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리언 시리즈(1979~1997)
어떤 영화든, 1편을 보지 않고, 2편부터 보는 경우는 드물다. 전편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야기를 쫓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에이리언 2>는 예외였다. 1편도 안 보고 달려갔다. 감독 때문이다. 1987년에 개봉한 <터미네이터>를 보고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신인 감독의 이름을 뇌리에 새겼다.
천재구나!
미래에서 온 살인 로봇을 그린 그가 우주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었다기에 보러 갔다. 주인공도 <터미네이터> 1탄에 나온 미래에서 온 전사 마이클 빈이었다. 마이클 빈의 활약을 기대하고 갔다가 시고니 위버의 맹활약에 깜짝 놀랐다. 에이리언이라는 영화사상 최강의 강적이 나오는데, 더 막강한 여전사가 박살내 버리는 모습을 보고 물개 박수를 쳤다.
<에이리언 2>가 대박이 나자 1편을 극장에서 재개봉했다. 2탄의 스케일을 기대하고 갔다가 실망했다. <에이리언 2>의 원제는 <Aliens>다. 1탄에서는 후반부가 되도록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던 에이리언이 2탄에서는 떼로 나와 해병대와 우주 전쟁을 벌인다.
1탄이 SF라는 장르로 변주한 우주 공포물이라면 2탄은 전쟁 액션 영화다. 1편을 통해 우주 괴물의 정체는 다 드러났다. 2편에서는 물량공세를 퍼붓는다.
<에이리언 2>로 1탄보다 더 큰 흥행 성적을 거둔 제임스 카메론은 훗날 <터미네이터 2>를 들고 나와, 속편으로 대박을 내는 재주를 계속 선보인다. <터미네이터> 1탄이 저예산 독립영화였다면, 2탄은 헐리웃 영화 기술의 총화를 보여주는 액션 블록버스터였다.
<에이리언 2>가 흥행한 덕분에 제작비를 넉넉하게 동원할 수 있었고, 이 영리한 감독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SF 영화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제임스 카메론이 새로운 영화를 만들 때마다 기술의 진보를 보여준다면, <에이리언 시리즈>는 새로운 감독을 만날 때마다 장르의 진화를 이룩한다. 1탄이 공포 영화, 2탄이 전쟁 영화라면 신예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맡은 3탄은 SF 느와르였고, 장 피에르 주네가 만든 4탄은 비주얼이 독특한 영화였다.
4탄의 각본을 쓴 신인 작가 조스 웨던은 훗날 <어벤져스>를 성공시켰으니 <에이리언> 시리즈는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등용문이었다.
새로운 <에이리언> 시리즈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매번 집에서 비디오나 DVD로 1탄부터 정주행을 했다. 새로 나올 영화는 어떤 진화를 보여줄까 설레며 기다렸다. 회사 자료실에 있는 수 만장의 영화 라이브러리에 접근할 수 있는 게 MBC PD가 된 최고의 보람이었다.
이제는 왓챠플레이 덕분에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으니, 영화광에게 이보다 더 행복한 시절이 또 있을까?
<에이리언>같은 강적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1탄에서 리플리는 기본에 충실한 원칙주의자로 조심스럽게 대처한 덕에 끝까지 살아남는다. 2탄에서 리플리가 살아남은 건 약자를 구하러 나섰기 때문이다. 공포영화에서는 혼자 살겠다고 달아나는 사람이 가장 먼저 죽는다.
목숨을 걸고 약자를 구하려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된다. 고양이 죤스를 찾아 나서고 여자애 뉴트를 구하러 가는 순간, 리플리는 살아남게 된다. 영화 작가와 감독은 관객이 응원하는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배신자로 찍히면 안 되니까.
인생을 살면서 강적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드라마 연출가로 데뷔하며 답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신인 시절의 제임스 카메론과 데이비드 핀처를 생각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성공시킨 시리즈의 후속편을 맡았을 때, 신인 감독이 느낀 부담은 얼마나 컸을까?
마치 우주선 안에 침입한 에이리언 성체를 마주한 것 같은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신인들은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살려냈다.
최강의 악당을 만났을 때, 예전의 성공방식을 베끼는 건 의미가 없다. 최강의 악당이 아직 버티는 이유는 기존의 해법이 안 먹혔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을 땐, 일단 나만의 답을 찾아본다. 먹히거나 말거나, 일단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걸로 승부한다. 답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김민식 PD가 강추하는 에이리언 시리즈, 보러 갈까요?
김민식 / MBC 드라마 PD
MBC 드라마 PD입니다. <뉴논스톱>, <이별이 떠났다>, <내조의 여왕> 등을 연출했어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매일 아침 써봤니>,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도 집필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