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물지우개

이 이야기는 ‘한산도’라는 섬에서 1년 동안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한산도는 통영에서 뱃길로 2km 떨어진 섬으로 강화도보다 작고 부산 영도보다 큰 이순신 장군, 한산도대첩의 격전지입니다.


저는 2003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일을 시작해서 결혼, 출산, 육아로 15년을 보냈습니다. 우리 반 아이가 다치지 않기를, 학부모의 민원 전화가 오지 않기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아이가 열이 난다는 전화를 받지 않기를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엄마가 일하든, 하지 않든 도시아이들은 두세 군데 학원에 다닙니다. 친구와 놀 시간이 없습니다. 겨우 만나면 핸드폰을 보거나 피시방, 노래방, 롤러장이나 만화방을 갑니다. 내 아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 남편은 한산도로 발령이 났습니다. 우리는 주말부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회다 싶었습니다. 학원이 없으니 아이들은 뛰어놀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같이 놀고 싶었습니다. 육아휴직이 가능한 마지막 해라 돈 걱정 따위는 접어두고 1년 휴직을 신청하였습니다.


집도 작고 거기다가 수입이 절반이나 줄어드니 사는 데 불편하리라 예상은 했습니다. 네, 완전히 불편했습니다. 집은 터무니없이 작았습니다. 화장실 갈 때 부딪힐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네 명이 한방에서 붙어서 자는 건 고역이었습니다. 인터넷쇼핑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30분 이상 각종 쇼핑 앱을 붙들고 있었는데 그 아이콘은 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이 많이 먹는 식품만 주문했습니다. 결제문자가 오는 소리는 경쾌했지만 무서웠습니다. 지출을 줄여도 마이너스통장의 한계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으니까요.


의외의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한 달에 두세 번 살던 아파트에 가면 집이 엄청 넓어 보였습니다.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큰 화장실이 이렇게 편리한 것인지 몰랐습니다. 아무리 써도 뜨거운 물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애들이 각자 방에서 자는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주변의 상가들, 걸어갈 수 있는 분식점, 문방구, 빵집, 세탁소와 신속히 가져다 주는 배달음식은 놀라웠습니다. 분명 우리 집인데 체크인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체크아웃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그런데도’가 나와야겠죠? 네, 그런데도 저는 1년 섬 생활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불편한데 뭐가 좋았냐고요? 가식 떨지 말라고요? 출근 안 하니 늦잠을 많이 잤냐고요? 아니요! 출근할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났습니다. 4~5시에 일어났으니까요.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자는 시간도 아까웠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했습니다. 남편의 걱정 때문에 많이는 못 했지만 새벽에 자전거도 탔습니다. 미쳤냐고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책 읽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 자전거 타기, 걷기, 바느질하기가 미치도록 재미있었거든요. 놀 것이 이렇게 많으니 지겹기는커녕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학교도서관에는 저를 위한 책이 많았습니다. 아직 다 못 읽은 책이 더 많고요.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글도 쓰고 싶어졌습니다.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쓴 글이 한 달 만에 A4 백 장을 넘겼습니다. 이렇게 많은 글을 단숨에 써 본적은 처음입니다. 석사 논문은 고통 속에서 겨우 채웠지만, 이 글은 반대였습니다. 조금 과장한다면 페이지가 빨리 넘어가서 놀랄 정도였습니다. 색연필화도 스무 장 넘게 그렸습니다. 직접 찍은 사진을 보고 그렸는데 그릴 사진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전거를 타야 했지요. 이곳저곳 다녀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니까요. 자전거를 타는 것도 의외의 재미가 있었습니다.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것도 좋았지만 한산도 안에 있는 여러 마을을 다니는 것은 흥미로웠습니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마을 이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명칭의 유래를 염두에 두고 마을을 관찰했습니다. 아, 자전거를 타기 전에는 걸었습니다. 걸으면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꽃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림도 꽃의 근접 사진을 찍다가 시작했습니다. 걷다가 그리고, 그리다가 달리고, 달리다가 그리고, 그리다가 걷는 사이클이 반복되었습니다. 이 사이클은 도전이었고 성취감을 주었습니다. 특히 재봉틀을 운명적으로 만나면서 도전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재봉틀로 만드는 핸드메이드작품은 황홀, 그 자체였으니까요. 밤도 여러 번 샜습니다. 어찌나 재밌던지 가족들이 제발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였습니다. 바느질하면서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같이 바느질하며 밥 먹고 이야기하는 시간은 소중했습니다. 섬에 오기 전에는 만나는 사람만큼 대화도 한정적이었는데 펜션· 식당· 노래방 사장님, 교회 사모님, 학교종사자, 농사짓는 분, 면사무소 직원, 조개 캐는 분 다양한 업종과 연령의 이웃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저는 만날 때마다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갔습니다. 같이 먹고 싶었으니까요. 만남이 소중했으니까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학원 안 가는 애들 공부가 걱정되지 않느냐고요? 아니요! 웬만한 학원 강사보다 제 스펙이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력이 15년의 석사까지 마친 현직 초등교사입니다. 아이들은 스펙 좋은 엄마와 저녁마다 공부했습니다. 영어 발음은 자신이 없어 핸드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을 매일 조금씩 꾸준히 했습니다. 엄마가 가끔 분노 조절에 실패했고, 아이들은 반항하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만 돈 한 푼 안 들이고 사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애들 성적이 올랐냐고요? 성과를 증명할 길은 없지만 공부하는 습관만큼은 잃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1년 쉬고 복직하면 일하기 더 힘들지 않겠느냐고요? 조금 걱정이 됩니다만 기대가 더 큽니다. 이전보다 아이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제가 해주는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국어와 사회시간에 스토리텔링을 하면 아이들은 재미있어하고 많이 웃었습니다. 섬에서 생활한 1년 덕분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교사연수로 얻어지는 내공과 산 경험에서 오는 내공은 다릅니다. 저는 1년간의 내공을 증명하고 싶어서 복직이 기다려집니다. 제 경험에 근거한 살아있는 지식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승진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야 할 15년 차 교사가 육아휴직을 한다는 것은 승진과 멀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고군분투하며 성과를 내는 친구들을 보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교사에게 승진이란 최고의 영광이라는 것도 압니다. 예전에 저도 승진을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승진 안 한 멋있는 교사도 많습니다. 그분들은 자신만의 노하우로 아이들에게 열정적이었고, 좋아하는 분야에서 다양한 도전으로 삶이 다채로웠습니다. 그런 교사는 보기 힘들다고요? 할머니 선생님이 학부모 사이에 기피 1호라고요? 편견을 제가 완전히 깨긴 힘들겠지만 좋은 케이스가 될 자신 있습니다. 1년 동안 섬에서 살면서 많은 도전을 했으니까요. 덕분에 ‘도전 근육’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분이 교사라면 나이 들어 승진하지 못했을 때 뒷방 늙은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접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도 부디 숨은 열정으로 새로운 도전을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학부모라면 학원에 대해 의존하는 태도를 벗어나 아이들의 삶 자체에 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 초등학교 교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먹고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무척 주관적입니다만) 직장인이라면 휴직이 주는 기회비용을 검토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부지런한 성격으로 열심히 일만 하시는 분이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쉬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휴식에 대한 과감한 용기를 가지길 바랍니다. 아! 통영이나 한산면에 사는 분들이 읽으신다면 사는 곳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제 인생에 전환점이 된 곳입니다. 익숙한 곳이겠지만 새로운 시선으로 보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다시 찾아올 저를 반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의미 있는 휴식을 기도합니다.


2018년 겨울

통영 한산도 진두에서

강현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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