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을 그리다

by 물지우개

사진 속의 내 얼굴은 대부분 어색하다. 내가 저런 표정이었나? 싶다. ‘실물이 훨씬 나아’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사진만큼 정확한 것도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진이 있었다. 서진이가 돌 무렵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나는 서진이를 업고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사실 내 기억에는 없는 장면이다. 문제는 사진 속의 내 표정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장면에 얼음보다 더 차가운 얼굴이 있으니 그게 바로 나였다. 갑자기 튀어나온 이 사진을 보고 서진이는 엄마 얼굴이 무섭다고 했다. 하필이면 왜 화난 얼굴을 찍었냐고 남편을 나무라니 남편은 펄쩍 뛰었다. 내가 화났을 때 찍은 것이 아니란다. 본인도 사실 그날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저 무렵 늘 저런 표정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돌 무렵부터 아기들은 시시때때로 열이 나고 각종 전염병에 걸리기 시작한다. 둘째 아이는 강력한 병원균인 첫째 아이로 인해 더 일찍 시작한다. 두 아이가 번갈아 가며 열이 나는데 곧 복직을 앞두고 있었다. 육아와 복직의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표정에 나타났다. 안 그래도 차가운 인상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 얼굴이다. 사진 속의 나는 정말 차가운 얼굴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진은 정말 정확하다.


추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우리가 추봉도에 처음 가본 날이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마을이 나오기에 차를 세웠다. 마침 물때인지 갯벌 펼쳐져 아이들과 남편은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이 예뻐 사진을 찍어 주다가 나도 찍었다.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은 흩날리지만 이런 곳에서 이런 배경으로 편안하게 사진을 찍는다는 게 좋았다.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다음날은 월요일이지만 아침 일찍 급하게 집에서 나오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이 숙제했는지 학원에 제대로 가는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일하지 않아도 된다. 혹시나 있을 내 부주의로 인한 민원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고, 옆 반 동료와 소모적인 신경전도 하지 않아도 된다. 공문을 만들어 보고하느라 오후 내내 머리가 뜨거워질 필요가 없다. 남편이 내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아 답답해할 필요도 없고 아이들에게 도대체 언제 잘 거냐고 소리를 지를 필요도 없다. 그날은 날이 흐리고 바람이 제법 쌀쌀했는데 표정에서는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동백꽃을 그린 후였다. 동백꽃을 그리는 것이 생각보다 즐거워 다음으로 무얼 그릴지 핸드폰 사진을 뒤지던 중이었다. 너무 편안해 보여서 오히려 낯선 내 얼굴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나에게도 이런 표정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오랜만에 내 얼굴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어느새 스케치를 시작하고 있었다.


스케치할 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40년 가까이 이 얼굴로 살았지만 이렇게나 낯설지 몰랐다. 얼굴 형태부터

눈, 코, 입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집중해서 관찰하고 그렸다 지우기를 여러 번, 실물보다 더 예쁘게 그릴 능력도 없었다. 실물에 충실히 표현하는 것도 나에게는 버겁다. 그래도 저 표정만큼은 비슷하게 표현해 보려고 애썼다. 편안하고 따뜻해 보이기까지 하는 저 표정만큼은 말이다. 힘겹게 채색까지 마치고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다.


“아닌데…. 엄마 아닌데…. 엄마가 훨씬 나은데? 그림은 뭔가 이상한데”

“표정을 잘 봐봐. 표정 어때? 비슷하지 않아?”

“입도 이상하고 눈이 이상해. 표정도 사진하고 다른데….”


깨끗하게 인정해야 했다.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 뭐든 의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꾸 그리다 보면 늘겠지.


추원 갯벌에 있던 그 날, 강현정의 얼굴은 문제가 없었다. 단지 그림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 실물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 사진과 그림을 번갈아 보며 그렇게 위안했다.

자화상.jpg
자화상2.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요가교실과 헬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