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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Jun 08. 2020

양비론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작품

남한산성(2017)



영화는 영화다. 그런데!


맞다. 역사를 소재로 만든 영화에 굳이 ‘고증의 잣대’를 들이대는 관행은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었다. 이런 현상은 사실 매우 불공정하다. 모든 역사 영화를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고 특정 작품이 예상치 못하게 일부 대중들에게 걸려들어 인민재판식으로 난도질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기실 ‘역사 왜곡’이라는 것 또한 대중적인 통념에 반하는 것들일 뿐 정말로 역사학적인 연구를 무시하거나 역사적 진실을 거스를 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편하게 보고, 재밌게 누리고, 각자 얻어갈 것이 있다면 그것만 챙기면 그만이리라.


그런데 생각보다 간단치 않은 부분이 있다. 말 그대로 작가가 역사적인 소재를 편안하게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영화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흥행 작품의 줄거리가 역사 인식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광해군에 대한 이미지는 <광해>, 세종대왕에 대한 이미지는 <천문>식으로 역사를 잘 모르는 대부분에게 결국 한국의 역사 영화는 역사적 사실로 각인이 돼버리니 이 부분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조금 더 숙고가 필요한 지점이다.


여하간 역사적 사실을 기준으로 따져본다면


영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병자호란에 대한 통념은 단순하다. 광해군이 중립외교를 잘 펼쳤는데 인조반정에 의해서 쫓겨나고 말았고, 이후 친명사대 정책을 추진하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사건 정도. 여기에 고등학교 교과서 혹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정도의 지식이 있다면 아마 ‘주화론과 주전론의 대립’을 기억할 것이다.


맞다. 영화는 주화파의 지도자 최명길(이병헌 분)와 주전파의 지도자 김상헌(김윤석 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청나라 군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쳐들어왔고 인조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남한산성에 머무른다. 최명길은 굴욕을 감수하더라도 타협을 통해 종사의 보존을 주장하였고 김상헌은 결사 항전을 위해 목숨을 내건다. 어리석은 정치가들에 의해 혼란을 겪음에도 무장들은 본분을 다하고자 하였고 평범한 백성들은 소박한 일상의 회복을 꿈꾸며 비극을 온몸으로 감당한다.


최명길은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다!


언뜻 보면 잘 짜여진 구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첫째, 최명길은 굴욕적 타협을 주장한 적이 없다. 전란이 발생하자 청천강이나 대동강을 기준으로 방어선을 펼치자고 주장하였다. 평안도민들을 지켜야 하는 것이 급선무고 또한 한반도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 평안도민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평안도 방어선은 성립되지 못했다. 반정을 통해 집권한 왕이었기 때문에 역모가 두려웠고 따라서 변방의 장수들에게조차 군사 훈련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안도가 순식간에 뚫리는 동안 최명길은 황해도 방어선을 주장했다. 임진강을 방어선으로 삼지 못하면 한양이 위태롭고 황해도에도 우리 백성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또한 불가능했다. 전선을 유지하려면 1만의 병사가 있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1만은커녕 5천의 군사도 구비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또한 인조의 측근들은 백성을 지킬 생각보다는 강화도, 남한산성 같은 천혜의 요지로 피난 갈 것만을 종용했으니 최명길의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해결책은 매번 탁상공론의 장에서 무시될 뿐이었다.


대안이 없는, 진정한 탁상공론을 반복한 주전파


이때 김상헌을 비롯한 주전파는 무엇을 했는가. 조정에서 주전파는 골칫덩어리였다. 최명길은 방어 전선을 구축하면서 동시에 타협점을 찾기 위한 회담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인조는 곧잘 그의 뜻을 따랐다. 영화에 나오듯 그렇게 외로운 왕따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주전파의 주장은 시종일관 한결같았다. 오랑캐 놈들과 결전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 그곳이 청천강이든, 임진강이든 국왕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군세를 모아서 저 더럽고 치졸한 오랑캐와 싸움을 벌이고 명나라에 대한 충성을 지켜야 한다는 말만 오롯이 반복했다. 


영화는 김상헌이 멋지게 자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김상헌을 비롯한 주전파 대부분은 왕과 함께 투항하였고 청나라에 끌려가서도 허리가 아프다며 절을 피하는 등 그들의 절개는 참으로 조잡하게 유지가 되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백성보다 명나라에 대한 충성이 중요했고 나라를 살릴 방도보다는 그들의 고매한 정신적 가치를 소중히 여겼다.


같은 시간 최명길은 무엇을 했을까. 청나라 군대가 한양 인근으로 밀고 들어오자 단신으로 협상을 하러 적진에 뛰어들었고, 남한산성에 머무를 때도 협상을 위한 전투, 지방군대와 의병의 지원을 고려한 싸움을 주장하면서 끊임없이 협상의 여지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협상도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양비론은 기실 공상에 가깝다.


백성을 업신여기지 말라


무장과 백성들은? 그들 또한 정치적 주체이다. 영화와는 다르게 남한산성에서의 위기가 심화되자 이들이 앞장서서 항복을 주장하였다. 왜 군인들은 싸움밖에 모르고, 백성들은 소소한 행복만 꿈꾸는 무지렁이라고 생각을 하는가.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영화적 감상에서 백성은 백성에 불과하다. 영화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역사가 그랬다는 말인데 병자호란이라는 역사는 영화만큼 재미있고 영화보다 사실적이다.



남한산성, 지금 보러 갈까요?


심용환 / 역사학자, 작가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자 성공회대 외래교수입니다. <단박에 한국사>, <헌법의 상상력> 등 깊이와 재미를 고루 갖춘 작품을 쏟아내고 있죠. <KBS 역사저널 그날>, <MBC 타박타박 세계사>, <굿모닝FM 김제동입니다>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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