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전설(2004)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말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때로는 복잡한 철학보다 직관적인 한 마디가 더 마음을 파고든다.
우연히 봤다가 자지러지게 웃었던 영화가 ‘바람의 전설’이다. 주인공이 제비족 친구에게 돈을 꿔줬다가 돈 대신 춤을 배우게 되는 설정. 춤의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바람이 바람이... 실제 영화에서도 바람이 부는 장면으로 연출된다. 주인공은 뒤늦게 숨겨진 자신, 춤에 환장하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
여차저차해서 그는 춤을 위해 스스로는 원치 않는(강조) 카바레 출입을 하게 되고, 본의 아니게(비교급 강조) 여성들을 유혹하는 꼴이 되고, 정말 어쩔 수 없이(최상급 강조) 상대에게 돈을 받은 일련의 과정을 되풀이하게 된다.
결국, 제비가 되었다는 말씀. 그렇게 자신을 인정하면 좋겠지만 주인공은 끝까지 자기를 부정한다. 영화 중반, 1시간 12분 44초 쯤 나오는 다음의 대사에서 내 허파엔 구멍이 뚫리고야 말았다.
주인공: 날 너 같은 놈이랑 같은 부류로 생각하지 마라. 나 제비 아니야, 이 새키야!
친구: 아니 지가 제비가 아니면 까마귀야 갈매기야? 새키, 정체성이 없어.
정신건강 전문의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라 위트를 느꼈을까. 정체성이란 단어에서 난 그야말로 빵 터졌다. 한참 지나 영화 제목을 까먹어서 “아 그, 영화에서 정체성이 없다고 대사 나오는 영화 있는데, 춤 영화인데..” 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정체성(identity)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자각하는 것을 말한다. 내부로부터 오는 자각과 외부로부터 오는 자각이 조화로울 때 적절한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은 자신이 춤을 사랑한다는 내부로부터 오는 정체성은 인정했지만, 외형상 별 수 없는 제비족임은 철저히 부정했다.
적당한 부정이 아닌 강한 부정은 일반적으로 긍정에 대한 저항이다. 그런 어설픈 방어를 쓰다간 상대에게 마음을 들키기 쉽다. 나의 부인님은 그냥 안 했다고 하면 되는데 평소와 달리 눈을 똥그랗게 뜨고 하이톤으로 “안 했어~”라고 하면 십중팔구 한 것이다.
이러한 자각. 자신이 현재 저항의 방어를 쓰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다면, 즉 “이 부정은 오히려 긍정이란 뜻이구나” 느끼게 된다면 외부로부터 오는 정체성을 보다 적절하게 수용하게 될 것이다. 또 내부로부터 오는 정체성과 조화시키는 요령도 늘어날 것이다.
정체성 관련해 두 가지 팁을 드리겠다. 첫째, 정체성은 고정적이지 않다. 시간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면을 보인다. 누가 우리 정체성을 지적할 때 불쾌해하고 핏대를 세우며 부정할 필요 없다. 오히려 그런 면이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는 게 좋다. 우리의 다양한 정체성을 인정하고 너그럽게 살자.
둘째, (정체성은 다양한 면을 보이지만) 그래도 우선되고 주된 면이 있다. 그것 때문에 우리 자신이 어떠하다고 표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정체성의 측면이 비등해서 무엇이 우선되거나 주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면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청소년 시기에 이러한 혼란이 많다. 스스로 “난 나를 잘 모르겠어”, 심지어 “나는 내가 없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청소년이 많다. 나는 그들에게 “모른다거나 없다기보다는 너무 여러 종류라서 그런 거겠지.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단순해지고 주되고 우선되는 게 정해질 거야”라고 설명한다.
이 설명만으로도 위안을 얻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나아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본인이 그러하다면, 써먹어 보기 바란다. 아. 그리고 일본 영화 ‘쉘 위 댄스’만 보고 ‘바람의 전설’은 보지 못한 분들, 균형을 위해 꼭 보시기를 추천한다.
바람의 전설, 지금 보러 갈까요?
최의헌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에서 개인의원과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의나 글은 다소 유쾌할 수 있으나 진료실에서는 겁나 딱딱하다고 하니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