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젼 (2011)
영화를 본 뒤 즉각적인 행동을 불러오는 영화가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바로 손을 씻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했다. 다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화장실에 가 손을 씻었다. 한국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배우 맷 데이먼은 '벌쳐닷컴'(vulture.com) 제니퍼 바인야드와의 2011년 인터뷰에서 이 영화, <컨테이젼>에 대한 재미있는 말을 주고받았다.
제니퍼 바인야드의 질문.
“스티븐 소더버그가 <컨테이젼>의 시나리오를 당신에게 주면서 ‘시나리오를 읽은 다음 가서 손을 씻어’라고 했다면서요. 정말 손을 씻었나요? 이 영화를 본 뒤 사람들이 더 자주 손을 씻고 손 소독제를 사용하리라고 생각합니까?”
맷 데이먼의 답은 웃음으로 시작했다.
“정말 그랬어요. 정말 그랬습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같은 경험을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일종의 공포영화입니다. 좀비 없는 좀비영화인 셈이죠. 이 영화가 사람들의 행동을 영원히 바꿀지는 모르겠지만 손씻기가 확실히 늘어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손 소독제도 더 많이 쓰겠죠.”
자기 아이들도 더 손을 자주 씻게 한다고.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은 기네스 팰트로, 맷 데이먼, 마리옹 코티야르, 케이트 윈슬렛, 주드 로, 로렌스 피시번이 출연한 영화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홍콩의 첵랍콕국제공항에서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는 기네스 팰트로가 연기하는 베스가 감기 기운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제 세계 어디든 하루면 갈 수 있잖아요? 베스는 집으로 도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응급실로 실려가는데, 의료진이 뭘 해보기도 전에 사망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발열과 기침을 하다 사망에 이르는 사람들이 폭증한다.
베스의 부검을 맡은 의사 두 사람은 전기톱으로 두개골을 잘라 뇌를 살피다 무언가를 발견한다. <컨테이젼>이 ‘좀비 없는 좀비영화’라면, 그 공포는 문제의 바이러스가 ‘모든 접촉’을 통해 옮는다는 설정에 있다.
이 글을 쓰는 2020년 설연휴 마지막날,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는 온통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있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데, 마스크를 쓰고 화장실에서 손을 꼼꼼하게 씻는 사람들 사이에서 똑같이 마스크를 쓰고 손을 깨끗이 씻는 나 자신이 보였다.
한편으로는, 손을 씻지 않고 나가는 사람들이나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재채기를 하는 사람들을 불쾌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했다. 최근 십여년 동안 사스, 메르스를 비롯해 영화 <컨테이젼>의 상황이 상상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경험을 했으니까.
2020년의 우리는 하루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 우리는 무수한 사람들과 스쳐지나며 접촉하고, 하루에 만난 사람들이 다 몇인지를 셀 수도 없다. 전 지구적 ‘연결상태’가 주는 (발전한 세계에 대한) 낙관을 공포감으로 덧칠하게 만드는 바이러스야말로 <컨테이젼>의 진짜 주인공이다. <컨테이젼>은 다큐같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끝난 뒤에 손을 씻게 되는 것이다.
<컨테이젼>은 감염 1일차에서 마무리된다. 감염의 경로를 알려주는, 사건순으로는 가장 먼저 벌어진 사건이 영화의 말미에서야 등장한다. 전 지구적 연결상태에서는,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모든 것이 어떤 경로를 거치는지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어 있다.
아마 이게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우리 앞에는 모든 일의 결과만이 주어진다. 그 모든 일이 시작된 감염의 첫 순간은 우리 앞의 결과로부터 너무나 멀다. 그래도 누구나 지금 당장 손은 씻을 수 있다.
<컨테이젼>은 아주 기묘한 안도감과 제어할 수 없는 불길함을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영화다.
컨테이젼, 지금 볼까요?
이다혜 / 씨네21 기자
2000년부터 씨네21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책 읽기 좋은날』,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아무튼, 스릴러』를 썼어요. 50개 넘는 간행물, 30개 넘는 라디오에서 종횡무진 활동해 왔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