몰랐고, 사건 자체보다 선배들의 태도가 더욱 당혹스러웠기 때문에 대화는 대강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나는 마지막 말을 했을까?
‘선배. 장담할 수 있어요. 이 문제 이대로 놔두면 정말 나중에 심각해질 거예요. 내가 지금 형들보다 어리고, 성경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분명해요. 내 생각이 맞을 거예요.’
그리고 정말 그 소박한 예언은 맞아들었다. ‘메가처치’가 된 한국교회는 1997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 사회에서 온갖 문제의 중심에 서게 된다. 목회자의 그루밍 성폭력, 목회자의 교회 자녀 세습 문제, 목회자의 극우선동적 정치투쟁 문제 등 온갖 이야기가 들끓어 올랐고 어느덧 뉴스의 일부가 되었다. 아주 소수가 개혁을 외치긴 하지만 교회는 끄떡없이 차분하게 침몰하고 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천주교 사제의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우연히 작은 사건이 인지되었고 보스턴의 기자들은 수년간 은폐되었던 문제를 들추기 위해 취재를 시작한다.
첫 번째 걸림돌은 보도의 자유. 놀랍게도 국장을 비롯한 언론사 지도부는 탐사보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외풍으로부터 막아주고, 잘 준비해서 적절한 시기에 크게 이슈가 될 수 있도록 인내하며 세상에 진실을 드러내는 힘이 되어준다.
두 번째 걸림돌은 천주교. 보스턴은 천주교의 교세가 강한 곳이며 토박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왜 보스턴 출신이 보스턴의 문제를 들춰내는 거야.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이 곳에서 천주교는 정말 중요한 일과 좋은 일을 많이 했잖아. 그런데 왜 이런 문제를 들춰내는 거야. 하지만 보스턴인이기 때문에 혹은 훌륭한 신앙인이기 때문에 결국 진실 앞에 결단하고 양심에 따른 선택을 한다. 너무나 어렵게, 큰 보복을 감당할 필요 없이 그냥.
차분하면서도 흥미를 이어가는 이 영화는 한국 사람인 내게 큰 의문을 던졌다. 만약 같은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다면? 일단 언론사 고위 간부들의 억압이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보도 자체가 막혔을 수도 있고, 보다 극적인 방법을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로비와 저항이 보통이 아닐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언론은 어떻게 이 정도 수준에서 이렇게 자유롭고 정직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거지? 예전에 읽었던 프랜시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더욱 비극적인 생각 하나. 그런데 우리나라도 지금 자유롭고 정확하게 폭로가 이어지고 있지 않나? 종교적 양심에 반하는 행동, 종교가 내건 교리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동이 만천하에 폭로가 되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바뀌어야 하는게 정상이다.
영화는 최소한 천주교가 죄악을 어떤 식으로든 무마 시키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폭로 이후에 더욱 많은 것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 이 땅의 종교는 변명과 합리화의 낱말 외에 무엇을 쌓아 놓고 있을까.
같은 현상이 같은 현실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사실에 관한 영화. 또한 거대한 독재의 사슬이 끊어진, 전두환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고민에 관한 영화.
p.s 어벤져스에서 헐크로 분한 마크 러팔로가 기자로, 스파이더 맨: 홈커밍에서 악당으로 나온 마이클 키튼이 국장으로 나와 집중력을 흐리게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최대 단점.
스포트라이트, 지금 볼까요?
심용환 / 역사학자, 작가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자 성공회대 외래교수입니다. <단박에 한국사>, <헌법의 상상력> 등 깊이와 재미를 고루 갖춘 작품을 쏟아내고 있죠. <KBS 역사저널 그날>, <MBC 타박타박 세계사>, <굿모닝FM 김제동입니다>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