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하던 날의 풍경

by 물지우개

“엄마, 있잖아. 나 너무 떨려.”

한산초등학교 5학년 교실 문 앞에서 서연이가 말했다. 서연이는 전학을 많이 다녔다. 한산초등학교가 벌써 네 번째 학교다. 딸이 비교적 적응을 잘한 덕분에 엄마는 전학이 두렵지 않았다. 처음 전학했을 때 서연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구포초등학교에서 화정초등학교로 옮기던 날은 10월의 첫날이었고 비가 많이 왔다. 서연이반 선생님도 아직 출근 전이지만 나도 출근 전이라 마음이 급했다. 다행히 옆 반 선생님이 우리를 보셨다. 서연의 얼굴을 살필 여유도 없이 옆 반 선생님께 아이를 부탁한 후 떠났다. 그다음부터는 낯선 장면 모두를 서연이가 감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모진 엄마다. 화정초등학교에서 증산초등학교로 전학하던 날은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던 날이다. 지난번과 비슷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집에서 나와 교무실에 들러 전학허가서를 제출했다. 워낙 가깝기 때문에 급한 이유가 없다.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신발을 갈아 신기 위해 신발장으로 가니 이미 정서연, 정서진 이름표가 붙어 있다. 손이 빠른 선생님의 배려에 감사하다. 실내화를 신고 2층, 2학년 교실부터 들렀다. 서진이 선생님은 우리를 반겨주고 편안하게 웃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으니 부족하거나 틀린 것이 있으면 꼭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서연이다. 자신 있게 들어갔던 서진이와는 다르게 서연이는 멈칫거렸다. 손을 만져보니 차다. 많이 긴장하고 있었다. 엄마는 전학이 처음인 서진이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서연이가 더 긴장하고 있었구나. ‘비교적 적응을 잘한 덕분에 전학이 두렵지 않았다’고 생각한 내가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내 딸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모든 것을 내 기준, 내 위주로 판단했다. 아이에게 새 교실로 발을 옮기는 것이 이렇게나 떨리고 긴장한 일인지 미처 몰랐다.


“5학년 선생님 오실 때까지 엄마가 같이 있을까?”


동그랗고 큰 눈이 나를 보고 끄덕인다. 이곳에 와서야 네 눈망울이 보인다. 두 번이나 무심하게 아이를 던져두고 출근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 주지 않기는커녕 출근으로 마음이 급했다. 괜찮을 거라고, 다들 서연이를 반겨 줄 거라고 안심시키며 손을 꽉 잡았다.

이때 6학년 선생님이 나오셨다. 복도에 학부모가 서 있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나도 잘 안다. 6학년 선생님은 환히 웃으시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내가 얼른 떠났으면 하는 눈치다. 서연이를 향해 다시 한번 손을 흔들고 웃어 주었다.

“파이팅! 좀 이따 보자.”


어릴 때 하굣길이 기억난다. 엄마가 집에 있는 날은 하굣길이 신나고 마음이 편했다. 반면 텅 빈 집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학원에 갈 때는 쓸쓸했다. 그러다 아주 가끔은 엄마가 집에 있다가 문을 열어주고 간식을 내어주고 학원을 갈 때 손을 흔들어 주셨다. 그때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아이였다. 아주 가끔은 아침부터 엄마가 많이 팠을 때도 있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내내 엄마를 걱정했다. ‘엄마는 집에 있을까, 병원에 갔을까.’ 그 생각만 했다. 엄마의 부재, 그 차이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아이들을 아주 쓸쓸하게 했다. 전학도 잦고 하교 후 오롯이 혼자였던 서연이는 그동안 많이 쓸쓸했을 것이다. 드디어 이 말을 할 수 있다.


“엄마는 너희들 올 때까지 집에서 기다릴게.”

생각해보면 일을 하고 있을 그때도 나이스에 ‘지참’을 신청하면 됐다. 한두 시간 늦게 출근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다. 동료 선생님들이 한두 시간 우리 반을 봐주는 것이 크게 잘못하는 일은 아니다. 요즘에는 보결 수당도 있다. 그런데 지참을 하는 결재 과정이 불편했고, 수업 없는 선생님께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싫었다. 결국 내 마음 편한 쪽을 선택한 것이다. 불안하고 긴장하는 딸을 알지 못한 채 내버려 두었다. 이제는 아이들을 위해 말할 수 있고, 또 말해야 한다. ‘엄마는, 지금부터 엄마는 너희들을 자세히 살펴볼게. 자주 눈을 볼게. 너희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도록 너희들 이야기를 잘 들을게. 아기 같던 너희들이 벌써 이만큼 컸는데, 지금보다 더 크기 전에 엄마가 많이 안아줄게. 너희들도 엄마에 대해 잘 모르지? 엄마가 무슨 생각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엄마가 말해주지 않았지? 우리 서로 더 많이 이야기하고 알아가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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