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왓챠 WATCHA Oct 14. 2019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뉴스룸>

뉴스룸(2012)



극우집단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특히 최근엔 전 세계적으로 극우세력의 증가가 눈에 띈다. 유럽에선 이민문제로, 미국에선 고용문제로, 그리고 한국에선 정치문제로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회적 다수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여전히 극우세력은 다수가 아닌 소수인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하지만 극우집단의 사회적 규모가 비슷하더라도 그 ‘정치적 힘’은 국가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국가에서는 극우세력이 정치적 소수파로 남아있는 반면, 어떤 국가에서는 한 정당, 나아가 국정 전반을 포획한 경우도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애론 소킨(Aaron Sorkin)의 드라마 ‘뉴스룸(Newsroom)’은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고 있다. 드라마의 백미는 시즌 1의 마지막 에피소드다. 잠시 그 내용을 살펴보자. 이 에피소드는 ‘도로시 쿠퍼’라는 96세의 할머니 이야기를 탑 뉴스로 전하며 시작한다. 테네시 주에 거주하는 쿠퍼 여사는 지난 75년간 투표에 참여해왔지만, 올 해부터 더 이상 투표를 할 수 없다. 테네시 주에서 제정한 새 법에 따르면 ‘사진’이 부착된 정부 발행 신분증을 가진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하는데, 미국의 경우 사진이 부착된 정부 신분증은 운전면허증과 여권밖에 없다. 결국 차가 없거나, 해외여행을 나갈 여유가 없는 도로시 쿠퍼와 같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투표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법이 테네시 주뿐만 아니라 33개 주에서 발의되거나 이미 채택됐다는 점이다. 해당법은 33개 주 중에 32곳에서 공화당 소속 의원에 의해 발의됐고,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를 통과했으며, 공화당 주지사에 의해 채택됐다. 다시 말해서 일명 ‘신분확인법’은 운전면허증도, 여권도 가질 수 없는 하위계층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공화당이 이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정책을 개발하기는커녕, 그들의 투표권을 박탈시키기 위해 반(反)민주적 법을 만들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문제에 접근하는 주인공 윌 맥어보이(제프 다니엘스)의 자세다. 그는 곧장 공화당 전체를 비판하는 지점으로 나가지 않는다. 마치 탁월한 외과의사처럼, 그의 칼은 공화당을 썩게 만든 환부의 근원, 바로 기독교 근본주의의 옷을 입고 소수 기득권의 이익을 관철해왔던 극우집단인 ‘티파티(tea party)’로 향한다. 그리고 ‘지각있고 현명하며 강인한 공화당원’들에게 더 이상 티파티에 포획되지 말고 이들을 당에서 도려내야 한다고 외친다. 급진적 원리주의자들에게 맞서서 보수당의 근본적인 가치를 지켜내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최고의 정치드라마로 꼽히는 ‘웨스트 윙(West Wing)’에서 민주당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줬던 애론 소킨이 뉴스룸에서는 공화당 지지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공화당 지지자를 통해 티파티를 비판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화당에서 티파티를 구분해내는 것이 드라마의 핵심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오랜 기간 현실 정치를 탐구했던 작가답게 애론 소킨은 정치의 본질이 좌우 중도세력간 타협에 의해 발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식상한 표현이다. 하지만 정치에서 이것만큼 중요한 얘기도 없다. 진보만의 정치, 혹은 보수만의 정치란 없다. 진보에게 보수는 없어져야 할 대상이 아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없어져야 할 대상은 양쪽 진영에 존재하는 극단적 세력들이다. 정치의 본질은 타협에 있건만, 좌우진영에 포진한 극단 세력들은 타협을 거부하고 상대를 사회악으로 규정한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할수록, 그래서 극단적 대결을 지속할수록 자신의 입지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에서 타협을 거부하는 자들은 십중팔구 민생보다 자신의 기득권을 더 중시하는 비정치적 존재일 확률이 높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비정치적 존재들을 도려내야 한다. 뉴스룸만큼 그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정치드라마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당파성이 강한 사람들에게 뉴스룸을 강추한다. 한 번 보지 말고 두 번 보자. 보고나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한국당 전체를 비판하지 말자. 마찬가지로 한국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전체를 비판하지 말자. 역설적이게도 그럴수록 우리가 증오했던 자들의 당내입지는 더욱 공고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우리가 던져야할 질문은 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누가 한국당과 민주당의 ‘티파티’인가?” 바로 그들을 도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각 당에서 극단주의자들을 분리수거할 때, 비로소 타협과 관용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 지금 보러 갈까요?


손정욱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前 국회의원 보좌관


정치와 인연이 깊은 비정치인입니다. 지난 10년은 여의도에서, 지금은 제주도에 거주하며 한국과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를 들여다보고 있는 섬사람이예요.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엔 따뜻한 것을 보고 싶다...<필라델피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