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2017)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 왓챠로 영화를 볼 일이 늘었다. 극장에서 본 영화를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보기도 하는데, <콜럼버스>는 그렇게 재관람한 영화다. 그리고 역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각별한 데가 있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편리하다. 하지만 극장은 최적의 영화 관람 체험을 제공하고, 그것은 어둠 속에 앉아 영화를 보는 행위, 그리고 큰 스크린과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내는 사운드 시스템을 뜻한다.
한국계 미국인 비디오 에세이스트 코고나다의 장편 데뷔작 <콜럼버스>는 마블 코믹스의 영화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처럼 스펙터클이 주가 되는 영화는 아니다. 복잡한 이야기 구조도 없고 반전도 없다. 어쩌면 극장에서 가장 먼저 도태될 영화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큰 화면일 필요가 있을까? 입체적인 음향효과도 없네? 하지만 <콜럼버스>야말로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건물들이기 때문이다.
콜럼버스는 미국 인디애나 주의 도시 이름이다. 이 도시에서는 공공건물을 지을 때 밀러 재단이 선정한 목록에 오른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면 설계비용을 지원하는데, 콜럼버스에서 나고 자란 사업가 J. 어윈 밀러는 콜럼버스를 모더니즘 건축 박물관처럼 만들었다.
주인공 케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는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지만 건축 일을 해보고 싶어하는데, 어느 날 유명한 건축학자인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한 진(존 조)과 마주친 뒤 그에게 콜럼버스의 건물들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케이시는 어머니와, 진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고, 두 사람은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서로를 알아간다.
눈길 닿는 곳마다 수려한 건축물이 있는 콜럼버스에서, 건축물은 마치 자연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건물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건물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의 시원한 아름다움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 실내 장면들이 주는 아름다움은 각별하다. 공공건축물이라도 해도 모든 장소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사유지의 경우는 아예 외부인이 허락 없이 들어가 볼 수 없게 되어있다.
영화는 그 사적인 공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진이 아버지가 묵을 예정이던 호화로운 숙소에 대신 머물며 아버지의 옷이 걸린 옷장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소화하는 순간이나, 케이시가 좁은 공간에서 일상을 보내고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순간을 보여줄 때, 영화는 공간의 디테일에 고루 시선이 향하도록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콜럼버스>는 정적인 카메라워크가 알려주는 화면 속 이야기를 차분히 관찰하게 한다. 이야기나 대사가 아니라, 화면 안에 있는 물건들과 공간감이 관객에게 말을 걸어온다. 적게 말하고, 적게 보여주는 듯하지만, 그 모든 것은 관객의 마음속에서 증폭된다. 역시, 집에서 보는 영화도 좋지만 극장에 가고 싶다. 어서 재미있는 영화들이 잔뜩 극장에 걸렸으면 좋겠다.
콜럼버스, 지금 볼까요?
이다혜 / 씨네21 기자
2000년부터 씨네21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책 읽기 좋은날』,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아무튼, 스릴러』를 썼어요. 50개 넘는 간행물, 30개 넘는 라디오에서 종횡무진 활동해 왔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