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고무보트

by 물지우개

남편은 섬에 오기 전부터 항해의 꿈을 꾸었다. 마치 항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섬에 온 듯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를 땄다. 설마 하던 일이 결국 일어났다. 남편이 고무보트를 산 것이다. 주문한 배가 어구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남편은 한달음에 달려갔다. 더 설마 하던 일이 벌어졌다. 어구항에서 혼자 보트를 몰고 진두로 온 것이다. 어이없어하는 나와는 달리 도착한 남편의 표정은 의기양양했다. 보트 안에 과자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니 처녀항해를 제대로 즐긴 모양이다. 어구에서 진두는 가깝고 스마트폰 항해 앱이 잘 되어 있어 전혀 무섭지 않았단다. 남편의 무모함에 어이가 없었다. 남편도 나를 무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까. 나는 혼자 보트를 몰고 오는 남편만큼은 아닌 것 같다.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남편은 추봉도 앞에 있는 등대까지 보트로 가보자고 했다. 구명조끼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흥분했다. 서연이를 태워 다녀오고, 서진이를 태워 다녀오더니 이번에는 나더러 타보라고 한다. 괜찮다고 얼른 뛰어내리란다. 보트에 뛰어내리라고요?


남편은 행복해했다. 과자도 먹으며 노래도 부른다. 속력을 줄였다가 올리기도 해보고 커브를 돌기도 한다. 저 행복한 얼굴을 도저히 말릴 수가 없다.


저 보트를 어떻게 보관할 것인 궁금했다. 바다에 그냥 둥실둥실 띄워두는 것인지.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보트는 어떻게 되는지. 묶어놓은 줄이 끊어지면 배는 과연 찾을 수 있는 것인지. 그나저나 허락 없이 바다에 배를 띄워놔도 되는지. 배를 들어 올린다고 치자. 저 무거운 걸 어떻게 바다에서 끌어 올릴 것인지. 들어 올린다면 어떻게 바닷물을 말리고, 어떻게 바람을 빼고, 어떻게 접을 것인지. 어떻게 집까지 끌고 올라갈 것인지. 원룸 어디에 보관할 것인지. 모든 것을 해결했다고 하자. 다음에 배를 탈 때는? 이 모든 과정을 다시 해야 한단 말인가. 한 번의 행복을 위해 열 번의 고통을 참아야 하는 것을 있다면 그건 바로 고무보트다.


건희는 서진이와 한 반이다. 서진이와 건희는 만나자마자 단짝이 되었다. 죽이 척척 맞는 모양이다. 건희는 비진도에 산다. 건희 부모임은 비진도에서 펜션을 운영하신다. 건희어머님은 나와 공방에서 만났고, 우리도 아이들처럼 곧 친한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친구도 만나고 펜션에 놀러 갈 겸 비진도에 가기로 했다. 보배에 비할 만큼 예쁘다는 비진도다. 펜션 앞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니 물놀이용품도 챙겨야 하나. 섬에 살지만 섬에 가는 일은 설렌다.


우리 학교에는 경남에서 유일하게 통학선이 있다. 다른 섬에 사는 아이들이 한산도로 등하교를 할 때 타는 배다. 건희는 통학선을 타고 다닌다. 원래 한산도에서 비진도에 가는 방법은 조금 복잡하다. 제승당에서 파라다이스 호를 타고 통영으로 가서, 다시 비진도로 가는 여객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 통학선은 직통이다. 우리가 사는 진두에서 건희가 사는 비진도 외항으로 바로 간다. 우리는 하굣길 통학선에 얹혀 가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었다. 본인은 보트를 타고 비진도에 오신단다.

첫날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듯 힘들게 집어넣은 보트다. 남편을 외면하고 싶지만, 저 모든 과정을 혼자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한숨이 났다. 진심으로 말리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랴. 이미 보트와 사랑에 빠진 남편이다. 매몰차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을 내버려 둔 채 애들과 통학선에 올랐다. 남편은 미리 가 있으라고, 고무보트와 함께 갈 테니 걱정 마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저녁에 통화하니 옆에 계신 선생님들과 함께 무사히 배를 꺼내 바다에 세팅했단다. 과연 무사했을까. 옆에 선생님들은 왜 도와주시는 걸까. 안 도와주셨으면 못 꺼냈을 텐데. 남편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불안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거의 도착했다고 펜션 앞으로 나오라고 한다. 창문을 열고 베란다로 뛰어나갔다. 저 멀리서 노란 고무보트가 보였다. 빨간 구명조끼를 입은 남편도 보였다. 손을 흔들고 있다.


정말 왔구나. 이게 가능한 거구나. 놀라웠다. 아무리 수영을 잘하고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혼자 보트를 몰고 오다니. 남편은 역시나 자신감에 넘친다. 날씨도 좋고 파도도 잔잔했단다. 앱으로 현재 위치를 확인하며 비진도를 찾아올 수 있단다. 30분도 안 걸렸다고 자랑을 하며 인증 사진을 찍어 달라 했다.


건희아버님과 남편은 모래사장까지 배를 끌어 올렸다. 해변이라 진두선착장보다는 훨씬 편했다. 정박한 고무보트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은 더없이 따뜻했다. 비진도에서 남편의 보트는 날개가 단 듯했다. 승선과 하선이 편한 덕분인지 남편은 더 침착해 보였다. 진두에서 했던 드라이브는 약과였다. 아이들을 태우고 비진도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비진도는 섬이 모래시계 모양이라 생각보다 둘레가 길다. 남편은 비진도 가이드처럼 구석구석 해안과 절벽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나저나 이제 우리는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올 때처럼 통학선과 고무보트, 따로 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 네 명 다 고무보트를 탈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남편의 자신감에 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고무보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 네 명이 저 보트로 진두로 간다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 보트와 운명 같은 연애 중인 남편은 이미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다. 앱으로 길을 익히고 있었다.


보트가 작아 여행 가방은 놔두기로 했다. 가방은 건희어머님이 다음날 통학선에 실어 보내주신단다. 가방도 버려둔 채 우리 네 명은 아침 일찍 보트에 올랐다. 손을 흔들어 주는 건희부모님도, 손을 흔드는 나도 불안한 눈빛이다. 우리는 과연 무사히 진두에 도착할 수 있을까.


펜션을 뒤로하니 멀리 수평선이 보인다. 코앞에 보이는 바다가 시커멓다. 멀리서 보이는 바다는 푸르게 아름다웠는데 시커먼 바다를 보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 바다에 빠지면 얼마나 차가울까. 구명조끼가 있으니 가라앉지는 않겠지. 애들은 어떻게 하지. 나는 수영을 못한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행히 애들은 나처럼 불안하지는 않은지 남편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서연아, 서진아 어때? 바다가 멋있지?”

“바다 진짜 넓다. 비진도 지나면 용초도 나오는 거야?”

“저기 큰 배 지나간다. 우리 배 보다 저 배 보니까 진짜 크다.”

“아빠, 배에 타고 있는 아저씨가 손 흔들어 주신다.”


난파선에 오른 피난민 같았을 것이다. 어린이까지 있으니 저 배에서 보는 우리 고무보트가 얼마나 웃기고 어이없었을까. 무사히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시나 보다.


큰 배가 지나가면 파도가 일었다. 배가 클수록 파도고 컸다. 큰 파도가 올 때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배가 뒤집히지는 않겠지?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어이없게도 이 순간 남편은 아이들에게 노래를 부르자고 한다.


“달빛 어스름 한밤중에 깊은 산속 걸어가다~”

“파도가 지나갈 때는 가만히 있으면 돼. 배가 움직이지 않으면 파도도 그냥 지나가거든.”


용초도를 지나니 추봉교가 멀리 보인다. 익숙한 추봉교가 보이니 불안한 마음이 조금 나은 것 같다. 노래도 부르고 지나가는 배에 손도 흔들며 우리는 진두에 도착했다. 비진도에서 출발한 지 정확히 25분 만이었다. 참으로 긴 25분이었다.


그다음은 다시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이야기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데 2시간이 걸렸다. 원점이다. 다음에는 이걸 어떻게 꺼내는 것인지. 어떻게 선착장까지 끌고 내려올 것인지. 바람을 어떻게 넣는 것인지. 바람 넣은 배를 어떻게 바다에 띄우는 것인지. 바람 넣은 배에 저 무거운 엔진을 어떻게 설치하는 것인지. 기름은 어떻게 넣는 것인지. 기름은 어디서 어떻게 사와야 하는지. 그나저나 이걸 몇 번이나 해야 하는지. 저 배는 앞으로 몇 번이나 탈 수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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