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편안은 어디서 왔던가

풍족한 세상의 이면

by 물족제비

전 세대만 해도 따뜻한 집과 먹고 잘 공간, 자식 성장 마련이 최고의 목표였다. 나는 부모님의 피눈물을 머금은 집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수없이 밀려오는 파도로부터 방파제가 되어 가족을 지켰다. 그 한계점이 도달해 더 이상 뭉쳐질 수 없는 가족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자식들이 어엿한 직장이 다니기까지 부양하고 뒤바라지 해주었다. 막둥이인 나는 고등학생이 되고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려는 탐구심이 생겼다. 다시 보니 부모님의 고뇌는 내가 하기 싫다고 징징댄 공부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른들은 공부하던 시절이 좋았다고 한다. 예측건대 어깨에 진 짐이 공부라는 보따리밖에 없어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싶다. 그들은 자신의 본분을 정확하게 알았다. 대학 갈 성적을 위해 모든 걸 투자했다. 이후 청년들은 가정을 만들고 생계 부담의 짐을 짊어지게 되며 어깨 짐은 더욱 무거워진다. 모든 곳에 돈이 필요하다. 숨 돌린 틈에 새어나가는 돈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돈을 채워 넣어야 한다. 유교적, 가장적인 느낌이 강했어도 자식의 성장에 헌신적인 부모가 당시 표본이었을 테다.

학창 시절 눈앞의 문제들로만 급급한 나머지 부모님의 회생까지 생각하는 안목은 나에게 없었다. 하필 휴대폰 보급 세대라 현실 속 나의 상황과 미디어에 비치는 타인의 모습을 비교하며 한탄하기도 했다. 나에게 돈 걱정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집만큼은 편안하게 만든 부모를, 나름대로 몸 부서져라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고작 릴스하나 때문에 가족 신세를 판단한 것이다. 세상 풍파를 막아주던 부모에게 뒤에서 이거 하나 못해주냐고 따지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부모도 이번 생 처음이었을 텐데 그 마음을 몰라주고 당연하듯이 부모의 돈을 펑펑 쓰고 놀러 다니는 자식을 보면 분명 말문이 막혔을 거다.

sns 도파민 과포화 상태는 나를 더욱 약하게 만들었다. 공부는 내동댕이치고 쾌락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노력해서 얻는 성취감보다 쉽고 빠르게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유튜브를 보며 방에 절대 안 나오던 자식이었다. 그런 자식을 위해서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님은 기꺼이 희생하고 돈을 벌어왔다. 소통하는 부모는 자식을 가족 질서 안에 잘 케어해 주겠지만 그러한 여유는 없었다. 어려운 시대는 부모를 강하게 만들었고 가족을 지킬 줄 알았지만 편안한 시대 태어난 나는 모든지 귀찮을 뿐이다. 세월을 견디며 자식 성장을 위해 땀 흘려 일한 부모님의 책임이 물씬 느껴져서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약한 사람은 보이지 않은 채로 남을 것이고 세상을 헤쳐갈 자신감이 없고 배짱이 없기에 무시당할 것이다. 강한 사람이 되는 게 이 땅에 살아남는 방법이다.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미리 준비해서 대처해도 어려움은 반드시 찾아온다. 내가 마주할 상황들이 나의 순간 선택으로 나를 형성한다고 하면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가능성도 필히 있을 거다. 어려움을 인정하고 다시 일어나서 도전하든가, 아니면 눈앞에 사라져서 회피하고 안주하는 선택지만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련했던 나의 상황들이었다. 왜 부모가 다 해주길 바라는 가, 왜 의존만 하려고 하는 가. 쉼과 편안에 속고만 살았다. 성인 되면 알아서 하겠지며 떠넘겼다. 성인 돼서도 내 상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건 더 이상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떠밀렸다는 사실뿐이다. 완벽한 준비를 하겠다며 미룬 시간들이 지나고, 내가 대응할 시간조차 안주는 시간들이 찾아왔다. 이윽고 나는 막막한 현실에 두려움을 떨고 있었다. 인스타 너머 사람들과의 비교가 최근까지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에게 옮겨갔다. 추억을 쌓고 있는 친구들과 대비되어 외롭고 혼자 걷고 있는 나는 동굴 깊은 속으로 더욱 파고들어 도파민의 노예가 되어있었다.

최근에 이런 글을 보았다. 돈이 많은 부자들은 전재산으로 젊음을 다시 살겠노라하면 뒤도 안 보고 젊음을 사겠다는 글이다. 나의 젊음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걸까. 그들은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할 정도로 무채색 인생에서 다양한 색깔로 채워갈 기회가 있는 나의 지금을 그렇게 원하는 것인가. 범죄자들은 아마 시간회귀를 더욱 간절히 원할 것이다. 인생에 빨간 줄이 그어진 감옥살이를 청산할 수만 있다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진난만한 이 젊음으로 무조건 돌아가고 싶어 할 터이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젊음의 가치는 "가능성"에 있다. 인생 게임에서 한 번만 조종할 수 있는 "나"라는 캐릭터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기에 원석 같은 존재인 것이다. 어떻게 가공되냐에 따라 가치 조정이 되는 거다.

나는 원석을 조각해야 한다. 너무 단단해서 매일매일 다듬어도 모양이 나오지 않을 거다. 그러나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면 점점 형태가 잡혀갈 거다. 중요한 건 매일 지속하는 거다. 감정에 의지하지 말고 내가 쌓아갈 시간과 결과, 횟수에 집중하는 거다. 더 나은 버전의 내가 될 수 있게 결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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