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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치노트 Oct 19. 2022

110만달러에 팔린 까르띠에의 '다카르 랠리' 시계

Cartier Cheich

다카르 랠리 2연속 우승자에게만 주어졌던 Cartier의 Cheich. 사진=Sotherby

지난 9월 30일 현지시각 기준으로 유럽 시계 경매에서 가장 높은 낙찰가로 기록을 갈아치운 시계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소더비 파리 파인 워치에 올라온 까르띠에(Cartier)의 'Cheich'라는 시계인데요, 낙찰가는 110만달러로 한화 15억6700만원 정도입니다. 낙찰 예상 가격은 20만~40만 달러였지만 적게는 2배, 크게는 5배를 훌쩍 넘어서면서 시계 마니아들의 눈길을 확 사로잡았습니다.


'Cheich'는 '셰셰'라고 읽는다고 합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저로서는 디자인과 이름 때문에 난감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덕질 경력도 별로 길지 않고 그다지 성실하지도 못했던 저로서는 이런 시계가 있었나 싶었던 데다, 'Cheich' 라는 단어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몰랐거든요.


심지어 구글에선 'Cheich'를 'Church'로 바꿔서 인식해 오늘 글은 접어야 하나 싶을 즈음, 이 시계가 사하라의 유목민인 투아레그족이 머리에 쓰는 천 Cheich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Chèche'라고도 표기하는 이 단어는 '셰셰'라고 읽는다고 하네요. 혹시나 해서 유튜브에 'how to wear cheich'라고 쳐보니 영상에 등장하는 분이 '셰시'와 '셰셰'의 중간쯤 어디로 발음하더군요.


+ 예전에 칸예 웨스트가 데뷔했을 때, 한 평론가께서 '칸예'와 '카니예' 중 어떤 발음으로 표기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셨다는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와닿았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저는 일단 'Cheich'를 '셰셰'라고 쓰겠습니다.

다카르 랠리. 사하라 유목민이 쓰는 '셰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로고가 곳곳에 보인다. 사진=Dakar 공식 홈페이지

다카르랠리와 셰셰

까르띠에 셰셰와 관련된 포스팅을 유심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시계는 완주만 하기도 어렵기로 소문난 다카르 랠리를 두번 연속으로 우승한 이에게 주어졌습니다. 다이얼 디자인 역시 다카르 랠리 로고에 쓰이는 셰셰를 본따 만든 거고요.


다카르 랠리는 자동차, 트럭, 2륜·4륜 오토바이 등 다양한 운송수단을 타고 험난한 지역을 장거리 주행하는 대회입니다. 까르띠에 셰셰가 만들어진 시절만 해도 코스는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 아프리카 사하라를 지나 세네갈의 다카르에서 반환하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최근엔 경유 국가의 내전 문제 등으로 남미와 사우디아라비아같은 타지역에서 이뤄지고 있지만요.


경기에 참여했던 건 아니지만 다카르 랠리를 개최한 티에리 사빈(Thierry Sabine)도 1986년 랠리를 참관하던 중 헬리콥터 사고로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등 여러모로 악명높은 랠리인데요, 이렇게 험난한 코스에 더해 운전자가 직접 부품을 수급하고 정비하면서 가야 하다보니 우승을 노리려면 정말이지 치밀한 전략을 짜야합니다.


그런데 이런 다카르 랠리에서 두번 연속 우승해 까르띠에 셰셰를 가져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1984년과 1985년, 6200마일 경주에서 우승한 가스통 라히어(Gaston Rahier)입니다. 이번에 소더비 경매에 올라온 것도 라히어의 시계죠.

가스통 라히어. 사진=Sotherby`s 유튜브

당시 까르띠에 수장이 만든 시계

소더비 와치가 올린 셰셰에 대한 설명부터 볼까요. 앞서 설명한 대로 다카르 랠리에서 2연속 우승하는 '까르띠에 챌린지'의 승자를 위해 1983년에 만들어진 셰셰는 공식적으로 라히어가 가져갔고, 현재 매물로 나와 구매할 수 있는 유일한 셰셰이기도 합니다. "가장 선망받는 시계 중 하나", "까르띠에를 사랑하는 이들의 성배"라는 표현도 인상적이네요.


다이얼은 다카르 랠리의 로고인 투아레그의 셰셰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모두 황금 같은데, 실제로는 옐로우, 로즈, 화이트 골드를 엮듯이 셰셰를 표현했다고 합니다. 까르띠에에서 'Trinity(삼위일체)' 즉 사랑과 우정, 충실함을 상징하는 소재 조합이죠. 러그가 없어 스트랩은 케이스 안쪽으로 파고드는 식으로 체결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스트랩은 사용할 수 없는 셈이죠.


백케이스 안쪽엔 'Trophée Paris Alger Dakar'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고 합니다. 다이얼은 로만 인덱스와 바 인덱스로 시간을 표시하는 아주 전통적인 까르띠에 스타일로 디자인했습니다.


재밌는 점은 셰셰를 제작하는 데에 당시 까르띠에의 핵심 인력들이 직접 참여했다는 겁니다. 까르띠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자크 딜토어(Jacques Diltoer)와 당시 까르띠에 사장이자 최고경영자(CEO)였던 알랜 도미니크 페린(Alain-Dominique Perrin)이 디자인한 거죠. 페린은 다카르 랠리를 개최한 사빈과 함께 다카르 랠리 2회 연속 우승자에게 셰셰를 주는 '까르띠에 챌린지'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고요.


총 네 피스. 나머지 행방은

셰셰는 지금까지 총 네 피스만 만들어졌습니다. 1983년에 남성과 여성 우승자에게 하나씩 주기 위해 제작해 2년 뒤 라히어가 남성 모델을 가져갔고, 조금 더 크기가 작은 대신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여성 모델은 연속 우승자가 없어 수여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라히어가 시계를 받은 1985년, 까르띠에는 새로 등장할 다카르 랠리 2연속 우승자를 위해 셰세를 한 피스 더 만들고, 개최자 사빈에게도 하나 더 만들어줬습니다. 이듬해 사빈은 다카르 랠리에서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시계의 행방이 정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카르 랠리의 초창기 역사가 얽힌 셰셰의 생산은 1986년에 중단됐습니다.


이쯤되면 나머지 두 피스의 행방이 궁금해지는데요, 해외 기사를 뒤져보니 1983년에 만들어진 여성 모델 셰셰와 1985년산 세 번째 셰셰는 현재 까르띠에 측에서 보관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포브스 기사를 인용하면 "The two remaining Cartier Cheich watches are in Cartier’s collection(나머지 두 개 까르띠에 셰셰 시계는 까르띠에의 컬렉션에 있다)"이라고 하네요.


사실 라히어 이후에 다카르 랠리 연속 우승자가 등장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실제로 1965년생인 페테르 한셀(Peter Hansel)의 경우 2012년과 2013년에 다카르 랠리에서 2연속 우승을 달성했죠. 2017년엔 당시 50대라는 다소 높은 나이로 13회라는 역대 최다 우승을 달성한 선수기도 합니다.


다만 셰셰는 이제 까르띠에 측에서도 원본을 볼 수 없는 시계가 됐으니, 역사성을 높이 평가해서라도 브랜드 차원에서 직접 보관하면서 관리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수여됐던 두 피스의 경우 하나는 40년만에 모습을 드러냈고, 하나는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니까요. 훗날 원본을 살려서 다시 까르띠에 챌린지가 열리진 않을까 기대도 해봅니다.


+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갤로퍼'를 들으면서 썼습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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