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 처음 가던 날 1

by 물지우개

2월 초, 남편은 ‘한산중학교’로 발령이 났다. 엄청 기뻐질 줄 알았는데 기쁨은 고사하고 생각이 많아졌다. 살던 집은 어떻게 하고, 살 집은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교직원 사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걱정을 놓게 되었다. 살던 집을 두고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산중 교감 선생님께 전화를 받고 난 뒤 남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사택은 1인용 원룸이라 매우 비좁아서 4명이 살기 부적합하며 그런 전례도 없다는 말씀이었다. 난 이런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했다. 이래서 사람은 익숙한 곳에 사는 것이 편하다는 것이겠지. 오히려 남편을 안심시켰다. 우리가 직접 보고 판단하자. 사택 거주가 불가능하다면 한산도에 집을 구하면 된다. 시골이라 빈집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금방 구할 수 있다. 오히려 사택이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다. 좁은 거야 우리가 감수하면 된다. 원룸이지만 그곳에 우리 네 식구 사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 않으냐. 전례는 우리가 만들면 된다. 그러니 미리 걱정하지 말자고.


2018년 2월 20일 처음으로 한산도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보기로 했다. 남편은 오전에 발령장을 받고 그곳에 가 있었다. 조퇴하고 아이들과 함께 남편이 가르쳐 준 대로 거제 어구항으로 내비게이션을 켰다. 집에서 거가대교까지 정확히 1시간이 걸렸다. 생각보다 멀었다. 아직도 부산을 못 벗어났다니. 그러고 보면 부산은 참 크다. 거가대교에서 또 1시간 후 거제 어구항에 도착했다. 그곳의 정확한 명칭은 ‘한산도행 카페리 터미널’이었다. 남편이 일러준 대로 차는 어구항에 주차했다. 배는 정시마다 한 대씩 운항했고 우리는 4시 배를 타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바다였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드디어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어구항에서 본 바다는 드넓은 수평선의 망망대해의 바다가 아니라 작은 섬들이 곳곳에 보이는 바다였다. 유난히 햇빛에 반짝이는 바닷물과 올망졸망 아기 같은 섬들이 낯설었지만, 그 또한 사랑스러웠다. 서연이는 비릿한 바다 냄새가 이상하다 했고 서진이는 바닷속에 뭐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바다를 앞에 두고 어떤 섬 생활을 상상하고 있을까. 한산도를 바로 눈앞에 두고 우리는 낯설고 두려웠지만 설레었다.


배를 탄 지 15분 만에 섬에 도착했다. 선원들은 나이가 많고, 인상은 무서워 보였다. 뭣 하러 이 시간에 섬에 들어가는지 궁금해하는 얼굴이다. 주말에야 관광객이 오겠지만 평일에는 주로 주민들이 이용할 텐데 딱 봐도 주민이 아닌 나와 아이들이 평일, 이 시간에 배를 타는 것이 이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어색할 때는 인사가 답이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아이들과 하선했다.

사택은 생각보다 좋았다. 오히려 기대 이상이었다. 정말 최악을 상상했었나 보다. 어릴 때부터 그런 버릇이 있다. 엄청 두려운 일이 앞에는 항상 최악을 상상한다. 그래야 진짜 최악이 안 오기도 했고, 설령 오더라도 충격이 덜하기 때문이다. 좁았지만 우리 네 식구가 충분히 살 수 있어 보였다. 화장실은 깨끗했고 빨래를 널 수 있는 베란다도 있었다. 신축건물이라 냄새가 나긴 했지만, 신축이라 전기쿡탑도, 에어컨도 있었다. 남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신나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 네 명이 복닥거리며 부대낄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매고 있던 핸드백이 없다는 사실을 안건 사택을 구경하고 난 후였다. 차 열쇠를 찾는 남편의 말에 내 핸드백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아까 배에 두고 내렸다. 바다를 더 가까이 보고 싶어 창가에 앉았었다. 바다 사진을 찍기 위해 가방을 벗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다. 찾기는 틀렸다고 생각하니 행복도 잠시 우울해졌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전화는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배에도 전화가 있나? 그 무서운 아저씨들 핸드폰 번호를 알 수는 없을까? 어디다 전화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행히 아까 샀던 배표가 호주머니에 있었고 매표소 전화번호가 보여 냉큼 걸었다.

“어구항에서 4시 배를 타고 한산도에 들어왔는데 제가 배 안에 검정 가방을 두고 내렸어요. 창가에 둔 것 같은데 찾을 수 있을까요? 힘들겠죠?”

“아 그러세요. 찾아보고 전화할게요. 아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의외로 긍정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 가방을 찾았으니 배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서 소고포항구로 나오라는 말이었다. 신난다!

무서워 보이는 그 선원 아저씨였다. 그런데 내 핸드백을 본인 것인 양 엑스자로 매고 나오셨다. 그 포스에 꾸벅 90도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그 상태로 소고포 매점으로 들어갔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 들어갔다. 매점 문을 열더니 주인을 보고는 본인이 가방을 찾아줬으니 막걸리를 얻어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가방을 찾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근무하시는 세 분이니 막걸리를 3병 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기분 좋게 웃었다. 지금은 그 아저씨와 농담을 주고받고 간식을 나눠 먹는 절친이 되었다.


매점 아주머니는 썰고 있던 떡을 내 입에 넣어주시며 섬에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여기 살러 왔어요!”

“참 잘했네요. 잘 왔어요.”


떡은 진짜 맛있었다. 우적우적 떡을 씹으며 나도 따라 웃었다.

한산도 처음 가던 날1.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섬에서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