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쳐 버린 것에 대한 관심

by 물지우개

나는 초등학교 교사이다. 이 땅에서 초등교사로 살아가는 위해서는 그야말로 다양한 능력이 요구된다. 새로운 교과 내용이나 떠오르는 교수법은 일반적인 교사라면 얼마든지 업데이트할 수 있다. 교사들은 가르침 이전에 배움에 거의 도가 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업데이트가 어려운 능력이 있다. 바로 학부모들의 다양한 민원을 처리하는 능력이다. 교실에서는 다양한 문제 상황이 발생한다. 그것을 쉽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세심하고도 적절한 관심이 필요하다. 교사의 관심이 부족하거나 과할 때 학부모의 민원은 폭주할 수 있다. 물론 교사가 민원에 수긍하고 관심 수위를 고칠 때도 많다. 그런데 저출산 시대에 귀하디귀한 자녀라 교사에게 요구하는 사항 또한 간혹 희귀할 때가 있다. 학부모의 희귀 민원에 교사도 도저히 수긍하기 힘들어 처리를 못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교사의 멘탈은 탈탈 털리고 핸드폰 받기가 두려워진다. 그렇게 시달린 날에는 퇴근 후에 가족과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요리사가 집에서 요리하지 않듯이 민원을 처리한 날에는 남편과 아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기 힘들었다. 다 민원 같았다.

정작 내 아이에게는 관심을 두기가 힘들었다. 요즘 서연이는 어떤 고민이 있는지, 이제 갓 입학한 서진이는 학교생활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학원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있으며 친구들 사이에 문제는 없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래서 내 아이와는 그나마 웃으며 하루를 마치는 것이 숙제였다. 다시 말해 언제부터인가 내 일에 대해 전혀 즐기지 못하고 쫓겼다는 말이다. 아마추어처럼 말이다.


“선생님이 해주시는 역사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졸린 데 졸리지 않아요.”

“선생님은 재미없는 국어책을 재미있게 들려주셔서 좋아요. 선생님 이야기가 웃겨요.”

“선생님은 수업 중에도 마치 우리를 아들, 딸인 것처럼 말씀하세요. 우리 엄마랑 비슷해요. 우리 엄마랑 진짜 비슷해요.”


아마추어처럼 쫓기며 살아서 이 일이 나의 업보 같아도 이런 말을 들으면 짜릿하고 힘이 난다. 나도 꽤 괜찮은 교사인가 자존감이 오른다. 생각해 보면 가르치는 일 자체는 참으로 재미가 있다.

프로가 되려면 즐겨야 한다. 몸이 힘들어도 능숙해야 한다. 그런데 프로도 발전하기 위해 연습이 필요하다. 축구선수도 전지훈련을 하러 가고 작가도 문학기행을 간다. 요리사도 음식을 연구하러 다양한 곳으로 다닌다. 나도 교사로서 연습할 시간이 필요했다. 교육과정이나 교수법을 알려주는 근시적 연수가 아니라 교사로서의 삶 전반을 업데이트시킬 연습이 필요했다. 가르치는 것에만 몰두하다 보면 아이들 하나하나 세세한 요구가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나 혼자만 수업에 몰입해 있는 상태다. 이것은 옳지 않다. 관객의 반응은 보지 않고 자기 노래에 도취한 가수와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프로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잠시 분필을 놓고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했다. 그것을 연습하러 이 섬에 와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산책을 나왔다. 길을 따라가다 보니 제법 꽃이 폈다. 야생화이다. 크기도 작고 딱 밟히

기 좋은 위치이다. 그런데 그 꽃이 나를 부른다. 가만히 앉아서 꽃을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급했다. 제시간에 학교에 도착해야 주차를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지도서를 한쪽이라도 더 읽고 수업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것도 빨리 끝나면 아이들 일기장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나 아파트 화단에 무슨 꽃이 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공기정화 식물인 팔손이와 아이비를 쉽게 볼 수 있다. 미안하지만 여기서는 길가에 핀 잡초에 가깝다. 학교 주변에 밭에는 어떤 농작물을 심는지 궁금해졌다. 얼핏 들으니 한산도는 땅두릅과 시금치가 유명하다는데 무지한 내 눈에는 어떤 것이 땅두릅이고 어떤 것이 시금치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점점 알고 싶어진다. 섬에 가면 왠지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수산물이나 농작물을 팔 것 같았는데 그런 분은 여기서 단 한 명도 본 적 없다. 도대체 왜 없는지, 여기 분들은 어떤 작물을 심고, 어떻게 판매를 하는지, 저기 고깃배들은 어떤 조업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 학교의 학부모님들은 어떤 분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그분들이라면 내 궁금증에 답을 해줄 것 같다. 여기 이 야생화 이름도 알 수 있을 것이고 산에서 본 새 이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내게 주어진 일을 프로답게 해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변하지 않는 내가 변화무쌍한 교육 현장에 계속 투입되어 있었다. 단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연습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스무 명 넘는 아이들에게 편안한 상태에서 세세하게 관심 가지지 못했다. 교사로서 내가 가진 소신과 철학에 대해 학부모에게 당당하지 못했다. 게다가 집에 와서 가족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거나 충분히 대화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다. 급할 것 없는 이곳에서 그동안 지나쳐 버렸던 것에 대한 관심주기를 연습한다. 관심을 주면 애정이 생기는 법이다. 나도 자꾸 하다 보면 내 시선에 애정이 깃들 것이다. 이것은 이내 습관이 되고 학교까지 이어진다면 비로소 프로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즉 프로 교사가 되기 위한 전지훈련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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