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들

by 물지우개

우리 부부는 단번에 이 섬이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럽게 같은 생각을 했다. 퇴직하면 여기 와서 살자고. 며칠 전 바닷가를 걸으며 우리는 그렇게 합의했다. 또 자연스럽게 같이 궁금해졌다. 이곳 부동산 가격이 말이다.

섬에는 부동산이 없다. 당연히 우리가 접근한 곳은 네이버부동산이다. 검색해보니 땅이 나오고 집도 나와 전화를 걸었다. 업자는 배를 타고 와서 직접 안내할 수 없단다. 당연하다. 우리더러 주소만 알려주고는 직접 가보라고 했다. 그중 하나가 야소마을의 2층 주택이었다. 집값은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그래도 구경은 해보고 싶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구경을 하러 갔다.


“집 보러 왔어요.”

마당에 계신 어른이 보였다. 빨간 잠바를 입고 흰 수염이 많은 할아버지다. 집을 보러왔다는 말에 우리를 한 번 훑어보시고는 이내 들어오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손님이 오셨으니 차를 내오라고 하셨다. 차를 마시고 할머니의 안내로 집 안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집이 크지는 않았지만 공간마다 이야깃거리가 가득했다. 할머니는 가족소개, 물건소개와 더불어 집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2층은 천장이 낮은 다락이지만 꽤 넓었고 바다도 보였다. 취미와 관련한 물건들이 많았는데 평소 보지 못한 가구며 그림들, 모자들이 신기했다. 아이들은 특히 거실에 있는 거대한 텔레비전이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아이들은 텔레비전에 정신이 팔리고 우리 부부는 식탁에 앉아 노부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섬사람이 된 역사에 관해 이야기 해주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교사생활을 하다 퇴직 후 섬에 들어오셨단다. 그런데 우습지만, 결론은 이 집을 사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돈이 없어 보여 그런가 싶어 살짝 기분이 상할 뻔했다. 그런 뜻은 아니라 우리 목적에 합당한 부동산은 주택이 아니라 ‘땅’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좋은 땅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겠단다. 그분들 말씀에서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졌다.

“운동 좋아해요? 혹시 요가 할 생각 없어요?”

할머니는 학교 바로 밑 주민자치센터 2층에서 요가 수업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화요일마다 선생님이 오셔서 요가를 가르쳐 주신단다. 수강생은 대부분 할머니인데 내가 와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수강생이 적으면 폐강이 되는데 폐강이 될까 봐 걱정이라고 하신다. 애 엄마가 너무 잘해서 우리랑 수준이 안 맞으면 어쩌나 하셨지만 내심 내가 왔으면 하는 눈치다. 나는 그분들의 호의 때문이 아니라 운동을 하고 싶어 가겠다고 했다. 또 알려주시기를, 공예 수업이 있다고. 본인은 잘 모르지만, 수요일 오전에 같은 장소에 사람들이 모인단다. 섬과 친해지고 싶은 나는 친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알고 싶은 것도 많다. 화요일에는 요가수업, 수요일에는 공예 수업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요일이다. 집에서 나와 내려가는 길이 두근거린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어떤 수업일까 설렘으로 문을 열었다. 제법 많은 사람이 있었다. 요가처럼 할머니들을 상상했었는지 대부분 젊은 분이라 놀랐다. 안에는 재봉틀이 여러 대 보였다. 어떤 분은 재봉틀을 하시고, 어떤 분은 간식을 드시고, 어떤 분은 초크를 들고 바닥에 앉아있다. 분위기가 따뜻하고 유쾌했다. 내가 등장하자 하던 일을 멈추고 쳐다본다.

“저는 이번에 사택에 들어온 사람이에요. 학교 학부모예요.”

“아! 서진이 엄마구나!”

“아! 음악 선생님 사모님이구나!”

그렇게 친구들을 만났다. 서진이와 같은 반 친구 엄마도 있었고 중학교 학부모도 있었다. 나에 대해 잘 몰라도 나를 환대해 준 그분들이 좋았다. 나도 여기에서 같이 웃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발령지에서 몇몇 선생님들과 교사연구실에서 재봉 수업을 받은 적이 있다. 작은 파우치, 지퍼 달린 가방을 만든 기억이 난다. 실력은 비루했고 작품은 저질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것을 갖고 있다. 엄마는 코바늘뜨기로 내 카디건을 만들어 주셨다. 그것도 여전히 옷장에 있다. 잘 버리는 나에게도 핸드메이드라는 위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이분들은 핸드메이드를 제작하고 있었다. 앞치마를 만드신단다. 중학교 학부모이자 공방 선생님은 간단히 설명을 해주셨다. 재봉틀 이전에는 여기서 다른 수업도 하셨단다. 냅킨으로 작품을 만들기도 했고, 꽃 그림도 그렸으며 리본공예도 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수강생들의 요청으로 재봉틀 수업을 하신단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묻는다.

“같이 해보시겠어요?”

“같이 해요. 공방에서 같이 놀아요.”

그분들을 이곳을 공방이라 일컬었다. ‘공방’이라는 단어부터 마음에 들었다. 전통을 지키며 독자적인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 같았고 나도 하고 싶었다. 사랑에 빠졌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공방과 첫눈에 사랑에 빠져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너무 좋아요. 하고 싶어요. 저도 가르쳐 주세요.”

그 이후 우리 부부는 한산도 부동산에 대해 알아보지 않았다. 그걸 알아보고 다닐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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