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 존재했던 건

방치였다.

by 물족제비

나는 자기 계발 중독이었다. 그러나 최적의 경로와 방법들로 가장 효율적으로 성장하겠다는 다짐은 얼마 못 가 으스러졌다. 기대가 너무 컸던 나머지 실패를 맞이했을 때의 실망감은 견딜 수 없었다. 항상 1달 채 넘기지 못했다. 결과가 안 나오니 손을 놔버렸다. 다시 일어서려는 시도를 했으나 실패가 되풀이되며 이는 암흑기에 빠지는 계기에 박차를 가했다. 결국 또다시 넘어질까 봐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성공하는 방법을 이미 다 안다는 양 나불거렸고 완벽한 출발선에 모든 게 준비될 때 시작하겠노라 하며 현실을 회피했다. 아이러니하게 시간의 여유가 충분할 땐 정작 자기 계발은 안 하고 유튜브에 절여져서 도파민 노예가 되어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이런 악순환은 빛을 가리고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었다. 계획이 없고 본능에 이끄는 데로 움직였으니 말 다했다. 무질서가 야기한 산물인 나는 절대 제정신이 아니었다. 생기 없는 멍한 눈빛으로 있는 시간, 없는 시간을 다 스마트폰에 몰두했다. 현실로부터 눈과 귀를 닫았다. 삶의 책임들은 미래에 떠넘겼고 미래의 시간을 대출받아 썼다. 그 책임들이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킬 것임을 외면했다. 그러다가 꾸물꾸물 기어 나와 부모님 등골 빼먹는 파렴치한 아들이 되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구제불능이다. 히키코모리의 존재는 너무 편안한 세상 안에서 버튼만 누르면 현실과 분리되는 쾌락과 시간의 안일함, 책임 회피가 결합되어 나온 쓰레기다. 즐기는 순간만큼은 행복하고 웃음이 멎지 않았다. 다음 재밌는 영상을 찾느라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호락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면 지레 겁을 먹고 또 숨는다.

학교에 나오면 나는 평범함과 격리되어 있다. 분명 내가 시간이 더 많고 자유로운데 애들이 훨씬 재밌어 보인다. 나는 혼자 고독했고 사회성이 없었다. 애들은 공부와 놀이를 병행하면서 심지어 나 같은 거보다 더 재밌게 논다. 친구하나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음침한 내가 싫었다. 나의 방어기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더 암흑의 소용돌이에 갇혀버렸다. 더 이상 나를 진실로 마주할 용기가 사라졌다. 나는 방치했다. 모든 감정과 스트레스를 쾌락으로 풀었다. 그 결과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산만하고 회피하는 성격이 굳어졌다. 내가 나를 방치한 결과이다.


혼돈, 혼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질서다.

그러므로 무질서는 혼란하고 방향이 없다.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무질서를 경험한 사람이 질서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중학교 때 자기 계발이란 걸 접한 이후 관련 서적을 열심히 읽었다. 처음엔 나도 저들처럼 성공할 수 있음을 상상하고 기대했다. 깊은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모아서 데이터화를 한다. 공통분모를 찾고 이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을 고안해 본다. 남들이 나보다 더한 불행한 삶을 살았음은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극복했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내게 닥친 어려움이 나를 죽일 정도 힘들지 않았다. 인과구조 논리적으로 보면 다들 좋은 습관을 만들고 오랜 시간을 견디며 시련을 극복했다. 습관들이 자산이 되어 나중에 운을 터트린다. 인생 성공하는 방법을 눈에 불 켜고 찾아보았지만 사실 모두 답을 알고 있을 거다. 운동하고 좋은 관계 형성하고 잠 잘 자고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고 피드백하는 거다. 성장은 단순한 공식으로 누구나 어렴풋이 알고 있을 거다. 계획과 실행 그리고 매일 지속하는 거다. 성과들이 쌓이면 나를 표현할 것이고 사회적 시선이 달라지고 기회가 많아지고 성공을 가다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대체로 인간은 감정에 쉽게 사로잡힌다는 사실. 항시 감정에 통제당한다는 사실이다. 순간의 감정에 선택하는 일이 수두록하다. 가족의 가치를 잊고 단편적인 사건에 서로가 갈등을 빚는 일, 욱해서 잘못을 저지르는 일, 생각을 거치지 않고 하는 철없는 행동과 무례한 말투, 충동에 못 이겨 본능을 따르는 어리석은 짓 등이다.

마음은 댐이고 감정은 물이다. 댐은 메마르면 안 되고 가득 차서도 안된다. 지헤롭게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물을 유연하게 흘려보내야 한다. 저수가 차올라 넘쳐흐르는 지경이 되면 엄청난 재해를 야기한다. 감정 힘에 못 이겨 댐이 무너질 수 있다. 틈사이 물이 뿜어져 나와 주체할 수 없을 때 통제권을 잃는다. 미리 의도적으로 계속 흘러 보내야 한다. 글을 쓰든 대화로 털어놓든 산책하든 승화하든지 간에 이성의 끈이 남아있을 때 물을 퍼 날라야 한다. 이 싸움은 매일매일 눈뜨자마자 시작된다. 감정이 차는 속도는 순식간이기 때문에 제어하기 힘들다. 아침 기상 시 핸드폰 보는 건 누구나 아는 나쁜 습관인데 그 습관을 고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가 생각해 봐라. 익숙했던 걸 못하게 되자 불편하고 좌불안석이고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거 같다. 핸드폰 붙잡는 게 너무 익숙한 나머지 가만히 있지 못한다.


하루 살아갈 때 주체적으로 매뉴얼대로 루틴을 세우고 자신을 타이르고 다시 집중하는 초인적인 모습은 훈련이 필요하다. 최근 자기 계발의 형태가 다양해졌지만 그중 단연코 가장 강력하고 효과 있는 건 명상이다!

명상은 차분함 통제권을 기르는 최고의 훈련이다. 내가 나로 하여금 있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명상이다. 본능대로 살지 않기 위해 충동을 내려놓고 다시 나로 돌아가기 위한 훈련이다.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훈련이다.

진정이 되고 침묵에 다다르면 나는 나쁜 행동을 하는 이유를 계속 질문해 원인 파악을 한다. 밑도 끝도 없이 계속 질문한다. 행동과 동기는 연쇄적이다. 내면의 응어리, 결핍이 있기에 행동 양상이 나타나는 거다. 나를 찢고 뜯고 추악한 모든 면을 끄집어내어야 한다. 영악하고 이기적인 뇌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마음에 자물쇠를 걸었다. 나의 할 일은 망치로 자물쇠를 부수는 거다. 객관적으로 중립적인 시선으로 맥락을 더듬어 가장 어두운 욕망을 드러내는 거다. 그게 약점이고 결핍이고 나를 약하게 만드는 거다.


익숙함을 바꾸는 노력은 천차만별이지만 한 번에 성공할 순 없을 것이다. 과정 속에 수 없이 넘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적어도 21일 기간 해야 뇌가 바뀌고 66일 지속해야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할당량을 다 채운다는 강박을 버리고 형편없는 결과라도 일단 한다는 선택지가 있다. 완벽한 하루를 보내지 못하더라고 어제보다 나은 하루는 보낼 수 있다. 현실적인 목표는 1시간이 아니라 10분, 5분을 공부한다, 운동한다, 이다. 점층적으로 쌓아 올리되 멈추지 말아야 한다. 굴곡이 있더라도 멈춰 선 안된다. 그냥 하는 거다.

달력에 계속 기록하는 거다. 처음엔 자신감 자존감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이런 나라도 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보여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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