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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치노트 Sep 27. 2022

5000만원대 브레게 시계의 '꺾인 바늘'

핸즈를 꺾고 두께를 지킨

사진=Breguet 제공

어제 브레게가 공식 SNS에 재밌는 사진을 올렸습니다. 바로 5000만원대 시계에 쓰인 데이트 핸즈인데요, 복잡한 시계 부품을 피해 날짜를 표시하기 위해 계단 모양으로 두 번 꺾은 핸즈를 사용한 겁니다.


이 시계의 이름은 브레게의 트레디션 라인 중 하나인 Tradition Quantième Rétrograde 7597.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다이얼 하단에 띠처럼 둘러진 레트로그레이드 방식으로 날짜를 표시해주는 시계인데요, 키 컬러인 미드나잇 블루로 레트로그레이드와 12시 방향 다이얼을 디자인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핀버클 스트랩 역시 같은 색을 사용했고요.


특히 12시 다이얼은 그 자체로도 완벽한 시계의 모양을 띠고 있습니다. 기요셰 패턴과 흰 로만 인덱스로 장식한 다이얼 위에 브레게의 상징과도 같은 사과모양 폼핸즈를 올려 복잡한 장치들 사이에서도 클래식한 느낌을 물씬 풍깁니다.


다이얼 하단의 레트로그레이드 날짜 디스플레이도 눈길이 가는데요, 은색 스탬프 프린트한 날짜들 사이에 카보숑 마감한 금을 올려 깔끔하면서도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통일감을 더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데이트 핸즈는 각 숫자들을 가리키면서 매일 날짜를 표시하다가 매달 마지막 날에 1로 점프백합니다. 날짜창이 디자인의 핵심인 시계인 만큼, 일일이 크라운을 돌리지 않고도 10시 방향의 푸셔로 쉽게 날짜를 조정할 수도 있고요.

사진=Breguet 제공

문제는 복잡한 시계 부품들 사이에 데이트 핸즈를 넣다보니 동력을 전달하는 휠과 밸런스 휠에 핸즈가 걸린다는 건데요, 브레게는 기어트레인을 피해 핸즈를 높게 꽂는 대신 이렇게 단차를 만드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시계 두께도 12.1mm로 얇아졌습니다. 어쩌면 이 데이트 핸즈는 시계라는 작은 우주의 천장을 지키는 타이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하늘이 무너지지 않게 떠받쳤다던 그들과 달리, 이 핸즈는 하늘이 너무 멀어지지 않게 자신의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다는 거겠죠. 


브레게 역시 이 핸즈를 소개하면서 "가장 최근에 트레디션 라인에 들어오게 된 이 시계는 매우 독특한 데이트 핸즈를 갖고 있다"며 "수직 공간(vertical plane) 안에 능숙하게 꺾인 이 핸즈는 매우 정교한 무브먼트 안에 꼭 맞게 들어가 파란색 다이얼과 레트로그레이드 날짜창을 돋보이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포인트 격인 이 핸즈를 블루잉한 겁니다. 블루잉 핸즈야 흔하지 않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이 시계에선 역할이 조금 남다른데요, 이 핸즈 덕분에 은색 부품들 사이에서 미드나잇 블루톤으로 디자인한 12시 다이얼과 레트로그레이드가 시각적으로 둥둥 뜨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됐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12시 다이얼의 핸즈는 블루잉을 하지 않아 오히려 시인성이 높아지고 디자인의 통일감도 살아났고요. 브레게만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대목이죠.


마무리로 잠시 케이스를 이야기하면, 화이트골드 소재에 길이는 40mm라고 합니다. 케이스백은 사파이어 크리스탈이고, 방수는 30m.

브레게가 발명한 1780년대 동력장치와 트래디션 7597의 로터. 사진=Breguet 제공

셀프 와인딩 시계다보니 뒷면엔 로터가 있는데, 브레게가 1780년대에 발명한 최초의 자동형 동력장치(à secousses)와 비슷한 디자인을 하고 있어 보는 재미를 더했습니다. 해당 장치는 익히 알려진 회전형 로터와 달리 시계 사용자가 움직이거나 걸을 때마다 추가 같이 움직였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진동 방식으로 태엽을 감았다고 합니다. 메인 스프링이 모두 와인딩됐을 때 자동으로 멈추는 기능까지 있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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