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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Aug 20. 2019

짜릿한 정치인이 보고싶다! 링컨

링컨 (2012)




1. 지루할 수 있다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는 지루하다. 대강의 줄거리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다. <명량>처럼 화려하고 극적인 전투신을 넣는다던지,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추억을 자극하는 음악을 통해 예상되는 스토리의 지루함을 상쇄할 수 있다. 


하지만 스필버그의 <링컨>은 제목만큼이나 지루함에 무덤덤하다. <링컨: 뱀파이어 헌터>처럼 흡혈귀와의 전투가 웬말이냐, 영화는 남북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전투신은 사실상 없다고 보는 편이 낫다. 그렇다고 귓가에 맴도는 음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관객을 자극하려는 효과를 최대한 자제한 채, 끈질기게 흑인 노예 해방, 즉 헌법 수정안 13조를 통과시키려는 링컨(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삶을 추적하는 데 집중한다.


물론 스필버그가 자랑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싱크로율이다. 시나리오부터 배우까지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복원하고자 했다. 심지어 영화에서 들리는 링컨의 시계소리는 실제로 링컨이 사용했던, 링컨박물관에 전시된 시계소리를 녹음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관객 중 누가 시계소리에 신경이나 쓴단 말인가. 영화 보다가 ‘아니 이거 링컨박물관에서 들었던 시계 소리하고 똑같잖아?’ 이럴 관객이 있겠는가. 게다가 런닝 타임은 어벤져스급. 2시간 반이라니, 실화냐. 따라서 미리 경고하건데, 이 영화는 충분히 지루할 수 있다.

2. 꺼림칙할 수 있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본다 하더라도 생각했던 것과 다른 장면들에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일단 놀랍게도 링컨은 민주당이 아니다. 공화당 소속이다. 응? 그렇다. 바로 트럼프가 공화당 출신이다. 오바마는 민주당 소속이다. ‘링컨이 공화당이었어? 왜 난 몰랐지? 민주당이 노예제 폐지에 왜 반대해?’ 지난 150년 사이에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신의 무지함에 스스로 민망해하면서, 뭔가 출발부터 꺼림칙하다. 


영화를 좀 더 보다보면, 수정 헌법 13조를 통과시키기 위해 링컨이 돈과 자리로 민주당 의원들을 포섭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노예 해방하겠다는 사람이 이래도 돼?’, ‘결과가 좋다고 과정이 저렇게 더러워도 되는 거야?’ 의구심이 들면서 뭔가 불편하다. 


꺼림칙함은 계속 된다. 공화당 내 진보그룹 수장이었던 태이어스 스티븐스(토미 리 존스)는 법적으로뿐만 아니라 인종적으로도 흑인과 백인은 완전히 평등하다는 의견을 밝혀왔다. 하지만 링컨은 스티븐스의 생각에 반대한다. 흑인과 백인의 근본적인 평등은 언급하지 말고, 오로지 법적으로 노예 제도를 폐지하다는 것까지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링컨이 흑인과 백인이 근본적으로 평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법적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것까지만 인정했다고?’ 실제로 당시 링컨은 흑인과 백인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했던 수많은 진보적 정치인과 단체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3. 짜릿할 수도 있다

사실 노예 해방처럼 선악구도가 분명한 것도 없다. 그것을 달성한 링컨이 미국은 물론 세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노예 해방으로 가는 과정을 면밀하게 복기한 영화의 중심 테마는 관객을 끊임없이 불편하고 꺼림칙하게 만든다. 따라서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역설’이다. 선을 달성하기 위해 악의 도구를 기꺼이 품어야 하는 정치의 역설적 속성이 영화의 전면에 드러난다. 


그 길은 매우 가늘고 좁은 길이다. 좌우는 낭떠러지다. 왼편에는 흑인과 백인의 본질적 평등함을 주장하는 도덕주의자들이 서 있고, 오른편에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서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간에 서 있는 사람들조차도 지금 당장 남북전쟁을 끝내서 젊은이들의 죽음을 막자는 부류와 사상자가 늘어나더라도 노예해방을 위한 수정 헌법이 통과된 이후에 종전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부류가 갈등한다. 


이처럼 수많은 갈등이 교차하는 한 가운데에 링컨이 서 있다. 영화는 그 길 위에서 가능성을 찾아내기 위해 한 발 한 발 섬세하고 단단하게 걸어가는 링컨의 발자국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좌우 진영의 정치적 비난뿐만 아니라 도덕적 비난까지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기어이 애초 가졌던 선한 의도를 관철시켜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런 정치인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 더 절망해야 할까?



이 영화, 지금 보러 갈까요?


손정욱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前 국회의원 보좌관


정치와 인연이 깊은 비정치인입니다. 지난 10년은 여의도에서, 지금은 제주도에 거주하며 한국과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를 들여다보고 있는 섬사람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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