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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Jan 21. 2020

멍청할 수록 자신감에 넘친다

나홀로 집에 (1990)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들은 ‘범죄자들은 매우 똑똑할 것이다’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왜 안 그렇겠나? 범죄 영화에는 주로 『셜록』의 모리아티 같은 천재 범죄자들이 주로 등장하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범죄자는 매우 멍청하다. 예를 들어 맥아더 휠러라는 범죄자는 복면을 하지 않고 은행을 털다가 카메라에 얼굴이 찍히는 바람에 붙잡혔다. 경찰이 카메라 화면을 보여주자 휠러는 “레몬주스를 발랐는데 왜 찍혔죠?”라고 중얼거렸단다. 미국 유치원생들 사이에서는 “얼굴에 레몬주스를 바르면 카메라에 안 찍힌다”는 속설이 있는데 휠러가 이를 곧이곧대로 믿은 것이다. 이런 멍청한!


영화 『나 홀로 집에』에 등장하는 좀도둑 해리(조 페시 역)와 마브(다니엘 스턴 역)도 매우 멍청하다. 영화를 보면 ‘뭐 저런 멍청한 놈들이 다 있냐?’라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그렇게 멍청하다.


해리와 마브는 케빈(맥컬린 컬킨)의 집을 털 계획을 케빈 집 앞에서 떠벌인다. 심지어 해리는 “9시에 다시 오는 거야”라며 도둑질 시간까지 예고한다. 이야기를 엿들은 똑똑한 케빈은 만반의 준비에 나선다. 결과는 다 아는 것처럼 멍청한 도둑들이 박살이 난다! 


영화를 보다보면 궁금한 점이 생긴다. 두 좀도둑은 딱 봐도 멍청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범죄가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에 넘친다. 이들의 자신감은 어디서 생긴 것일까?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과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 두 심리학자는 이런 현상을 ‘더닝-크루거 효과’라는 이론으로 설명한다. 이론의 요지는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기를 잘 돌아봐서 겸손한 반면, 멍청한 사람일수록 자신감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두 학자는 실험 대상자들을 상대로 사전에 다양한 능력을 테스트했다. 그 다음 참가자들에게 “당신의 능력은 전체 참여자 중 어디쯤에 위치할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런데 모든 응답에서 무능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유능하다고 과대평가하는 반면, 유능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무능하다고 과소평가했다. 


실험 결과 하위 25%에 속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나는 상위 40% 안에 들 거야”라고 답했고, 상위 25%에 드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나는 상위 30%에 못 들 거야”라고 자신을 걱정했다. 


더닝과 크루거는 이에 대해 “무능력한 사람일수록 자기가 무능력하다는 사실을 몰라서 사태파악을 더 못하므로 더 무능력해진다. 반면에 유능한 사람들도 자기가 유능하다는 사실을 몰라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하지 못한다”라고 설명한다. 


범죄자들이 대표적인 무능력한 사람들이다. 자기가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몇이나 되겠나? 그들 대부분은 “나는 절대 안 잡혀”라는 자신감에 넘친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잡힌다. 왜냐고? 자기가 멍청한 줄 모르고 계획을 허술하게 잡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멍청하다는 사실을 알면 계획을 좀 더 신중하게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멍청하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감에 넘쳐 계획을 대충 세운다. 



케빈의 장난감 총탄에 급소를 맞고, 달궈진 손잡이에 손을 데이고, 얼어붙은 계단에서 미끄러지고…. 이 정도 당했으면 상대가 대비를 철저히 했을 것이라 짐작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멍청하기에 자신감 넘치는 좀도둑들은 집 안으로 그냥 뛰어 들어간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태우고(머리카락만은 안 돼!), 페인트 캔에 머리가 깨지고, 독거미에 코를 깨물린다. 계속 당하면서도 좀도둑들은 “상대는 꼬마야. 이길 수 있다고”라며 상대를 과소평가한다. 아, 멍청한 자들의 넘치는 자신감을 어찌 해야 좋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이 이론을 입증할 놀라운 통계를 하나 소개한다. 미국 경찰이 범죄자들의 아이큐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지능이 평균보다 한참 낮았단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나 홀로 집에』에만 등장하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사회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 지금 보면 어떤 기분일까요?


이완배 / 민중의소리 기자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네이버 금융서비스 팀장을 거쳐 2014년부터 《민중의소리》 경제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두 자녀를 사랑하는 평범한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가치 있는 행복을 물려주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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