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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계채널 이은경 Jul 16. 2021

중력을 거스르는 워치메이킹의 예술, 투르비용

투르비용 발명 220주년을 기념한 투르비용에 관한비하인드 스토리.

1801년 6월 26일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자신이 발명한 투르비용의 특허권을 획득했다. 천재성이 돋보이는 이 걸작은 220년 동안 여러 세대의 워치메이커와 엔지니어의 손을 거치며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했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발명하고 스위스의 위대한 시계 제작자들이 발전시킨 투르비용이 최고의 컴플리케이션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을 아무도 없을 것이다. 투르비용의 발명 220주년을 맞은 2021년 여름, 투르비용에 관한 방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브레게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씬 스켈레트 5395(사진 제공 : 브레게)


기계식 시계가 정확히 언제 발명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휴대할 수 있는 최초의 회중시계는 16세기 초에 처음 등장했고, 이후 시계 제조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시계 제작자들은 정확한 시각 표시를 방해하는 여러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고, 그들의 노력 덕분에 인류는 점점 더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2021년의 기계식 시계는 일오차 0.3초의 매우 정확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18세기 말 자신의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던 사람들에게 회중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지 못했다. 그래서 광장이나 교회에 설치된 시계를 보며 자주 시각을 다시 맞춰야만 했는데, 이처럼 번거로운 문제점을 조금이나마 해결해준 것이 바로 투르비용(Tourbillon)이었다. 


브레게 투르비용 포켓워치 Ref.1176(사진 제공 : 브레게)


천재 워치메이커의 탄생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사진 제공 : 브레게)


투르비용은 스위스 뇌샤텔에서 태어나 15세의 나이에 프랑스 베르사유와 파리에서 수습 과정을 수료한 워치메이커 아브라함 루이-브레게(Abraham-Louis Breguet)의 머릿속에서 탄생했다. 아브라함 루이-브레게는 당시에도 세계적인 도시로 손꼽혔던 파리에서 고등 교육을 마쳤으며, 마자랭 대학 (Collège Mazarin)에서 교육을 받았다. 마자랭 대학은 특히 수학과 물리학 등 과학 분야의 튼튼한 토대를 갖추고 있었으며, 사실상 이를 통해 브레게는 워치메이커가 되기 전에 먼저 훌륭한 엔지니어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되었다. 


(좌측부터) 마리 앙트와네트, 루이 XIII


1775 년 시테 섬에서 사업을 시작한 그는 루이 16 세(Louis XVI)와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 루이 18세에 이어 베르사유 궁전의 모든 사람을 매혹시켰을 뿐만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기술적 혁신과 유려하면서도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국제적 명성을 누리는 혁신가로 거듭났다. 전 세계의 주요 도시에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며, 많은 사람이 브레게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1793 년 프랑스혁명이 발발하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프랑스를 떠나 자신이 태어난 스위스로 망명해 2 년간 제네바를 시작으로 뇌샤텔을 거쳐 마지막으로 르로클에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스위스 쥐라 지역의 워치메이커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기술적 영역을 넓혀나갔다. 


브레게 심퍼티크 클록과 택트 워치(사진 제공 : 브레게)


1795년 봄에 프랑스로 돌아온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다양한 연구와 기술적 업적을 이어가며 자신의 경력에 새 장을 펼쳤다. 5 년간 브레게는 고객에게 신제품을 소개하면서 전 세계적인 명성과 신망을 얻었다. 이 기간에 선보인 신제품 중에 터치로 시간을 읽을 수 있는 ‘택트 워치’, 테이블 클록 위에 시계를 고정시켜 시간을 초기화하고 동기화할 수 있는 ‘심퍼티크 클록’, 미니멀리즘이 돋보이는 ‘서브스크립션 워치’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물리학과 중력의 법칙에 대한 도전

   

브레게 투르비용 포켓워치 Ref.2567(사진 제공 : 브레게)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활동하던 시대는 클록과 회중시계가 공존하던 시기였다. 손목시계가 등장했지만 더 정확한 회중시계를 한동안 더 사용하던 20세기 초처럼, 18세기의 사람들도 클록보다 정확성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회중시계를 신뢰하지 않았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연구와 관찰을 통해 회중시계의 정확성을 손상시킬 수 있는 여러 요소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특히 이스케이프먼트에 영향을 주는 중력의 법칙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브레게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 당시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당대에 워치메이킹으로 명성이 높았던 프랑스와 영국, 스위스의 성과를 흡수하고 종합한 유일한 워치메이커였다. 메탈 소재의 확장과 오일의 안정성에 관한 모든 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브레게는 해당 문제와 관련된 작업을 통해 대처했다. 그는 시계의 내부 장치와 일정한 회전력에 영향을 주는 물리학 법칙의 영향을 보완했다. 그러나 중력의 법칙을 바꿀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 영향을 조절하기로 했다. 


브레게 클래식 투르비용 스켈레트 5395PT의 조립 과정(사진 제공 : 브레게)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태도 외에도 과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특정한 상황을 바탕으로 ‘투르비용’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투르비용이라는 단어는 ‘회오리바람’으로 잘못 해석되면서 본래의 천문학적인 의미는 오래전에 퇴색되었다. 

그러나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가 내린 정의나 백과전서(Encyclopédie)를 비롯한 19 세기의 주요 사전 등에서 투르비용은 행성계 및 단일 축에서의 회전을 가리키거나 태양 주위에서 천체가 회전하도록 하는 에너지를 의미했다. 당시 투르비용이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는 현대적 의미의 ‘격렬한 회전’이나 ‘통제 불가능한 폭풍’과는 지극히 달랐던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의 사람이었던 브레게는 모방하기에 앞서 세계를 관찰했던 사람이 고를 법한 단어를 채택했고, 이 점에서 우리는 브레게를 통해 워치메이킹을 소우주의 탄생으로 여겼던 18 세기 철학자와 같은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사실 천체와 마찬가지로 일정하게 회전하는 이동식 케이지 속에 조절 장치인 밸런스 스프링, 힘을 전달하는 이스케이프 휠과 레버로 구성된 장치 등을 조합한 메커니즘에서는 아주 작고 깔끔하게 정렬된 별자리를 손쉽게 엿볼 수 있다.  



프랑스 내무부 장관에게 보낸 편지 

1801년 프랑스 특허 신청 당시에 동봉한 타임피스에 관해 설명하는 수채화 판(사진 제공 : 브레게)

1801 년 프랑스는 이미 강력한 관료주의 체제와 법률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이 같은 상황에서 브레게는 당국의 특허를 받기 위해 신청 서류에 산재한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그는 타임피스에 관해 설명하는 수채화 판(Watercolor Plate)을 준비하고 내무부 장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내무부 장관님께
시간 측정 장치의 활용을 극대화할 새로운 발명품에 관한 설명을 담은 논문을 보내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해당 장치는 투르비용 레귤레이터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저는 이 발명품을 활용해 레귤레이터의 무게 중심이 중력의 영향으로 그 위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이상 현상을 성공적으로 보완했습니다. 또한 레귤레이터의 축과 축이 움직이는 구멍 주위의 모든 영역으로 마찰력을 분산시키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오일이 응고되더라도 모든 마멸 방지 부품을 매끄럽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브먼트의 정확도에 손상을 가져올 수 있는 많은 오류도 제거했습니다. 
이 모든 이점과 함께 자유로운 창의력으로 생산했다는 점, 해당 장치를 확보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투입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발명일을 정하고 저의 희생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보장하는 특권을 주장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기록으로 남긴 투르비용의 역사  

1801년 6월 26일 프랑스 파리에서 특허를 취득하기까지 6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판매되기까지 추가로 6 년이 더 필요했다. 이 같은 점들을 비추어볼 때 브레게가 새로운 타입의 조절 장치를 미세하게 튜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과소평가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브레게 특유의 낙관적인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한 내무부 장관에게 송부한 편지에서 언급되는 ‘상당한 비용’과 ‘희생’은 1801 년 특허를 취득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는 다시 말해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극도로 정교한 투르비용을 개발하고 안정적으로 구현하기까지는 10 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마스터 워치메이커 브레게는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고 투르비용을 언급했으며, 1802년, 1806년, 1819년에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만국 박람회에서 꾸준히 홍보를 진행했다. 그는 ‘시계가 똑바로 있거나 기울어지는 등 위치에 상관없이 정확성을 유지하는’ 이 메커니즘을 타임피스에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브레게 Ref.1188(사진 제공 : 브레게)

브레게와 직원들은 다양한 타임피스에 설치할 수 있는 투르비용의 중요성에 확신을 가지고 1796 ~1829 년에 걸쳐 40 개의 투르비용을 계속해서 제작했다. 이밖에도 마무리하지 못하거나 장부에 기록하지 못한 것과 폐기 또는 분실된 투르비용도 9개나 있었다. 브레게는 가능한 범위에서 역사적 기록물에 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정확한 리스트를 작성하고, 각 제품의 이력을 명확하게 기록해왔다. 


브레게 Ref.2567(사진 제공 : 브레게)


골드 또는 실버 케이스에 담긴 투르비용은 예술적인 매력과 눈부시게 빛나는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무브먼트의 정확성을 향한 물리학의 산물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섬세한 마감을 더해 완벽함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예술 작품을 방불케 한다. 투르비용의 다이얼은 브레게 하우스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산물이다. 모든 브레게 시계는 브레게만의 특징인 완벽한 가독성과 골드, 실버, 에나멜로 장식한 다양한 스타일의 다이얼,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 온도계, 스몰 세컨즈 등에서 어느 하나 동일한 요소를 찾아볼 수가 없다.  


존경받는 유산 


브레게 마린 5887PT(사진 제공 : 브레게)


계몽주의 시대의 사고방식과 눈부신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계 역사에 혜성처럼 등장한 투르비용의 존재감은 이제 희미해졌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결정적인 부분은 아직 남아 있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제작한 투르비용 타임피스는 영국의 조지 4 세(George IV)부터 데이비드 살로몬스 경(Sir David Salomons), 조지 대니얼(George Daniel), 니콜라스 하이에크(Nicolas Hayek)에 이르는 수집가, 역사가 등 워치메이킹 업계의 주요 인물을 매혹시켰다. 

12 점의 시계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3점은 브레게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5 점은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영국의 다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이탈리아와 예루살렘, 뉴욕에서 만날 수 있다. 15점의 시계는 개인 수집가가 소유하고 있고, 최근에 2 점의 시계가 경매에서 낙찰되었다. 총 40 점의 오리지널 타임피스 중 30 점이 현존하고 있는데, 이렇게 높은 비율은 브레게 시계가 많은 사람을 매혹시켰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스위스 발레드주에 있는 브레게 매뉴팩처(사진 제공 : 브레게)

스위스 워치 브랜드 브레게는 세심한 관리를 통해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제작한 타임피스를 보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20 년부터 1950 년까지 새로운 투르비용 회중시계를 출시했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투르비용은 1980 년대 중반에 다시금 존재감을 선보이며 중력에 훨씬 둔감한 작은 케이스의 손목시계로 다시 태어났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그 이후로 투르비용은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기세로 업적을 쌓아가며 해가 갈수록 그 기술력을 더해가고 있다.


(좌측부터) 브레게 클래식 뚜르비옹 메시도르 5335BR, 브레게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씬 스켈레트 5395
화이트 그랑푀 에나멜 다이얼과 블루 에나멜 다이얼로 제작한 브레게 클래식 뚜르비옹 5367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발명한 투르비용은 뛰어난 정확성 외에도 여러 가지 주요 장점이 있다. 시계 애호가라면 무엇보다 투르비용의 혁명적인 회전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로저 드뷔, 오데마 피게, 피아제, 불가리, 쇼파드, 랑에 운트 죄네 등 하이엔드 브랜드와 모저앤씨, 엠비앤에프, 드베튠, 앙투안 프레지우소 같은 독립시계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이제 투르비용은 브레게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지만, 역사적으로 그 시작이 1801년 6월 26일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빛나는 업적으로 남아 있다. 시계애호가들의 천체가 투르비용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브레게 클래식 더블 뚜르비옹 5345(사진 제공 : 브레게)




이 기사는 <레뷰 데 몽트르 코리아> 2021년 7월호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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