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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칭 Jun 20. 2019

멕시코 현대사의 현미경, 비운의 후보

'멕시코판 케네디' 사건을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비운의 후보>는 정치 스릴러다. 탄탄하고 촘촘한 이야기가 재미를 준다.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먼 나라 멕시코의 현대 정치사까지 덤으로 이해하게 된다. 


개혁적인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물이 갑작스레 유세 현장에서 총탄으로 쓰러진다. 현장에서 용의자는 빠르게 검거되지만, 그가 진범인지는 찜찜하기만하다. 증거와 범행동기가 없다. 그러나 정부는 용의자가 진범임이 확실하다며 서둘러 수사를 마무리하길 원한다. 지방경찰서장이 집요한 의심으로 파고들지만 번번히 묵살되고 만다. 진실은 뱀의 머리처럼 고개를 쳐들 수 있을까.   

실제 콜로시오의 모습 [위키피디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범죄의 기록: 비운의 후보(Crime diaries The Candidate)>는 1994년에 벌어진 '멕시코판 케네디 사건'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 암살 사건을 다룬 드라마다. 아직까지 미제로 분류되는 사건인만큼 결말은 사이다 보단 고구마에 가깝지만 암살 이후 긴박하게 전개되는 배신과 음모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롭다.


멕시코 정서 대변하는 베니테스 서장 


멕시코의 정치인 콜로시오는 현직 대통령인 살리나스로부터 제도혁명당(PRI)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 하지만 콜로시오는 대선 후보가 된 순간부터 보수적인 살리나스와는 선을 긋는 정치행보에 나선다. 후원을 약속하는 정부 인사를 물리치고, 개혁적인 정책을 펼칠 것임을 선포한다. 그의 불편한 행보가 정적들의 미움을 산 것은 물론이다. 이런 긴장감이 고조되던 묘한 타이밍에 콜로시오는 총격으로 사망하게 된다.   

지방경찰서장인 베니테스는 콜로시오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집요하게 물고늘어진다. [사진 넷플릭스]

드라마 속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인물은 지방경찰서장인 베니테스다.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연방경찰과 중앙정부와는 달리 그는 집요하게 사건을 물고 늘어진다. 드라마처럼 베니테스가 실제로도 콜로시오의 죽음에 전적으로 매달렸는지, 유의미한 증거를 확보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그는 콜로시오의 죽음에 대한 멕시코 사람들의 합리적 의심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실제로 콜로시오 죽음을 수사한 특별검사팀이 5년만에 결과를 내놓았을 때 멕시코인들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특별검사팀은 ‘정신질환자가 콜로시오를 죽였다는 사실 외에 확인된 게 없다’고 발표했다.[1] 왜 멕시코 사람들은 콜로시오 죽음이 정치적 암살이라고 굳게 믿었을까. 베니테스 같은 캐릭터가 설득력있는 이유는 뭘까.


혁명이 낳은 사생아 일당독재


멕시코는 현대정치는 제도혁명당(PRI)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콜로시오가 속한 정당이기도 하다. PRI는 이름 그대로 '혁명을 제도화한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독특한 정당이다. 배경은 1910년 프로피리오 디아스 대통령의 개헌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그는 장기집권을 위해 연임 규정을 만들었고 이에 반대한 혁명이 유혈사태로 비화됐다. PRI는 이같은 혁명정신을 계승하고 제도화한다는 명목으로 1929년 창당됐다.[2]

극중 콜로시오가 암살당하는 유세장면 [사진 넷플릭스]

혁명의 제도화라니. 문구만 놓고보면 개혁과 진보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듯하다. 적어도 창당 초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혁명은 흐릿해졌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혁명의 정통성을 갖고 있는 유일한 정당으로 군림했다. 2000년까지 무려 71년간 장기집권을 이어갔다. 독재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PRI가 일당독재로 나아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장기집권을 이어온 PRI도 절대 어길 수 없는 혁명의 정신은 있었다. 대통령 6년 단임제다. 대통령 연임에 대한 반발로 혁명이 촉발된 것을 감안하면 당연하다. 그래서 PRI 소속 대통령이 물러날 때 즈음 자기 후계자를 지목했다. 드라마에서도 콜로시오는 대통령 살리나스에 의해 콕 지목된다. 오죽하면 멕시코에서는 ‘sexenio(대통령 6년단임제 원칙)’와 ‘dedazo(후임자 손가락 지명)’란 단어가 정치용어로 굳어졌다.[3]


콜로시오의 죽음이 뿌린 개혁의 씨앗


콜로시오는 과격한 개혁주의자는 분명 아니었다. PRI 소속 정치인(상원의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정치에 뛰어들었고, 보수적으로 변질된 PRI란 틀을 거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틀안에서의 개혁을 꿈꿨다. 드라마 후반부 그의 후보시절 인터뷰에 이런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멕시코 국민들에게 약속하고 싶습니다. 사회의 뿌리부터 개혁할 것이라고. 우리의 자유를 확장하고 굳건하게 다지겠습니다. 민주적 변화를 이끌어내겠습니다."


물론 콜로시오의 죽음이 당장 무언가를 바꾸진 못했다. PRI 카르텔은 공고했다. 전직 대통령은 살리나스는 콜로시오 암살의 배후라는 의혹에 내내 시달리긴 했지만 임기를 무사히 마쳤고 콜로시오 대신 지명한 에르네스토 세디요가 대통령 자리를 꿰찼다.

멕시코 첫 진보정당 후보로 대통령이 된 오브라도르 

그러나 콜로시오가 뿌린 개혁의 씨앗은 서서히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었다. 2000년과 2007년 멕시코 국민들은 잇따라 보수정당인 국민행동당(PAN)을 선택하면서 PRI의 71년 장기집권에 마침표를 찍었다. 2012년 PRI는 다시 정권을 잡았지만 2018년 7월 멕시코의 역사는 새로 씌어졌다. 국가재건운동(MORENA)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멕시코 역사상 최초로 진보 정당 출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자유의 확장과 민주적 변화. 그렇게 멕시코는 콜로시오의 꿈에 다가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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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운의 후보

출연   호르헤 히메네스, 일세 살라스, 알베르토 게라 

등급   15세 이상 

평점   IMDb 7.7  에디터 꿀잼 

관련 링크


참고자료

[1]콜로시오 암살 5주기 '한겨레21' 기사

[2]PRI 홈페이지

[3]코트라 기고글 '멕시코 대선과 우리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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