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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Aug 14. 2019

죽음을 준비하나요? 8월의 크리스마스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몇 주 전, 친구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머리가 아프다며 병원에 다녀오겠노라 택시를 탔는데 몇 분만에 의식을 잃었단다. 일주일 쯤 혼수상태로 있다 끝내 눈을 감았다. 여섯살 딸 아이는 아직 영문을 모른다. 씩씩하고 쾌활하던 목소리가 나도 이렇게 생생한데 가족들 마음은 오죽할까. 황망해 하는 친구를 뭐라 위로할 지 몰라 그저 앉아있다 돌아왔다. 집에 와서 잠든 두 아이를 한참동안 쓰다듬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씁쓸한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 선배가 세상을 떴다. 마흔 넷. 심장마비. 대학 때부터 줄기차게 기타를 연주하던 사람. 빈소에 가려고 양복을 꺼내 입는데, 문득 그 집 아이들이 떠올랐다. '어쩌지. 아이가 넷이나 되는데..' 상복도 입지 않은 막내는 내내 해맑게 웃으며 문상객들에게 장난을 쳤다.


가까운 이의 죽음이 강렬했던 기억은 고3 때다. 앞자리에서 쉬는 시간마다 등을 돌려 떠들던 친구. 공부보다는 노는 일에 더 열심이던 녀석. 밤바람이 제법 후끈해진 여름밤, 아버지 차를 끌고 나갔던 친구는 사고로 현장에서 즉사했다. 친구들과 찾아간 빈소. 나는 어쩔줄 몰라 국화를 들고 벌벌 떨었다.


문상을 마치고 장례식장 앞 마당에 나와 크지막한 돌에 걸터 앉았다. 느티나무 사이로 햇볕이 이글거렸다. 장례식장 특유의 비릿한 향냄새, 끈적한 바람 냄새가 그로부터 꽤 오래 코 끝에 아른거렸다.


......


몇 년이 지난 어느날, 친구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 혹시...


영화 초반 주인공이 허탈하게 앉아 있던 돌의자. 그 위로 살랑거리는 나뭇가지. 쌔한 느낌에 혹시나 싶어 몇 번을 돌려봤다. 맞다. 친구를 보냈던 그 곳. 내가 걸터 앉았던 그 자리. 죽음을 준비하는 이의 담담한 목소리가 내내 이어지던 영화. 사랑의 설렘과 황망한 죽음을 오가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100번 쯤 본 것 같다. 지금도 짬이 나면 본다. 물론 비릿한 향내음의 기억은 흐릿해졌다. 20년 넘게 같은 영화를 보는데도, 여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한다. 풋풋하고 아련한 사랑 이야기를 지나,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아비의 이야기, 가슴 저린 아픔을 함께 맞이하는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까지.


죽음. 모두가 예외 없이 맞이하지만, 준비하는 사람은 잘 없는. 익숙해 질 수 없는, 익숙해 지지 않는 죽음 앞에서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루 쯤은 그 생경한 죽음을 곱씹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죽음을 준비하자.

아주 가끔씩이라도.



이 영화, 지금 보러 갈까요?


크리스 (aka 김프로)

왓챠


성장영화를 좋아합니다. 백지장 들 힘이 있을 때까지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예요. 세상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떠나는 게 목표입니다. 넷플릭스 보다 왓챠를 좋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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