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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칭 Jun 12. 2019

OJ심슨 사건, 드라마로 완전정복

<OJ심슨파일: 어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는 제목대로 OJ심슨사건을 다룬다. 인종차별과 형법체계의 불완전성, 인간의 편견까지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세기의 사건이다. 세상 제일가는 각본가를 데려와도 이 사건을 뛰어넘는 드라마틱한 작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OJ 심슨파일>이 그 어떤 법정드라마보다 재밌고 흥미진진한 이유다. 2016년 에미상 9개 부문을 휩쓸었다. 



제목   O.J. 심슨파일: 어메리칸크라임스토리  
출연   쿠바구딩 주니어, 세라 폴슨, 존 트라볼타
등급   19세 이상 
시즌   1(2016)
평점   IMDb 8.5 로튼토마토 92% 에디터 꿀잼  



보통명사된 'OJ 심슨 사건'


'스팸'이나 '워크맨'처럼 너무 유명해서 고유명사가 보통명사로 되는 것들이 있다. 범죄의 역사에서는 'OJ 심슨사건'이 꼭 그렇다. 살인의 증거가 차고넘치는 듯하다 막상 재판에서 무죄가 되는 반전이 생길 때 언론은 곧잘 '제2의 OJ심슨사건'이라거나 '한국판 OJ심슨사건'이라고 떠든다.[1]

미국에서 미식축구 선수로, 연예인으로 성공했던 OJ심슨의 실제 모습. [중앙포토]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름. OJ심슨은 70년대 전설적인 미식축구 선수였다가 은퇴 후 영화계(<총알탄 사나이>에 출연했다)에 들락거렸고 TV쇼에도 단골손님이었다.  당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셀럽 중 하나였다.  


증거는 차고 넘쳤다 


드라마는 OJ심슨사건이 벌어지기 2년 전인 1992년, 미국 LA에서 벌어진 흑인폭동 화면으로 시작된다.  흑인사회에 가득한 인종차별 분노는 폭동이 후에도 사그라들지 않았고,  OJ심슨 사건으로 고스란히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OJ심슨 역할을 한 쿠바 구딩 주니어. [사진 FX Networks ]

1994년 6월 12일 미국 LA의 부촌 브렌트우드.  OJ심슨의 전처 니콜 브라운 심슨과 식당 종업원인 론 골드만이 잔혹하게 살해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는 모두 OJ심슨을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OJ심슨의 차량에서 전처 니콜의 혈흔이 발견됨

현장에서 범행에 쓰인 왼쪽 장갑이 발견됨

장갑에서 OJ심슨, 니콜, 골드만 3명 혈흔이 발견됨

오른쪽 장갑은 OJ심슨의 집 수색과정서 발견됨

현장 족적의 사이즈가 OJ심슨과 정확히 일치함


통상 이 정도 증거면 게임은 끝난 셈. 동선별로 증거는 딱 맞아떨어졌다. 전처와 사이가 안좋은 OJ심슨이 챠량을 몰고 찾아가 장갑을 끼고 니콜과 골드먼을 잔혹하게 살해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더구나 OJ심슨은 수사망이 좁혀오자 차량을 타고 도주에 나섰다. 달리는 차안에서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모습은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OJ심슨 사건이 복잡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변호 맡은 절친들도 믿지 않았다 


OJ심슨은 체포된 후 절친이자 변호사인 로버트 샤피로와 로버트 카다시안에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한다. 제 아무리 절친이지만, OJ심슨이 범인이라는 확신을 가졌을 법하다. 로버트 카다시안은 실제로 평생 OJ심슨을 범인이라 믿었다.[2]

극중 샤피로와 카다시안과 실제 주인공들. [사진 FX Networks, 위키피디아]

그럼에도 샤피로와 카다시안은 투철한 직업정신(?)과 우정으로 OJ심슨 구하기에 나선다. 드라마에서 샤피로는 OJ심슨과 단둘이 방안에서 "나는 가장 먼저 고객에게 이 질문을 한다. 진짜 했느냐"고 묻고, OJ심슨은 부정한다. (그래도 샤피로는 안믿는다) 


인종차별 프레임 반격


샤피로가 가장 잘한 건 조니 코크런을 합류시킨 일이었다. OJ심슨 사건을 인종차별 문제로 연결시킨다는 심산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흑인 인권 운동가이자 변호사인 조니 코크런은 선임 자체가 상징적이었다.


코크런은 성공한 흑인, 백인 여성과 결혼한 흑인에 대한 편견으로 OJ심슨을 사건 초기부터 범인으로 몰았다며 경찰을 공격했다. 사건을 맡은 마샤와 다든 검사는 명확한 증거가 발견된 살인사건이 본질이라고 맞섰다.

마샤 클라크와 크리스토퍼 다든 검사 [사진 FX Networks, 위키피디아]

팽팽하던 기싸움은 코크런이 확보한 녹취록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사건담당 경찰 마크 펄먼이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육성 테이프였다. 드라마에서 코크런은 "테이프는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며 흥분한다. 


대본 작가와 인터뷰가 녹음된 테이프에서 펄먼은 "깜둥이(nigger)는 패서라도 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자신의 상관인 LA경찰서장(여성)을 성희롱하는 내용도 담겼다. 그녀는 OJ심슨 재판의 주심판사 랜스 이토의 부인이었다.  

극중 랜스이토 판사와 실제 모습 [사진 FX Networks, 위키피디아]

펄먼은 OJ심슨 사건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핵심 증거인 장갑과 혈흔은 모두 그가 발견했다. 하지만 장갑을 발견한 후 하루 지나서야 제출하고, DNA 대조를 위해 채취된 OJ 심슨의 혈액 상당수가 사라진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코크런은 증거조작 의혹을 제기한다.


궁지에 몰린 펄먼은 모든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며 입을 꿰매버렸다. 드라마 속 코크런은 그에게 마지막으로 질문한다. 


"펄먼 형사, 이 사건과 관련해 증거를 심거나 조작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까?"


펄먼은 이 질문에도 입을 닿았다. 펄먼의 초점 없는 무표정과 검찰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대비되는 장면은 압권이다. 

드라마 속 마크펄먼(큰 사진)과 실제 모습. [사진 FX Networks, 위키피디아 ]

테이프 확보 과정은 이 드라마가 얼마나 디테일에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다. 당시 코크런은 여성 작가가 대본 제공을 거부하자 그녀의 주소지가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법원에 요청을 한다. 보수적인 남부지역의 판사는 이를 거부하고, OJ심슨 변호인단의 다른 백인 변호사인 리가 재요청을 해서 가까스로 받아낸다.


<O.J.심슨파일>은 이런 배경을 노스캐롤라이나 법원 앞 장면으로 오묘하게 표현한다. 코크런과 리가 들어가는 법원 앞에는 남부연합군의 깃발이 당당하게 펄럭이고, 또 그 앞에는 남부연합군의 용맹함을 기리는 동상이 우뚝 솟아있다.  법원은 흑인을 위한 곳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맞지 않으면 무죄다' 


"맞지 않으면 무죄이다." (If it doesn't fit, you must acquit.) 


코크런은 법정에서 범죄의 역사에서 두고두고 명언으로 남게 될 이 말을 남겼고, 드라마 속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OJ심슨은 증거로 제출된 가죽장갑을 법정에서 착용했는데, 누가봐도 너무 작아보였다. 코크런은 이 간단한 사실을 주지시키며 '맞지 않으면 무죄'라는 말로흔들리는 배심원들의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OJ심슨의 무죄를 이끌어낸 코크런 변호사 [사진 FX Networks, 위키피디아]

당시 이 장갑을 법정에서 끼워보게 하자고 제안한 것은 다름아닌 검찰이었다. 드라마에서 마샤는 장갑 착용을 반대하지만 다든이 밀어붙이는 것으로 나온다. 유죄 입증을 위해 자신들이 제안한 방법이 오히려 OJ심슨의 무죄 판결의 결정적 계기가 된 셈이다. (장갑이 피로 물들어 줄었다거나, 심슨이 관절치료를 중단해 손이 커졌다는 의혹들이 후에 제기된다


배심원들은 10대 2로 OJ심슨에게 무죄를 평결했다. 배심원은 흑인 9명, 백인 2명, 히스패닉 1명으로 구성됐다. 백인 2명만이 유죄를 써낸 것이다. 검찰과 변호인의 요구로 여러차례 배심원들이 교체되고, 인종 간 펼쳐지는 미묘한 신경전을 드라마는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무죄받은 살인자일까 


드라마는 OJ심슨이 무죄를 선고받고 기사회생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 이후 OJ심슨은 천문학적인 선임료 때문에 파산 지경에 이르렀고, 2007년 무상강도 짓을 하다 잡혀 수감됐다. 9년만인 2017년 10월 석방돼 쓸쓸하게 살고 있다. 반면 OJ심슨 사건으로 경력에 치명상을 입고, 은퇴한 검사 마샤 클라크는 자서전으로 잭팟을 터뜨렸다. 


OJ심슨은 전처를 정말 죽이지 않았을까. 모든 증거는 그가 살인자라고 말해주고, 주변인들도 그가 살해를 고백했다는 주장도 여전하다.[3]   다만 그는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을 뿐이다. 재판은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일 뿐, 완벽한 정의의 저울은 될 수 없다.  <O.J. 심슨파일>이 말해주는 사실이다. 


TMI

심슨의 친구이자 변호인 중 하나였던 로버트 카다시안은 할리우드 배우이자 방송인인 킴 카다시안의 아버지다.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의 시즌1격으로 제작된 이 작품의 원제는 으로 FX Network(미국 케이블 채널) 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2016년 에미상 남우주연상(코트니 B 반스), 여우주연상(사라 펄슨), 남우조연상(스털링 K브라운), 작품상, 각본상 등 9관왕에 올랐다. 


참고자료

[1]‘한국판 OJ심슨 사건’이라고 표현한 기사

[2]로버트 카다시안이 OJ심슨을 유죄라고 믿었다는 인디펜던트 기사

[3]심슨의 매니저, 마이크 길버트의 자서전을 다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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