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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Jun 05. 2020

살인 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 수 있을까?

와이 우먼 킬(2019)



“엄마는 행복하지 않아요. 그런데 아빠는 모르죠. 엄마가 늘 미소를 짓거든요.” 


<와이 우먼 킬> 9화의 내레이션을 듣다가, 어쩌면 가정이야말로 궁극의 감정노동 장소가 아닐까 싶어졌다. 밖에서 보는 가족이 어떤 모습이든, 그 구성원들이 의무로 행하는 감정노동이 있기 마련이다. 


거의 언제나, 그 짐을 가장 크고 무겁게 지는 사람은 어머니다. 즉, 가족 구성원의 실제 감정은 외부인의 눈에도 잘 보이지 않지만 가족들에게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서 갑작스럽게 파국이 닥친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어떤 파국도 본인들이 느끼는 것처럼 갑작스럽지는 않다.


결혼생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있다. 이 이상 설명이 필요할까. 한국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영국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원작으로 리메이크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혼생활을 안에서 보는 상황극은 나라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와이 우먼 킬>은 <위기의 주부들> 작가인 마크 체리가 각본을 쓴 10부작 드라마다. 이 드라마에는 타임라인이 셋 있다. 1963년의 베스 앤(지니퍼 굿윈)은 사고로 딸을 잃고 남편 로버트와 새 출발을 위해 새집으로 이사했다. 베스 앤은 로버트의 외도를 알게 되고, 그가 만나는 에이프릴이 일하는 식당으로 찾아갔다가 에이프릴과 친해진다. 


1984년의 시몬(루시 리우)은 세 번째 남편 칼과 살고 있는데 칼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딸의 결혼을 앞둔 시몬은 동네 사람들과 딸이 남편에 대해 알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2019년의 테일러(커비 하웰-밥티스트)는 변호사로 일하는데, 시나리오작가인 남편 일라이는 소득이 전혀 없게 된 지 꽤 오래되었다. 일라이는 다른 여자와, 테일러도 다른 여자와 사귀는 오픈 릴레이션십을 서로 용인하는데, 타일러의 애인인 제이드가 집에 얹혀살게 되면서 일라이와 셋의 관계가 미묘해진다.


세 여자를 잇는 공통점이 있다. 세 사람은 부촌에 위치한 화려한 패서디나의 같은 집에 살았다. 즉, 배스 앤이 살던 집에 시몬이 살았고 그다음에 테일러가 살았다. 이사할 때는 모두 (아이 없이) 부부가 입주했고, 이사를 나올 때 남편은 모두 죽은 뒤였다. 정확히 말하면 세 집 모두 아내가 남편을 죽였다. 


드라마의 표현을 빌리면 이혼보다 살인이 싸다. 하지만 살인 이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와이 우먼 킬>은 서로 다른 타임라인에 사는 세 여성이 모두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을 먼저 보여준 뒤(<위기의 주부들> 첫 회도 이런 식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야기한다. 


세 사람 모두 외부인의 눈으로는 화목한 커플이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결론으로 가기까지 몇 번의 반전이 있고, 그 반전은 부부의 위기를 순탄히 넘길 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순간들을 뜻한다. 괜찮은 듯하다가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한다. 베스 앤이 남편의 과거에 대한 사실을 추가로 알게 되고 배신감을 느낄 때, 시몬이 배신감을 뛰어넘는 연민을 남편에게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을 때, 테일러가 남편의 악습과 제이드의 과거를 알게 될 때, 감정은 마지막 임계치를 넘어선다.


<와이 우먼 킬>을 보다가 이 드라마도 한국에서 리메이크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몇몇 설정은 한국식으로 완전히 바꾸어야 할테지만(일단 한국에서는 총기소지가 가능하지 않으니까), 제법 재미있을 것이다. 한국의 부촌에서 1963년, 1984년, 2019년에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고 무사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하나 확실한 것은,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 집값이 크게 떨어졌으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집값 사수는 지역 주민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


와이 우먼 킬, 지금 볼까요?


이다혜 / 씨네21 기자


2000년부터 씨네21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책 읽기 좋은날』,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아무튼, 스릴러』를 썼어요. 50개 넘는 간행물, 30개 넘는 라디오에서 종횡무진 활동해 왔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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