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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Aug 06. 2019

인간의 두 얼굴, 베티블루 37.2

베티블루 37.2 (1986)



새로 시작하는 왓챠 브런치 필진 참여 연락을 받았다. 훗 나란 사람의 인기란~ 영화를 가지고 얘기를 해야 할 테니 이왕지사 왓챠플레이에 가입을 하고 같이 다룰 영화로 내가 아는 영화 몇 개를 검색했는데, 없다. 내 연식이 직시되는구나. 나와 있는 목록에서 관심 가는 영화를 확인하는데 이게 뭐야, 일반회원의 영화평을 보니 글솜씨가 나보다 훨씬 좋다. 이거야 원. 어차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심리전문가의 입장을 기대한 것이니 남들 좀 못 알아듣는 전문 용어 남발하면 되지 않겠나. 음하하.


그래서 채택한 첫 주제는 스플리팅(splitting)이다. 분열이라고 번역하지만 이분법적 극단주의나 흑백논리라는 말이 그 뜻을 더 쉽게 전달한다. 배트맨 다크나이트의 하비덴트는 내면의 그런 이분법적 선악을 극화하려고 아예 얼굴 반쪽을 화상 입은 것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뭔가 그럴싸한 심리 개념을 오락 영화로 설명하는 것은 '있어빌러티'에 부합하지 않다는 생각. 그래서 영화를 탐색하다 '이거야!' 하고 고른 것이, 베티블루 37.2이다.

 


1986년 개봉 당시, 야하다는 소문에 혹해서 비디오로 나오자마자 보았다.(또 내 연식이 나오네) 내용이 잘 기억 안 날 정도로 당시에는 중간 중간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빠른 속도로 탐색했었다. 글을 쓰기 위해 30년이 지난 지금 영화를 다시 보았는데, 이번에는 예전과 완전 반대로 야한 부분을 건너뛰고 나머지 내용만 골라 보고 있자니... 이게 이럴 일인가 싶다.


편의상 주인공이란 명칭을 빼고 설명하자면 (젠더 감수성에 따라 남자는 여자는 이라고 쓰고, A형은 B형은 이라고 읽는다) 남자는 과거에 쓴 소설을 쳐 박아 놓고 그것을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버리지 않는다. 반면 여자는 남자의 숨겨 놓은 소설을 발견하고 하나하나 다 읽고 마음의 안정을 얻고 온갖 출판사에 다 보내서 인정받기를 기다린다. 흥미로운 모순이 잘 표현된다. 남자는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지만 그저 쳐 박아 놓을 뿐이다. 여자는 그것이 안정을 주었지만 오히려 불안정을 유발하는 요소로 탈바꿈시킨다. 


여자의 임신 가능성은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에게도 생애 최고의 환희를 일깨우지만 임신이 아니라는 진단은 여자의 심리적 파국을 불러온다. 너무나 다채로운 여자의 감정 기복에 대부분의 관객은 저런 사람이 정말 있을까 생각하지만 필자는 진료 현장에서 비슷한 대상을 실제로 보기도 한다. 중간은 없이 너무 좋다가 너무 불행하다가, 너무 편안하다가 너무 폭발하는, 얌체공도 이런 얌체공이 없다.



조금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자. 스플리팅은 흑백의 극단성이 중요한 특징이지만 결국 두 영역이 조금도 섞이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왜 그럴까? 그것이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하나의 질문이다. 사람들은 그냥 적당히 뒤섞으면 될 일을 애써 분리시키는 영역이 하나 둘 있게 마련이며, 드물게는 경계성 성격처럼 매사 그러한 사람도 있다. 왜 사람은 쓰레기 같은 자기 예술성을 만인과 공유하고 인정받으려 할까. 왜 사람은 지랄발광 맞은 성격으로 조신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꿈꿀까. 


이유는 '욕심' 때문이다. 욕심이라고 하니까 나쁘게 들리는데 꼭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다. 쉽게 폭발하는 어머니에게 아이가 사랑받으려고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을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욕심이며, 스플리팅은 그런 과거의 욕심을 현재에 다시 펼치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보고 질리게 만들어 놓고서는 나를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근본 이유를 알면 애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용납할 것은 아니다. 영화는 광기를 멈추는 극단의 해결책을 보여주지만 현실은 그보다 밋밋한 해결책, 즉 정신건강 약물치료와 상담, 명상과 부드러운 인간관계, 이완요법과 운동 등을 제시한다. 글쎄, 현상은 영화 같은데 해결은 현실적이라고나 할까.


여러분 중에 상대와의 육체적 욕망을 꿈꾸면서 겉으로는 교양 있는 척하고 싶으면 지금 이 내용을 숙지하여 이 영화의 초심리학적 주제를 상대에게 설파하시라. 이후 이 영화를 같이 보면 상대의 초심리와 저심리가 자신과 조화롭게 뒤섞이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것이니 그 또한 아름답지 않겠느냐. 


어쨌든 나는 이러한 인간관계의 밀당을 공부로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이십대에 이런 지식을 터득했다면 영화에 준하는 연애를 해봄직도 했을 텐데, 제기랄.




이 영화, 지금 보러갈까요?


최의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에서 개인의원과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의나 글은 다소 유쾌할 수 있으나 진료실에서는 겁나 딱딱하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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