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섬에서 살까?

by 물지우개

바쁜 직장인이라면 늘 쉼을 꿈꾼다. 육아와 일의 병행은 매일 하는 일이지만 적응이 안 되고 힘들었다. 아이들이 아주 아플 때는 솔직히 아이만큼 나도 울었다. 둘 다 초등학생이 된 지금은 병원에 가는 빈도도 많이 줄고 많은 일을 스스로 해서 육아가 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시간이 갈수록 노련해지지 않았다. 육아와 일이 주는 스트레스의 총량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일상탈출을 꿈꾸는 나에게 일 년에 한 번 정도 자유여행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실천은 못 했지만 늘 갈망했었다. 낯선 곳에서 낯설게 살기. 낯선 곳이라면 일상이 주는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시도 전출’ 뿐만 아니라 ‘해외파견·초빙’ 공문도 쉽사리 지나칠 수 없었다. 미혼이었다면 여기저기 지원서를 냈을 것이다. 아내이자 엄마인 나에 그런 공문들은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물론 충분히 상상이 간다. 낯선 곳에서 낯설게 사는 것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일상탈출’은커녕 ‘일상블랙홀’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린아이의 환상 같은 것이라는 것을. 익숙한 것이 얼마나 편하고 소중한지, 낯섦을 아직 몸소 겪지 않았기 때문에 갈망하는 것이라는 것도. 그래도 해보고 싶었다. 한번은 남편에게 강원도로 타시도 전출 신청이 어떻겠냐고 슬쩍 말을 꺼냈었다. 설득에 실패했다. 해외파견은 내 스펙으로는 떨어질 것이 뻔해 의논도 없이 지원했다. 물론 떨어졌다.


“한산도에 자리가 난다는데 쓸까?”


타이베이 여행을 하던 중 남편이 말했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예스. 남편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일단 지원하라고 부추겼다. 지원조차도 하지 않으면 분명 후회할 것이라고 거의 협박했다. 그래도 많이 불안해하고 걱정이 많았다. 일단 되고 나서 걱정하자고. 설령 되더라도 내가 다 감당하겠다는 무책임한 발언도 했다. 나와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라고 안심시켰다. 우리 아이들도 섬 학교에 다녀볼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그곳이 어딘지 한 번도 안 가봤지만 꼭 가서 살고 싶다고. 이제 내 인생에 육아휴직도 딱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타이베이의 스펀에서 천등을 날리며 이미 감지했다. 곧 오겠구나. 한산도에서의 낯선 삶이 곧 오겠구나. 벌써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섬에서 사는 내 모습이 마구 상상이 되고 즐거웠다. 그러면서도 슬그머니 걱정되었다. 만약 남편이 지원했는데 떨어지면 그다음은 어떻게 하지? 허탈한 마음은 무엇으로 채우지? 또다시 해외파견에 도전해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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