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이 아닌 마법
소더비(Sotheby`s)에서 지난달 29일 5만400GBP(스위스프랑)에 한 롤렉스(Rolex) 시계가 낙찰됐습니다. 한화로 약 7761만원정도 되는 액수입니다.
애당초 예상가가 5만~7만 스위스프랑이었으니 사실 예상을 웃도는 엄청난 결과가 나왔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이 시계의 생김새가 어딘가 범상치 않습니다. 롤렉스의 대표 모델 격인 서브마리너(Ref. 5513)에 익스플로러 모델의 다이얼을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롤렉스 익스플로러는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처음 에베레스트를 등정했을 때 롤렉스의 오이스터 퍼페추얼(Ref. 6098)을 착용한 것을 기념해 출시된 모델입니다.
기존 오이스터 퍼페추얼 모델들과 달리 다이얼 12시 방향에 역삼각형 인데스를, 3, 6, 9시에 아라빅 인덱스를 적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 시인성 높지만 심심하지 않은 아이코닉한 다이얼에 롤렉스 팬들은 열광했습니다. 이후 익스플로러2가 출시됐지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초창기 모델인 익스플로러1을 극찬하는 것만 봐도 그 인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오늘 소개할 시계인 서브마리너 역시 롤렉스의 대표 모델이자, 다이얼만 봐도 어떤 시계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아이코닉한 인덱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2시 방향의 역삼각형과 3, 6, 9시 방향의 배턴 인덱스, 나머지 시간을 나타내는 동그란 인덱스는 한 눈에 봐도 서브마리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독특하죠.
이러다보니 서브마리너에 익스플로러1의 다이얼을 적용한 이 시계는, 얼핏 보기에 이런저런 파츠들을 조합해 만든 프랑켄이 아니냐는 의심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엔 오메가가 경매사에서 실수로 자사 프랑켄을 구매했던 일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오늘 소개할 시계는 모두 제치입니다. 1965년에 만들어진 아주 독특한 피스였던 셈이죠.
우선 이름부터 좀 붙여줄까요. 소더비는 이 시계를 'Underline Gilt Explorer Dial' Submariner나 '서브마리너 익스플로러 다이얼' 정도로 불렀습니다.
소더비에 따르면 서브마리너 시그니처 밑에 밑줄(Underline)이 그어져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제 눈엔 사실 밑줄이 어디 있는지 도저히 보이지가 않습니다. 대신 구글에 'Submariner Underline'이라고 검색하시면 5513이나 5512 중 다이얼의 'SUBMARINER'라는 글자에서 'MAR'쯤 밑에 흰 선이 그어진 걸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커뮤니티 감성으로 '익스 5513' 정도로 부르겠습니다.
익스 5513은 다이얼 곳곳에 금박을 입힌 길트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무브먼트는 1530으로, 셀프와인딩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툴워치답게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 만들어졌고, 케이스백은 스크류다운 방식으로 방수성을 높였습니다.
로트 넘버는 1'170'481 입니다.
소더비는 이 익스5513이 "의심할 여지 없이 가장 인기 있는 보석 중 하나이며, 희귀하고 즉시 알아볼 수 있는 외관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소더비에 따르면 익스 다이얼은 Ref 6538, 6200, 5510, 5512, 5513 등 일부 서브마리너에만 적용됐다고 합니다. 이 외 서브마리너에 익스 다이얼이 쓰인 것을 본다면 프랑켄이거나, 롤렉스 서브마리너에 대한 기록을 뒤집는 새로운 발견이 되겠군요.
익스 다이얼을 적용한 5513과 5512는 특히 영국에서 소매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영국 딜러들이 운영하는 샵이나 영국 여행 중 이런 시계를 혹시라도 발견하신다면 한번 유심히 보시는 것도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