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2015)
나는 언제나 내가 우주미아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왜냐하면 뭐랄까 기시감 서린 공포증이 있어서다. 어린 시절 인간은 지구의 안쪽에서 살고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지구 표면에 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당장 안전한 곳으로 가서 숨어야할 것 같았다.
대자연을 바라보면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눈을 질끈 감아 버림은 물론이요, 놀이터 뺑뱅이를 탈때마다 이게 이렇게 돌다가 우주밖으로 날아가버릴 것 같은 불안증이 있었으며, 우주 관련 영상을 볼 때마다 나만 홀로 저 드넓은 우주를 떠다니던 기억 같은 게 생생히 살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끝까지 볼 수가 없다. 그 거대한 고독감. 학창 시절 지구 과학 공부를 등한시 한 건 공부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두려워서였다. (오 좋은 핑계)
그리고 2020년이 왔다. 마침내 오고야만 원더키디의 해. 새해라고 수선떨 건 없지만 그냥 뭔가 2020에 어울리는 일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틀었다. 거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마음으로. 후 심호흡하고 눈 크게 뜨고 우주를 좀 보자. 목표는 우주의 광경을 피하지 않기. 그래 살아 돌아오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 한 마션. 화성 탐사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대원들이 거대한 모래 폭풍을 만나고 대원 중 한 명이 사고로 부상을 당하지만 다른 대원들은 그가 사망한 것으로 판단하고 떠난다.
그렇다. 그도 우주미아가 되고만 것이다. 어마어마한 상황속에서도 그는 차분하다. 자가 치료를 하고 앞으로의 식량과 산소를 계산하며 무엇이 부족한지 그럼 어떻게 해야할지 착착착 준비한다. 심지어 앞으로를 대비해 감자를 재배한다. 화성에서!!!
물론 이 모든 행위는 ‘나는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를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위트와 여유가 넘치는 그의 행동에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담담하게 하루 하루를 이어가는 모습에 초반에는 이게 지구인지 화성인지 큰 차이가 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씻고.
기본적인 생활이 아직은 무리가 없는데다가 다행히(?) 우주 한 복판이 아닌 화성에 안착해 있고 혈혈단신은 아니기 때문(우주선이 있었다)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알만한 지구의 명곡들이 주구장창 흘러나온 것도 한 몫했다. 동료가 저장해 놓은 음악들이라 주인공 취향엔 안맞아서 투덜대긴하지만. 그래도 우주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주었겠지.
영화 속 모든 노래가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그렇지 여기 우주였지’ 라고 정신 바짝차리게 해준 곡이 있다. 동료들이 주인공을 구출하러 떠나는 장면에서 흐르는 David Bowie의 Starman. 지구 멸망을 5년 앞둔 시점, 외계인이 지구를 구하러 오겠다는 메세지를 전하는 이 곡의 내용은 영화의 맥락과 잘 어우러진다. 명곡 사용의 좋은 예라고나 할까.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약 내가 우주에 홀로 떠다녀야하고 단 한 명의 뮤지션을 선택해야한다면 데이비드 보위를 택하겠다. 우주와 너무 잘 어울려서, 지구에서 듣는 것보다 백배 천배 음악에 도취할 수 있을 것 같고 그 기쁨이 너무 큰 나머지 잠시나마 우주 미아가 된 것을 잊을 수 있을 유일한 음악을 그는 가졌으니까. 그런 그의 곡을 이 영화에서 만나다니! 더구나 오늘(1월10일)은 그가 사망한 날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까!
https://www.youtube.com/watch?v=sI66hcu9fIs
1972년 텔레비전쇼에 등장한 보위의 대표적 페르소나 Ziggy Stardust
음악뿐 아니라 파격적인 비쥬얼과 도발적 제스추어 등 숱한 화제를 뿌리며 대중을 압도한 이 공연은 보위의 음악 인생뿐 아니라 팝 음악사에도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된다.
기술이 일찍 발달해 그가 죽기전에 인간이 우주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다면 섭외 1순위는 그였을 것이다. 실제로 2019년 BBC 사이언스 포커스 매거진에서 선정한 우주 음악 열 곡 중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가 1위로 뽑히기도 했다.
Space oddity는 우주 미아가 된 우주비행사가 남긴 일종의 유서다. 변신과 확장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고 살았던 데이비드 보위는 여러 명의 페르소나를 설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많은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을 선보였기에 한두 단어로 그를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2016년 사망 당시 보도에 많이 쓰였던 표현중 하나가 ‘우주로 돌아가다'였다. 그만큼 보위의 음악에서 우주는 큰 지분을 갖고 있다. 그리고 올해도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aOC9danxNo
2013년, 국제우주정거장(ISS) 선장 크리스 해드필드가 우주선에서 부른 Space oddity
우주미아가 된다는 내용의 원곡을 ‘지구로 무사 귀환’으로 바꿔 불렀다. 데이비드 보위도 이 버전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2019년 현재 4,4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가 그렇듯이 주인공은 결국 안전히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인공이 구출되던 순간 그 우주 공간 속에서 아무 장비없이 떠다니는 그가 정말로 우주 미아가 되어버릴까봐 심장을 부여잡고 봤다. 자막에 카운트되던 SOL(화성일 : 화성 자전주기를 기준으로 화성에 머무른 날짜)이 DAY1으로 바뀌었을 때의 안도감이란.
인류에게 우주라는 공간은 언제나 화두다. 특히나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직접적 증거를 목도하는 요즘은 그 열기가 점점 더해지는 것 같다. 생존의 목적만이 아니라 철학적 도구가 되기도 한다. 영화나 책 속에서 우주를 접하며 사람들은 그 거대한 우주 속에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범사에 흔들리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닫는다.
우스운 것은 어떤 깨달음도 금새 사라지고 만다는 것.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우주에서 나는 너무 초라한 존재니 겸손하자, 범사에 흔들리지말자 다짐하던 친구들이 일주일만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많이도 봤다. 결국 깨달음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깨달음 뒤의 행동이다
그래서 아주 작은 것부터 한 가지씩 하기로 했다. 주인공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그러다보면 살아돌아온다고. 마션으로 한가지는 해냈다. 공포증을 다 극복하진 못했어도 최소한 우주 공간이 나오는 장면에서 눈을 질끈 감지는 않았으니. 그정도면 2020년 출발이 좋다.
나 말고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다. 새해 하나씩 하나씩 잘 이겨내세요.
마션, 지금 보러 갈까요?
장혜진 / 초원서점 주인장
음악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음악과 영화 이야기를 이리저리 섞어서 해보려고 합니다. 둘 중 뭐라도 당신에게 재미가 있다면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