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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Oct 18. 2019

우산, 우리의 운명을 붙잡는...<번지점프를 하다>

번지점프를 하다(2000), 키친(2009)



아름다운 주느비에브는 준수한 청년 기와 사랑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아직도 너무나 어리기만 한 두 사람이어서 결혼을 반대하고 기이는 징집명령을 받고 전쟁터로 떠난다.


이미 뱃속에 아기를 가지고 있던 주느비에브는 기와 한 가지 약속을 한다. 딸을 낳으면 프랑소와즈, 아들을 낳으면 프랑소와라고 이름을 짓기로.

쉘부르의 우산(1964)

어머니가 운영하는 예쁜 우산집에서 주느비에브는 매일 기를 기다린다. 출산일은 점점 다가오고 조금씩 배는 불러 가고 주느비에브는 아이의 이름을 무엇으로 짓게 될지 궁금해 하면서 매일 기를 기다린다.


어느 날 전쟁터에서 기가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예쁜 우산들에 둘러싸여 눈물을 흘리던 주느비에브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을 사랑하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고 아기를 낳는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가고, 조용히 그러나 세상을 덮어버릴 듯 꾸준히 눈이 내려앉던 어느 날, 주유소에 멋진 차 한 대가 들어선다. 주인은 주유하는 동안 잠시 쉬어 가라는 친절을 베풀고 차에 있던 여자는 감사하며 차에서 내린다.

쉘부르의 우산(1964)

그 여자는 주느비에브. 그 남자는 기.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이지만 많은 말을 삼킬 수밖에. 차에서 내리지 않은 꼬마를 보며 남자가 이름을 묻자 여자는 프랑소와라고 답하고는 주유가 끝난 차를 몰고 떠나간다.


자끄 드미 감독의 필름 오페라 <쉘부르의 우산>의 오프닝을 아름답게 수놓던 우산들 속 어딘가에는 주느비에브와 기이의 사랑 한 조각이 기억되어 있겠지.




키친(2009)

모래. 사랑스러운 그녀, 매력적인 그녀. 모래는 양산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늘 양산을 들고 다니는 모래는 양산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니까.


어느 날, 햇빛이 강렬했던 그 날, 그 햇빛 때문에 잠깐 정신이 아득해졌던 그 날, 모래는 그, 두레를 만났다.


햇빛을 가려주었던 모래의 양산이 다른 사람의 시선과 관심을 가려주었던 모래의 양산이 외부의 공기를 막아주었던 모래의 양산이 그 햇빛 때문에 살짝 떨어지고 그래서 모래의 정신이 아득해진 그 순간, 그, 두레가 나타났다.


모래의 남편 상인이 아끼는 후배 두레. 그렇게 세 사람은 한 집에서 살게 되었고 달콤하고도 쌉싸래한 시간이 펼쳐진다.


영화 <키친>의 양산, 모래의 양산은 그렇게 두레를 모래의 세계로 들여보내 주었다.




번지점프를 하다(2000)

그 해 여름의 어느 날, 비가 내리던 그 날, 인우의 우산 속으로 태희가 뛰어 들어왔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두 사람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지만 인우가 입대하던 날 태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한 채 인우는 절망에 빠져버렸고 그렇게 아무런 답도 얻지 못한 채 세월은 흘러간다.


인우는 제대를 하고 교사가 되었고 가정을 꾸렸고 안정되고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다. 새로 맡게 된 학생들을 애정 어린 눈길로 훑어보던 인우는 현빈이라는 이름의 학생을 보게 되는데 이상한 느낌, 무언가 연결고리가 맞혀져가는 느낌을 받는다.


인우는 자신의 마음에 당황하게 되지만 결국 현빈에게서 태희를 발견하게 되고 운명으로 묶여있는 소울메이트 인우와 태희는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우산은 그렇게 둘의 운명을 붙잡아버린 오브제이다.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우산은 어떤 모양, 어떤 색일까.



자, 지금 보러 갈까요?


신지혜 / CBS 아나운서


<영화와 오브제>는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오브제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려 합니다. 글을 읽는 분들의 마음에 작고 맑은 감상을 불러일으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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