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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Jan 17. 2020

성격차이, 괜찮은 걸까?

블루스카이 (1994)



성격을 규정하고 구분하는 기준은 정하기 나름이다. 애니어그램, MBTI와 같은 성격평가도구가 흔히 알려져있다. 혈액형으로 나누는 성격구분은 과학적이지도 통계적이지도 않으며 사체액설 성격 구분은 그냥 나름의 기준으로 기질을 넷으로 나눴다고 하는 게 낫지 굳이 사체액설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다혈질이 피와, 담즙질이 담즙과 아무 관련이 없다!)


단순한 성격 구분으로 강박성-연극성의 연속선을 그리는 방식이 있다. 한쪽 끝은 강박성인데 이는 인지의 최극단이다. 다른 끝은 연극성인데 이는 정서의 최극단이다. 


우리 각자의 성격은 이 양극단을 잇는 연속선의 중간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인지와 정서가 조화로운 중용의 위치, 즉 중앙이 좋겠지만 대개의 사람은 어느 한 쪽에 다소간 치우쳐 있다고 보겠다.


한 사람이 중용을 못 이루었다면 양 쪽에 치우친 두 사람이 만나서 부부가 된다면 조화롭지 않을까? 서로 달라서 끌리는 경우를 고려하자면 인지에 치우친 사람과 정서에 치우친 사람은 서로의 부족을 채우는 매력적인 상대로 서로를 바라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과유불급이듯, 너무 극단에 치우친 사람은 병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영화 블루스카이(1994)는 정서의 최극단인 연극성 성격을 드러내는 여주인공(제시카 랭)이 등장한다. 영화를 끝까지 보면 그는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이런 성격을 히스테리성 성격이라고 불렀는데 히스테리성(hysterical)은 여성의 자궁이라는 뜻이라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연극성(histrionic)이라는 용어로 치환되었다.


남편인 남자 주인공(토미 리 존스)이 자식들에게 부인의 병적인 성향에 대해 말하는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물은 얼음이 되고 수증기도 되지만 물이라는 본성은 같아. 나는 너희 엄마를 있는 본성 그대로 사랑하기로 했다. 그 물에 핵융합 반응까지 있는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자기가 말해놓고선 스스로 멋진 말을 했다고 감탄한다. 후후


어떻게 보면 영화는 결함이 많은 연극성 성격의 여주인공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훌륭한 남편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이 남자도 만만치 않아.

이 남자 주인공을
인지의 최극단 '강박성'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사실 그런 부인과 결혼까지 가지 않는다. 그는 아마 구원자 환상을 갖고 있는 철저한 자기통제의 사람일 것이다. 그는 군인이며 핵실험 담당 과학자인데 자기 부인과 바람핀 상사에게 가서는 핵실험장의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공사 구분의 과도한 강박적 분리를 선보이신다. 


영화적인 포장이 아니라고 한다면 부인이 핵폭발을 나타내는 것은 부인 혼자의 취약성만 아니라 남녀 두 주인공의 결합 요소가 크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성향이 서로 다른 상대와 사귀고 결혼하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이다. 부부이혼의 대표적인 사유가 성격 차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서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차이가 아니라 극단성에 있다고 봐야한다. 


다소 인지에 치우친 딱딱한 사림이어도 되고 다소 정서에 치우친 화려한 사람이어도 되지만, 강박성이나 연극성의 범주에 들 정도로 너무 치우치면 안 된다. 이것은 반대 성향의 상대를 만나 중화할 일이 아니라 스스로 중화할 상담과 치료의 기회를 얻어야 한다. 괜히 중화한다고 반대 성향 만났다가는 핵폭발만 더 심하게 일어날 공산이 크다.



이 영화는 극단적인 성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또한 극단적인 성격을 개선하는 데에 무엇이 필요한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 


첫째, 사람은 자기가 안전하다고 믿어야 한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에게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않아”라고 말한다. 
둘째, 자신을 스스로 위해주고 동시에 자신을 위해주는 주변 사람들과 꾸준히 오래오래 함께해야 한다.
셋째, 자신을 개선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야 한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자신이 여러 상황을 망쳐서 파국으로 향했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렇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은 것이 나로선 마음에 들었다. 그는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나름대로 결심하고 나름대로 노력한다. 


이 부분에서는 영화와 달라야 하는 현실이 하나 있긴 하다. 혼자 나름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결심하는 것은 좋으나 앞으로 어떡할지에 대해서는 상담사나 조언해줄 사람과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



이 영화, 지금 보러 갈까요?



최의헌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에서 개인의원과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의나 글은 다소 유쾌할 수 있으나 진료실에서는 겁나 딱딱하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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