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긴 시간동안 우리는 뭐하지?

by 물지우개

섬에는 학원이 없다. 그럼 아이들은 하교 후에 뭐할까? 당연히 방과 후 교실과 돌봄 교실에 간다. 즉 정규 수업의 연장이다. 시간, 학년마다 방과 후 수업 스케줄은 이미 정해져 있다. 스케줄대로 모든 수업이 끝나면 5시다. 아이들은 5시에 통학버스나 통학선을 타고 일괄 헤어진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참으로 편하다. 도시에서는 선택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사교육은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작년에 아이들 태권도 학원을 결정하기 위해서 조퇴를 했다. 여러 학원을 둘러보고 싶지만, 시간도 에너지도 없어 집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세 군데만 갔다. 아이들과 3번까지 돌고 나니 기진맥진하여 저녁밥을 차릴 수도 없었다. 우리는 배달음식을 먹으며,


“어디 다닐래? 엄마는 제일 가까운 1번이 좋은 것 같은데?”

“그래도 2번 선생님이 더 친절하고 잘 가르쳐 주실 것 같아.”

“아니야, 3번 도장이 넓잖아. 트램펄린도 있고. 넓어야 재밌지.”

“3번이 제일 비싸. 너희 둘이 보내면 얼만지 아냐?”


쉽지 않은 결정이다. 머리를 싸매고 결정해야 할 학원은 한 군데 끝나지 않는다. 학원 수업은 보통 1시간이기 때문이다. 영어학원은 결정이 더 힘든데, 심지어 사전 테스트도 받아야 한다. 혹시나 애가 방과 후 수업이라도 하고 싶다고 하면 학원과 스케줄을 맞추느라 엄마는 머리가 뜨겁다. 학원 차 시간 조정으로 기사님과 전화도 여러 번 해야 한다. 중학교에 가면 좀 나을까?

한산초등학교는 이런 선택이 없다. 더없이 매력적인 것은 교육비도 없다. 물론 도시의 다양한 선택이 주는 장점을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다. 선택이 주는 단점을 이미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얼떨떨해했다. 우쿨렐레 수업을 들으라고? 배드민턴? 해본 적도 없는데. 아이들은 난감해했다. 어쩔 수 없다. 한산초등학교 어린이들은 다 한다고 하니 우리도 일단 해보자. 하다가 도저히 못 하겠으면 그때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아이들을 설득했다.


“근데 엄마, 컴퓨터 수업이 있잖아. 나는 이거 하고 싶었어.”

“엄마, 방과 후 피아노 수업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생각해 보면 학원은 참 편리하다. 일하는 엄마에게는 필수다. 엄마 대신 아이를 돌봐주면서 교육까지 해준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문제는 아이다. 학원에 대한 아이의 생각이다. 아이 생각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이 더 중요했다. 억지로 아이를 학원으로 밀었던 적이 많았다. 엄마의 편의를 위해서. 어쩌면 여기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편해지고자 5시까지 방과 후와 돌봄 수업으로 아이들을 미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잘하면 좋겠지만 좀 못해도 된다. 어떤 수업을 받더라도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재미도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가끔 땡땡이도 치고 장난도 치고 그러는 거지. 학원을 보낼 때는 욕심이 많이 났는데 지금은 내려놓게 된다. 이게 돈이 안 들어서 그런 건지, 내가 욕심을 버린 건지, 섬이 주는 여유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이들도 안 하던 걸 하니 설레나 보다. 그거면 됐다.

5시에 아이들이 집에 오면 저녁을 먹는다. 내가 4시부터 저녁을 준비하면 아이들은 5시에 식사를 할 수 있고 여유 있게 먹어도 6시 전에 끝난다. 그러면 우리는 또 시간이 많다. 도대체 뭐할까?

초등학교 공부는 습관이다. 공부를 위한 습관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책상에 앉기, 책을 펴기, 집중하여 읽기, 문제 해석하기, 문제 풀기, 확인하기 이 모든 것은 습관이다. 초등학생에게 학습은 고도의 문제해결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습관, 그 베이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루라도 빼먹으면 쉽게 흐트러진다. 아이들을 위해 이 습관만큼은 잃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평소에 풀던 문제집을 챙겼다.

우리 집 메인테이블은 우리가 앉기에 좁았다. 우리는 책을 들고 학교로 향했다. 서진의 2학년 교실 앞이 바로 도서관이다. 여기는 우리 집 테이블보다 큰 책상이 무려 4개나 있다. 거기다가 책이 많다. 아이들 책도 있고 어른 책도 있다. 이 공간이 사랑스러워 우리는 먼저 창문을 열고 먼지를 닦았다.


6시부터 아이들은 평소에 하던 문제집을 풀었다. 하루 분량은 종류별로 한 장씩, 총 3장이다. 3장을 해결하는데 보통 20~30분 정도다. 아이들이 문제를 풀고 매기고, 틀린 문제는 다시 생각하도록 도와주는 이 모든 과정은 7시 안에 끝났다. 그다음은? 당연히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기다. 다른 도서관에 비하면 서가의 양이 많지 않지만, 우리가 읽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양이다. 서진이는 책을 읽다가 지겨우면 밖에 나가 축구를 한다. 아빠랑 하기도 하고 누나랑 하기도 한다. 믿을 수 없었지만, 서연이도 축구를 했다. 어떤 날 운이 좋으면 중학생들이 우리 애들을 끼워준다. 그런 날은 서진이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날이다. 서연이는 전동 휠을 타기도 한다. 아이들 얼굴에 땀이 흐르고 운동장 너머 바다에도 어둠이 깔리면 우리는 돌아온다.


이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늘 같이 있다. 공부하고 책 읽고 같이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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