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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Oct 16. 2019

모순적인. 대담한. 신비로운. 유별난. 비밀스러운.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3)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다수의 인터뷰이가 누군가에 대해 회상하며 내뱉는 낱말,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짓는 미묘하게 불편한 표정들로 시작한다.


평생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았던, 심지어 현상이나 인화조차 하지 않고 필름 상태로 묵혀뒀던 사람. 바로 비비안 마이어다.


마이어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한 건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존 말루프다. 시카고 역사에 대한 사진 자료를 구하던 그는 창고 경매에서 구매한 커다란 상자에서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6, 70년대의 비범한 필름들을 발견한다.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람이 찍었다는 정보와 함께.



의문의 인물 비비안 마이어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은, 디지털 세계에서 그의 정체성을 새로 구성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구글 검색 결과조차 없던 마이어는 블로그와 플리커를 통해 유의미한 데이터들을 쌓아나가게 된다. 말루프라는 제삼자의 손을 빌긴 하지만, 마침내 공개된 자신의 사진들을 통해 다시 아이덴티티를 갖게 되는 것이다.


다큐에서 공개하는 마이어의 사진들은 진실한 시각과 위트를 갖고 있으며 테크닉에 있어서도 대담하다(극 중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로버트 프랭크나 다이앤 아버스 같은 흑백 시대 포토그래퍼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기억하고 증언하는 목소리에 의해 조금씩 드러나는 인간 마이어의 면모는, 어딘가 이상하고 괴팍한 보모다.


남의 집 아이 돌보는 일을 하며 몇 년에 한 번 거처를 옮기면서도 신문지부터 영수증까지 버리지 못하고 싸들고 다니는 호더이며, 자신의 시대보다 수십 년 전 복식들을 입고 다녔고, 가족이나 친구도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몇 년씩 세계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게다가 강박적으로 사진을 많이 찍는다(마이어가 남긴 사진은 15만 장 이상으로 언급된다. 디지털이 아닌 필름 시대에!).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정리 분류광이 발견해서 세상에 내보낸 수집광의 역사이며, 집요함이라는 두 사람의 교집합에서 성립할 수 있었던 기록이다.



다큐멘터리 초반이 ‘비비안 마이어는 누구인가?’ 하는 궁금증을 쫓아간다면 후반을 끌고 가는 질문은 이것이다.


‘마이어는 과연 생전에 자신의 사진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했을까?’


이 질문은 관객 이전에 우선 감독에게 무척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비밀스러운 작가를 세상에 공개해버린 자신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마이어의 외가 쪽 친척들이 모여 사는 프랑스 북부 아주 작은 마을에서 그 단서가 발견된다. 자신의 사진을 프린트해서 같이 판매해보지 않겠냐는 내용의 수십 년 전의 엽서가 그것이다.


그런데 왜 시카고나 뉴욕이 아니라 머나먼 프랑스 시골 현상소와 그런 일을 하려고 했을까? 아마 그런 비합리적인 면이 아니었다면 마이어가 이렇게까지 묻힌 인물이었을 리도 없을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평생 세상 속에 머무르지 못하고 떠돌던 아티스트가 온라인 공간에서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게 되는 이야기다. 생전에 누리지 못한 명예와 금전적 혜택은, 그 가상공간의 아카이브를 만들어준 제삼자의 몫이 된다. 다행스럽지만 쓸쓸하고 눈부시지만 씁쓸하다.


얼마 전 독립영화 <벌새>의 관객이 10만 명을 넘어섰다. 나의 동거인 김하나 작가와 함께 영화 GV를 진행했을 때 김보라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작업하는 동안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어요. 그런데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이렇게 사랑받을 줄 미리 알았더라면, 그 시간이 조금 덜 외로웠을 것 같아요.”


다행히 우리 시대에는 젊은 예술가들이 작업 도중의 분투를 드러낼 수 있는 채널들이 적지 않게 있다. 구독과 ‘좋아요’ 혹은 텀블벅 펀딩, 팬클럽 활동이나 리뷰를 통해 더 많은 이슈를 일으키기, 작품을 구매하는 행위로 창작자들을 응원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이제 마이어는 서울을 포함한 세계 여러 도시에서 전시를 연 작가가 되었고, 그의 사진을 알아보고 아끼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살아있을 때 인스타그램을 했다면 마이어는 괴짜스런 캐릭터인 채로도 스타가 되지 않았을까?


자신의 작품이 언젠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줄 알았더라면 그의 생은 조금 덜 외로웠을까?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영화, 지금 보러 갈까요?


황선우 / 작가


에디터, 작가, 운동애호가입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썼고요, 여성의 일과 몸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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