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좋아하는 나는 섬에 오기 전에도 요가와 헬스를 꾸준히 했다. 소화가 잘 안 되고 두통이 잦은 나에게 요가는 큰 도움이 되었다. 꾸준히 한 덕분에 동작은 꽤 따라 하는 편이다. 남편은 내가 근력이 부족하니 근력을 키우는 운동기구를 하라고 했지만, 헬스장에서는 달리기만 했다. 남편과 마라톤대회도 출전하기 위해서다. 기록은 형편없지만, 완주가 주는 성취감에 여러 번 출전했다.
섬마을의 요가수업은 매주 화요일 3시, 자치센터 2층에서 한다. 여러 요가 선생님을 겪었지만 비슷한 수업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곳 요가 선생님은 어떤 수업을 할지 궁금했다. 문을 여니 대여섯 분의 할머니들이 보였다. 맨 앞 정면 가운데 앉아계신 분이 선생님인가 보다. 선생님도 역시 나이가 지긋하시다. 대충 이런 장면을 예상했다. 나는 이 요가 수업이 너무 궁금했다.
음악도 국악명상곡이다. 발목을 돌리는 것으로 수업은 시작했다. 요가 선생님의 목소리는 크고 명쾌했다. 내가 본 요가 선생님 중 말 속도가 가장 느렸다.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강생 중에 여든이 넘은 어르신도 계시기 때문이었다. 그 어르신도 익숙한 듯 준비 동작을 하셨다. 그동안 내가 했던 요가는 처음엔 서서 하다가 앉아서 하고, 마지막에 누워서 한다. 강도로 치면 강-중-약으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 수업은 반대였다. 쉬운 것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어려워졌다. 그마저도 완성 자세까지 여러 단계를 나누어 천천히 만들어갔다. 나는 이 모든 내용이 할머니들에게 최적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교사는 항상 학생 중심이어야 한다. 교사가 만족하기 위해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학생이기 때문이다. 요가 수업을 들으며 반성했다. 그동안 많은 학생을 만났다. 학생들은 모두 달랐다. 만나는 학생마다 그들에게 맞는 최적화된 교수법으로 수업을 했을까 반성했다. 아니, 충분히 고민이라도 했을까 반성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내 방식을 고집한 것은 아닐까 말이다.
나에게 요가수업을 안내했던 할머니는 걱정이 되는 듯 작은 소리로 살짝 물어보셨다.
“어때요? 할 만해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땀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배움이 많은 수업이었다. 느린 스트레칭은 뻐근한 여러 관절을 부드럽게 해줘 매주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단, 오기 전에 땀을 흘릴 수 있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마침 자치센터 1층은 한산도 주민을 위한 작은 헬스장이었다. 들어보니 면사무소에 월 만원이면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바로 등록했다.
그런데 헬스장에서 매력적인 것은 운동기구보다 텔레비전이었다. 우리 부부는 섬에서 텔레비전을 생략하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자고 결심했다. 그런데 이 헬스장에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러닝머신에서 달릴 수 있었다. 바닥 쿠션감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참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좀 미안했다. 나만 몰래 맛있는 것을 먹는 것 같았다. 어제도 평소 좋아한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보지 못해 슬퍼하는 것이 떠올랐다. 뭐든 급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텔레비전 없는 일상이라는 최종목적을 위해 천천히 가는 건 어떨까. 아이들이 텔레비전이 그리워 몸부림칠 때는 여기 와서 잠깐만 보게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빠가 야자 감독으로 늦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공부도 놀이도 일찍 끝났다. 텔레비전이 생각나는지 서로 속닥거리며 내 눈치를 본다. 나는 씩 웃으며 좋은 데가 있다고. 엄마를 따라서 오라고 했다. 아이들은 헬스장의 텔레비전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서진이는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렇게 비밀스러운 텔레비전 시청 뒤 어둑어둑한 밤길을 걸어오는데 아이들이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텔레비전 보는 거 좀 힘들다.”
“맞아. 겨우 텔레비전 보려고 이렇게까지 와야 하나?
“텔레비전이 천장에 있어서 올려다보느라 목이 아팠어.”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추워.”
그렇게 딱 한 번으로 끝났다. 그 이후에도 티브이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거기 가자고 하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나도 텔레비전을 보며 러닝머신을 뛰는 게 이상했다. ‘이 좋은 해안 길을 걷거나 달리면 되는데 굳이, 그것도 겨우 텔레비전 때문에?’라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날씨가 좋지 않아 바깥 운동이 힘든 날만 헬스장에 가는 것으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