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먹은 아들이 며칠 전부터 산 낙지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맛도 모르면서 왜 먹고 싶냐고 물으니 유튜브에서 먹는 사람을 봤는데 너무 맛있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뜻도 모르면서 ‘남성 스태미나 음식’이라며 나를 설득하는 모습이 어이없다. 아이의 재촉은 내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녀 나는 심드렁하게 집 주변 산 낙지집을 검색했다.
인간이 먹는 음식이 본래는 다 살아 있는 생명이다. 먹이 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최종 소비자인 인간은 못 먹는 것이 없다. 존재와 번식의 본능-식욕으로 인간은 약자에서 강자가 되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은 숭고하다. 지구 상의 모든 생명은 다 위대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특히 존엄하므로 살생이 정당하다. 이 생을 위해 참으로 많은 생이 죽었다.
불판 위에 삼겹살을 굽고 끓는 물에 고깃덩어리를 넣어 수육을 한다. 닭의 배에 찹쌀을 넣어 백숙을 하고 생선 내장을 빼고 토막을 내어 생선조림을 한다. 달걀을 깨뜨려 프라이를 하고 우유, 요구르트, 치즈를 먹는다. 늘 먹는 음식에서 죽은 생명체, 죽기 전에 살아 있는 모습을 떠올리지도 않고, 떠올릴 필요도 없다. 노동의 대가이자 가족의 사랑이다. 일상이고 문화다.
산 낙지를 먹자는 말에서 잠깐 잔인함이 스쳤을 뿐이다. 직접 키운 닭이나 개고기만큼은 아니지만 산 낙지에서도 잔혹의 냄새가 났다. 반달곰의 쓸개나 수사슴 뿔은 비싼 값이 잔인함을 덮는다. 잠시 잔인, 잔혹의 냄새가 풍겨도 사람은 입에 넣고 꾹꾹 씹어 삼키니 식욕은 모두가 허용하는 관용이다. 먹거리의 잔인성은 누구나 가진 공통분모다. 손가락질할 필요도, 받을 이유도 없다. 정당한 대가를 치렀고, 살기 위해 먹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잔인함을 스쳐가게 내버려 둘 뿐 젓가락으로 꿈틀거리는 산 낙지를 집어 먹는다. 그러나 먹는 일이 삶의 전부가 아닌 현재에도 선사시대와 같은 식욕이 존중받아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본능인 식욕을 줄이자는 뜻이 아니다. 음식을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하는 행복감, 적절한 포만감이 주는 편안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내가 식욕, 식탐의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다. 나는 채식을 사랑하지만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단지 먹는 행위, 먹고 싶은 마음에 대해 넘치는 가치와 넘치는 관용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食에 대한 과잉 가치, 과잉 관용은 엄마를 밥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엄마의 몸은 새끼를 낳는 사람이지, 새끼를 먹이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다. 자식을 낳았으면 먹이는 일은 당연하지만 먹이는 일에 대한 책임은 왜 엄마한테 모두 전가하는지. 잘 안(못) 먹이는 엄마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나쁜 엄마가 되는지. 왜 엄마들은 자식 밥에 강박관념을 가져야 하는지 말이다. 아침을 안 먹을 수도 있고 저녁을 굶을 수도 있다.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되는데 말이다. 식에 대한 과잉 가치는 가부장제에 흔적에 따라 아직도 일하는 여성을 괴롭힌다. 아이 밥에 소홀한 엄마는 왜 아빠보다 더 죄의식을 가지는지. 남자는 왜 아침밥을 차리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지. 먹는데 가치를 줄인다면 가부장제부터 이어져 온 식문화의 악습이 지금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논리적 비약일 수 있다. 단지 여전한 여성만의 ‘밥’ 책임을 아직도 무겁고 힘겨운 식생활 가치에 한번 얹어 보고 싶을 뿐이다.
잘 먹고 잘 사는 일, 건강이 사는데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엄청난 양의 음식물쓰레기와 잔인을 풍기는 식재료마저 간과할 정도의 관용이라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엄마가 만든 음식도 비위생적일 수 있고 영양학적으로 부족할 수 있다. 넘치는 밥상, 희귀 생물의 살육, 동물복지가 없는 양돈장과 양계장, 접시 위 살아있는 식재료는 인간의 저변에 숨은 잔인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동서양 모두 혐오식품이 있다. 식품에 ‘혐오’를 붙이는 것을 보면 스스로 잔인함을 인정한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잔인해도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왜 먹는 일에는 혐오를 인정하고 수긍하는지. 혐오스럽지 않은 먹거리가 얼마든지 있는데도 말이다. 내 안에 숨은 잔인성을 먹으면서 꼭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나부터 먹는 일로부터 가벼워지고 싶다. 영양적으로 문제없다는 전제하에 버리는 것 없이, 착한 음식으로, 적절하게 먹으면 좋겠다. 사 먹어도 좋고, 알약도 좋다. 밥 대신 먹는 건강보조식품도 좋다. 혐오식품 대신 비슷한 식감이나 맛을 내는 대체식품도 있다. 밥의 목적, 집중도, 가치, 관용을 줄여 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먹고살만하니까 부리는 여유라 비난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분명 선진국이니 이제는 食으로부터 가벼워지면 좋겠다. 유연하면 좋겠다. 안부인사로 “식사하셨어요?”라는 말은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