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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Aug 19. 2019

'촉'과 '편견' 사이,
터커&데일 vs 이블

터커 & 데일 vs 이블 (2010)



누가 그랬더라. 촉은 빅데이터라고. 그 말을 듣고 그것 참 그럴싸하다는 생각을 했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작은 몸동작이나 움찔거리는 얼굴 근육을 관찰하고, 그 정보로부터 상대의 진실성을 파악하려 든다.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의 얼굴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저장해 뒀다가, 처음 만나는 사람의 인상이 그들과 비슷해 보이면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경고등을 켠다. 비슷한 관상의 사람이니 조심하라고. 인간도 어쩔 수 없는 동물인 탓에 머리보다 본능이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물론 우리도 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고, 타인에 대한 평가는 상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려야 한다고. 하지만 머리 말고 가슴은 이렇게 외치지 않던가? “어떤 행동? 종합적 판단? 천하태평한 소리 하고 앉아있네. 야, 이 흉흉한 세상에 상대가 너한테 뭘 할 줄 알고 시간을 줘?” 실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경험해보기도 전에 일단 인상만 보고 미리 기대치를 대폭 낮추게 만드는 ‘촉’은, 기실 확인되지 않은 위협이더라도 일단은 피하고 본다는 생존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가끔 제 촉을 과신하며 “저런 사람들은 안 봐도 뻔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아무래도 좀 짜증이 난다. 기대치를 낮춘 채로 상대를 대하는 것과, 겪어보기도 전에 판단을 다 끝내버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 말이다. 


내 주변엔 온몸을 문신으로 뒤덮은 근력운동 매니아가 있지만, 그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온순하고 섬세한 축에 속한다. 덤벙대는 것 같으면서도 알고 보면 머리카락 한 올 들어갈 틈도 없이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는 완벽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세상 가장 선량한 얼굴로 눈 하나 깜짝 않고 독설을 퍼부어 대는 사람도 있다. 겉모습이 다 전하지 못하는 깊은 내면은, 결국 대화를 나눠봐야 알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터커 & 데일 vs. 이블>(2010)은 그 교훈을 가장 직설적이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다가는 밥숟갈을 놓게 된다. 


평생 꿈꿔온 별장을 사는데 성공한 터커(앨런 투딕)와 데일(타일러 라빈)은 부푼 마음을 안고 산장으로 향하는데, 우연히 휴게소에서 예쁘고 잘생긴 젊은 도시 청년들을 마주치고 나니 어쩐지 마음이 설렌다. 우리 같은 촌놈들이 저런 멋쟁이 청년들에게 자연스레 말을 걸 수 있을까? 늘 수줍고 말주변이 없어 긴장하곤 하는 데일은 어렵게 용기를 내어 청년들에게 말을 건네지만, 무엇 때문인지 이 청년들은 자신을 잔뜩 경계하며 그 자리를 피한다. 남겨진 데일은 말한다. 그래, 나도 내 얼굴이 싫어.


불행은 터커와 데일의 행색이 미국 슬래셔 무비에서 흔히 볼 법한 ‘촌뜨기 살인마’를 연상시킨다는 자리에서 시작됐다. 그 불행은 캠핑을 온 청년 중 한 명이 이상하리만치 적개심을 보이는 순간 싹이 텄고, 일행 중 한 명이 바위에서 미끄러져 정신을 잃은 걸 터커와 데일이 구해주는 것을 “살인마들이 앨리를 잡아갔다”고 오해한 청년들 덕분에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멋대로 ‘살인마에 맞서는 용감한 대학생’이란 이미지에 심취해 터커와 데일을 죽이러 간 이 얼빠진 청년들은, 자꾸 제풀에 죽어 나간다. 

나무를 깎아 만든 창으로 데일을 찌르려던 애는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제 창 위에 넘어져 죽고, 터커를 죽이려고 뒤에서 몰래 달려들던 애는 그만 나무분쇄기 안으로 잘못 뛰어들어 죽고… 순하디 순한 터커와 데일은 이게 다 자기들을 해치려다 생긴 일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이 청년들이 자살동호회 모임이라도 가지는 걸까 궁금해한다.


이게 대체 뭔가. 촉만 믿고 상대를 죽이려고 달려들기 전에, 일단은 상대가 어떤 자들인지 이성적으로 판단했더라면 아무도 안 죽고 다들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갔을 것 아닌가? 그러니 명심하자. 촉과 근거 없는 편견은 한끝 차이고,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며, 함부로 오해와 적개심을 품었다간 죽는다. 음, 마지막 문장은 좀 이상한 것 같지만, 말이 그렇다고.




이승한 / 칼럼니스트


열 두살부터 스물 세살까지 영화감독이 되길 희망했던 실패한 감독지망생입니다. 스물 넷부터 서른 여섯까지는 TV와 영화를 빌미로 하고 싶은 말을 떠들고 있죠. 자기 영화를 왓챠에 걸었으면 좋았으련만, 남의 영화를 본 소감을 왓챠 브런치에 걸게 된 뒤틀린 인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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