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전과 쑥전

by 물지우개

서진이가 점찍어둔 뒷산으로 갔다. 쑥을 캐기 위해서이다. 딱딱한 땅을 뚫고 어린 쑥이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보석이라도 발견한 듯 우리는 쪼그려 앉아 쑥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아이들은 손으로 쑥 이파리를 하나씩 뜯었다. 쑥은 그렇게 캐는 게 아니라 칼을 땅속에 집어넣어 줄기를 통째로 꺾어 내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도 칼을 달라고 조른다. 우리들이 한참을 캐도 캔 양은 미미했다. 삼천 원어치 쑥 한 봉지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양인지 실감했다. 생각해보면 삼천 원이라는 돈도 엄청나다. 몇백 원 싸게 사보려고 쿠폰을 동원하고 몇 프로 할인해주는 신용카드가 있는지 지갑을 뒤진다. 이왕이면 원플러스 원 상품을 고르거나 타임 특가 제품을 담으며 뿌듯해한다.

재래시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아주머니가 소쿠리에 담아놓은 쑥을 봉지에 담으면서도 한주먹 더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한 봉지 더 살 테니 천 원을 깎아달라고도 한다. 삼천 원이라는 돈도, 삼천 원어치 쑥도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새삼 물자와 노동의 가치가 피부로 와 닿았다. 우리가 한참 동안 캔 쑥은 노동에 비해 초라했다.

학교 앞 텃밭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한참 지나 보였다. 관리하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학교의 식구일 것이다. 이 밭에 그분의 손길이 닿으려면 개학까지 아직 며칠 더 필요했다. 텃밭 여기저기 던져진 배추가 보였다. 배추의 외모나 속이 출중하지 못해 불합격을 받아 던져졌겠지. 겨우내 견뎠지만 내 팽개쳐진 배추가 안쓰러웠다. 나름은 최선을 다해 영글었을 배추를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가까이 가서 앉아 가만히 배추를 보았다. 수고했다고, 추위와 외로움을 견디느라 정말 고생했다고, 여기서 너를 만나 참으로 반갑다고 말했다. 성한 잎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성해 보이려고 애쓴 잎 몇 개를 뜯어냈다. 목장갑을 끼고 살살 쓰다듬으니 하얀 살이 보였다. 소중하게 품에 안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가져와서 진잎을 손으로 떼거나 칼로 잘랐다. 안 그래도 적은 양인데 다듬고 나니 절반이나 줄어든 것 같다. 그래도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도시 생활에 지친 주인공은 고향인 시골로 내려온다. 배는 고프고 먹을 것이 없어 텃밭에 가서 배추를 뜯어 온다. 그러고는 혼자서 배추 전을 부쳐 먹는다. 배가 부른 주인공은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배추 전을 맛있게 먹는 주인공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그동안의 허기를 다 채워주는 배추 전이었다. 이후 주인공은 시골 생활을 하며 몸과 마음을 회복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영화에는 주인공이 직접 만드는 여러 가지 요리가 나왔지만, 특히 그 배추전이 기억에 남았다. 언젠가는 나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다. 겨울을 견딘 배추와 쑥이 준비된 것이다. 영화처럼 맛있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대한 나를 믿어 보기로 했다. 양푼에 밀가루를 넉넉하게 담고 달걀도 몇 개 넣었다. 소금과 설탕도 조금 넣고 물을 부었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니 이내 반죽이 만들어졌다. 반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떨어뜨리니 죽 흘러내리는 것이 농도가 적당하다. 먼저 배춧잎을 반죽에다 쑥 담갔다 뺐다. 하얀 옷을 입은 배추를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얹는다. 착~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낸다. 배춧잎이 뻣뻣한지 쉽게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이럴 때는 불을 약간 낮추고 은근히 익혀야 한다. 마치 아이 고집이 너무 완강하여 도저히 설득되지 않을 때는 일단 언쟁을 멈추고 휴지기를 갖는 것처럼. 드디어 잎은 부드러워지면서 프라이팬과 밀착력이 생긴다. 잠시 후 뒤집어야 한다. 역시 또 경쾌한 소리다. 성격이 급해서 뒤집는 것을 자주 반복하면 안 된다. 찢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쑥이다. 쑥은 워낙 야리야리하여 이파리 하나씩 부칠 필요가 없다. 깨끗이 씻은 쑥 더미를 그대로 반죽

에 넣는다. 반죽이 잘 묻어지도록 휘휘 젓는다. 그러고 나서는 동그랗게 프라이팬에 얹는다. 최대한 얇게 부쳐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첫 번째 전은 뒤집다가 초토화가 됐다. 두 번째는 적당한 두께로 반죽을 폈다. 쑥은 허약한 재료라 재료들의 협동이 필요했나 보다. 노릇하게 잘 구워졌다.

노르스름한 배추전과 푸르스름한 쑥 전이 저녁이었다. 배추전의 첫맛은 바삭하고 고소했다. 씹을수록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났다. 쑥 전은 처음에 풋풋한 맛이 났다. 쑥 향이 입안에 퍼지고 쫀득거리는 떡 맛이 나다 씹을 새도 없이 넘어가 버렸다. 양이 적어 금세 동이 났다. 봄을 다 삼켰는지 배가 불렀다. 어느새 우리 집에는 고소한 봄 냄새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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