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기자회견을 지켜보았다. 개학이라 정신없는 오후였지만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일상이 흘러가듯 다른 말은 다 흘러갔지만 한마디가 남는다. “나는 금수저가 맞다. 강남 좌파라고 부르는 게 맞다. 금수저면 항상 보수로 살아야 하나? 강남에 살면 보수여야 하나?”
이 부분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조국 후보자에 대해 국민이 가지는 의심의 포인트가 바로 저 지점이다. 정황상 합리적 의심을 할 만한 증거는 자꾸 나왔다. 금수저가 흙수저를 이해한다고? 흙수저를 위한 개혁을 하겠다고? 흙수저로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높은 곳에만 있었던 사람-태어나서 한 번도 낮은 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낮은 곳의 눈높이를 과연 알 수 있을까? 낮은 곳의 공기, 냄새를 상상할 수 있을까? 나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다. 안다, 이해한다는 말은 가식이자 거짓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어린이를 가르치다 보면 그 속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을 여러 가지 만난다. 이해불능의 상황에서 아무리 그 아이를 이해하려고, 그 아이의 입장에서 문제행동의 정당성을 찾으려고 노력해도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래, 선생님은 네 맘 이해해.”라는 말은 거짓이었다. 아이의 마음을 붙들려는 가식에 불과했다. 나는 아이의 이상행동이 끝까지 이상했다. 내 이해의 그릇에 화가 날 정도였다.
나는, 나처럼 평범한 교사는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다. 싫고 어려운 공부를 참았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고 제도에 순종적이거나 순종적으로 보였다. 많은 재능 중에 하나에 불과한 공부에 재능이 있다 보니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타고난 기질이거나 환경의 영향이다. 이런 교사가 자기와 너무 다른-불리한 위치의 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공부에 재능이 전혀 없거나, 경계성 지능이거나 방치를 포함한 부모의 학대 속의 아이의 마음을 정말 알까? 그 아이가 만드는 문제 상황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을까? 지금 교대나 사범대의 입학 커트라인이나 초임교사들의 스펙을 보면 그 대답은 더 부정적이다.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업을 아무리 연구해도 불리한 위치의 아이를 위한 교수법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이건 선생님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교사는 그 아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얼마든지 있다. 비장애인이 아는 장애인의 마음, 이성애자가 보는 동성애자, 남편이 말하는 며느리의 입장, 이해한다고 하지만 이해하기 힘들다. 똑같이 본다고 하지만 그 시선마저 폭력일 수 있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불리한 위치를 안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이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너를 이해해.’ 나 ‘네 맘 알겠어.’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 나 스스로 가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 알기 위해, 이해하려고 ‘애쓴다’나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애쓰거나 노력하는 일도 충분히 가치 있다. 지배자였던 일본은 식민지였던 한국을 이해하려고 애쓰거나 노력하지도 않지 않은가.
그럼에도 평범함을 극복한 사례가 있다. 유리한 위치지만 불리한 눈높이를 진심으로 알고, 이해한 사람이 분명히 있다. 몸으로 이해를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그 진심을 의심하지 않고, 의심할 필요도 없는 사람을 종종 티브이나 책에서 본다. 우리는 그들을 깊은 공감의 소유자라 말한다. 어쩌면 이들은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면 깊은 공감의 근원이 궁금하다. 그 모습을 보면 ‘훌륭하다’는 형용사가 어울린다. 교사 중에도 훌륭한 교사는 있다. ‘나는 너를 이해한다.’는 말뿐 아니라 아이에 대한 상황이나 문제 행동의 이해를 몸으로 증명하는 선생님이 있다.
다시,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기자회견을 본다. 기자들은 조국 후보자가 말한 낮은 곳을 위한 개혁의지를 의심하는 질문을 계속하고 있다. 충분히 의심할만하다. 딸을 포함한 가족의 행보는 가진 자로서 누리는 모습이었다. 입시, 장학금, 논문, 펀드, 사학은 평범한 사람이 누리는 장면은 아니다. 조국 후보자 스스로 금수저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내가 비장애인이라서 비난받을 이유가 없듯이 후보자가 금수저라서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진 자가 누린 혜택에 불법이 있다면 처벌해야 한다. 이는 가지지 못한 자도 마찬가지다, 흙수저가 받는 혜택은 불법이어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불법인지 아닌지는 검찰이 조사하고 있다. 밝혀지면 책임지면 된다.
나는 교사로서 가식적인 거짓이 싫어 불리한 위치의 아이에게 ‘너를 이해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도 (올지 모르지만) ‘네 맘 충분히 이해해. 이 상황에서 너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너에게 돕는 방법을 내가 반드시 찾을게.’라는 말을 하고 싶다. 아니, 말하지 않아도 당사자나 주변이 내 진심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실천하고 싶다.
정치인은 거짓말을 잘해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당당히 말했다. “아무리 공부했다 하더라도 흙수저인 사람 마음을 제가 얼마나 알겠나, 고통을 얼마나 알겠나. 그것이 저의 한계다.”라고 고백했다. 게다가 “가진 자지만 무언가 해보려고 한다. 도와 달라.”라고 선언했다. “다음에는 흙수저 출신이 저를 딛고 밟고 올라가서 법무부 장관이 되어 더 좋은 정책을 펼쳐 달라.”라고 호소했다. 저 말을 증명하는 그의 행동을, 실천을 나는 간절히 보고 싶다. 내 눈으로 확인하는 그때라면 그는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그가 훌륭한 사람인지, 권력을 탐하는 사람인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