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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Jan 16. 2020

사랑을 간직하는 방법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뒷모습을 바라본다.ᅠ엘로이즈(아델 에넬)의ᅠ바람에 날리는 잔머리, 정교한 귓바퀴, 붉은 뺨까지 뜯어보는 마리안느(노에미 멜랑)의 시선은 차라리 분해에 가깝다. 엘로이즈를 샅샅이 흠쳐보고 캔버스에 풀어내야 하는 마리안느의 작업은 사랑에 빠진 이들의 주된 일과와 닮았다. 


하염없이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 마치 이제 떠나면 다시는 볼 수 없을 사이처럼 보고 또 본 뒤 자신의 내부 어딘가에 저장해둔다. 언젠가 그리워졌을 때 꺼내보기 위한 대비가 아니더라도 나를 사로잡은 대상을 관찰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행위다. 


회화의 기원이 전장으로 떠나는 연인의 모습을 간직하고자 그의 그림자를 따라 덧그린 것이란 걸 떠올려 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포즈 취하기를 거부하는 엘로이즈의 결혼 초상화를 그리러 온 마리안느는 산책 친구로 가장해 엘로이즈를 그린다. 짧은 산책을 하는 동안 허락된 엘로이즈는 마리안느가 그렸던 그 어떤 주인공과도 달랐을 것이다. 


식탁 위 시든 사과나 화병 같은 정물은 물론 그려지기 위해 화가 앞에 앉은 사람들과 달리 철저히 시선을 거부하는 대상. 바닷가에 세차게 부는 바람과 사방에서 쏟아지는 자연광보다 마리안느를 힘들게 한 것은 얼굴을 보여주길 꺼리는 엘로이즈다. 


부러 감추듯 베일이나 스카프를 드리우고 산책을 하는 그는 얼굴만큼이나 속내 또한 드러내지 않는다. 이미 한차례 초상화가를 거부한 엘로이즈는 결혼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외딴 섬에 갇힌 귀족 아가씨에게 놓인 선택지는 많지 않다. 


결혼을 하거나 죽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섬에서 그가 행사할 수 있는 거부권은 초상화가 앞에 서지 않는 것 정도다. 게다가 엘로이즈는 자신답지 않은 모습으로 남겨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으레 시선은 권력이라고 말한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시선의 비대칭성에서 권력이 발생한다.ᅠ나는 바라볼 수 없는데 누군가 나를 은밀하게 바라보고 있다면 그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따라서 나는 그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정치권력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대상을 바라보고 재해석하는 작가에게 관찰 당하는 대상은 종속되기 쉽다. 흔히 예술사에서 뮤즈라고 불렸던 여성들처럼. 


피카소의 연인이자 그와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았던 모델이자 여성 예술가들, 제자이자 동료였지만 로뎅이 시기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조각가 카미유 끌로델 같은 이들은 후대에도 낭만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뮤즈로 축소되면서 조력자 혹은 공동 창작자로서의ᅠ공로와 이름은 지워졌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사랑하고 그리지만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의 뮤즈는 아니다. 마침내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의 캔버스 앞에 섰을 때 상황을 주도하는 쪽은 엘로이즈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의 응시를 받아내는 동시에 교환한다. 포즈를 잡는 동안에도 엘로이즈의 시선은 마리안느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마주봤을 때 먼저 시선을 돌리는 쪽 역시 마리안느다. 그가ᅠ익숙하게 구도를 잡고 드레스의 주름을 섬세하게 재현하던 화가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순간,ᅠ엘로이즈의 시선에 익숙하게 붓질을 하던 마리안느의 손끝은 떨리고, 그의 의견에 따라 초상화의 방향도 달라진다.ᅠ


존재감도 생명력도 없다는 엘로이즈의 혹평에 완성된 그림은 처음부터 다시 그려진다. 그림에는 규칙과 관습이 있다던 엘로이즈는 당시의 규율에 반하는 여성들의 내밀한 순간도 대담하게 화폭에 옮긴다. 마주치는 눈빛 속에 쌓인 것은 사랑뿐만이 아니었다.


바라본다는 것에서 권력이 생기기도 하지만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처럼 동등하게 교환하는 시선 속에서는 사랑이 생기기도 한다. 본다는 것은 기억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의 가장 적극적인 형태가 그림이다. 서로를 응시하고 마침내 마주보게 된 이들은 상대의 작은 초상화를 은밀하게 간직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음에도 이어진다. 사랑하거나 헤어진 것을 후회하기보다 기억하는 것을 택한 덕분에.ᅠ짧은 순간 타올랐던 사랑의 불꽃은 그렇게 꺼지지 않는 연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그와 함께 했던 아주 작은 흔적에도 송두리째 흔들리고 엉엉 울 만큼.



이지혜 /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더 많이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영화 속의 멋진 여성 캐릭터와 그보다 더 멋진 주위의 여성들에게서 힘을 얻습니다.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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