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여러 축제

by 물지우개

3월 30일, 드디어 통영국제음악제의 개막공연이다. 멀리서만 보던 통영국제음악당에 처음 가보는 날이다. 4시 배로 나와서 항구 앞에서 저녁을 먹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통영국제음악당을 향해 걸었다. 멀리서 그랬던 것처럼 가까이에서 봐도 웅장하다. 입구를 지나 2층 계단을 오르자 한산도가 보이는 통영 바다가 펼쳐졌다. 난간 끝에 서서 아래를 보니 윤이상의 묘소가 보였다. 이 유해가 여기에 오기까지 통영 안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양자의 논점이 어떻든 그분은 통영이 고향인 현대음악의 거장이다. 올해 음악제의 주제인 ‘귀향’처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 아닐까. 태곳적 엄마 품으로 돌아온 윤이상 선생님은 따뜻해 보였다.

공연 전 음악당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보았다. 이름은 ‘뜨라또리아 델 아르떼’인데 이곳에서 보는 바다도 좋았다. 자유로운 듯 놓여있는 테이블과 의자도 바다와 어울렸다. 문에 붙은 포스터를 보니 레스토랑 안에서 재즈공연도 열리나 보다. 다음에는 여기서 우아하게 마르게리타피자를 먹으며 재즈공연을 봐야겠다.

개막공연은 독일 보훔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주인공이다. 현대음악이 그러하듯 사실 윤이상의 음악은 난해하다. 듣기 편안하지 않다. 낯선 화음과 연주 기법, 멜로디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공연장에 들어가 앉는 순간 윤이상의 음악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가본 그 어떤 공연장보다도 훌륭했다. 공연 석의 배치도 좋았지만, 음향시설이 너무 훌륭해서 음악에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곳이 통영에 있다는 것이 뿌듯할 정도였다. 광주항쟁의 소식을 듣고 그 참상을 표현한 교향곡인 ‘광주여 영원히’는 듣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폭력 군인들이 총을 쏘는 듯한 금관악기, 포탄을 상징하는 듯 엄청난 높이에서 떨어지는 현악기의 글리산도, 민중의 비극적 장면을 표현하는 ‘박’ 소리는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 통곡하는 듯 흐느끼는 목관악기가 슬픔을 폭발하듯 높은음으로 치솟기도 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밝은 미래를 상징하듯 막바지 힘찬 트럼펫 소리도 인상적이었다. 음악이 끝나자 놀란 듯 남편과 나는 마주 보고 손뼉을 쳤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었다.

정경화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젊을 때와 변함없는 열정적 연주와 공연 자세가 아름답고 극적인 선율을 더 빛나게 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한 편의 영화처럼 기승전결이 느껴지는 연주에 감탄했다.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은 정경화의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우리도 사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인파 속에 묻혔다. 하늘하늘하는 시폰 스카프를 날리며 손을 흔드는 정경화의 모습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통영국제음악제는 ‘프린지’라고 부르는 무료공연도 풍성하다. 장소도 통영 곳곳에서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윤이상 기념관 야외무대에서 록 공연도 보고 박물관 안에서 피아노공연도 보았다. 프로나 아마추어 모두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뜨거웠다. 특히 평소 친하게 지내는 대학 동창이 프린지 공연을 하러 통영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서피랑 피아노계단으로 갔다. 자유롭게 듣고 구경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도 앉았다. 건반을 연주하는 친구에게 들꽃을 꺾어 선물했다. 들꽃처럼 수수한 친구와 그 밴드가 사랑스러웠다.


4월 초에는 봉수골 축제도 열린다. 봉수골 꽃길을 따라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데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고 먹거리도 많아 아이들이 재미있어했다. 벚꽃 길을 걷다 전혁림미술관에 들어가 보았다. 통영이 고향인 화가는 바다의 화가라고 불릴 정도로 파란색을 사랑했다고 한다. 작품은 추상화가 많았고 파랑의 색감이 신선하고 화려했다. 미술관의 구조도 특이했는데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과 밖으로 나오는 계단이 지루하지 않게 설계되어 아이들도 신기해했다. 미술관 바로 옆에는 통영서점 ‘봄날의 책방’이 있었다. ‘작은 동네 서점인데 외관부터 내부의 인테리어가 소박한 듯 아름다웠다. 마치 통영을 이미지를 압축시킨 공간 같았다. 바다 책방, 예술가의 방, 책 읽는 부엌, 작가의 방 등 작은 공간마다 통영이 느껴지는 주제가 있었다. 이 공간에 반해서 우리 네 명은 각자 다르게 빠져들었다. 아이들은 신기한 플립 북을 보고 있고 남편은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나는 작가의 방에 걸린 커튼에 반해서 사진을 찍고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라는 한정판 책을 샀다. 통영의 예술성이 압축된 서점에서 귀한 책을 사니 행복해졌다.

8월 중순에는 한산대첩축제도 열린다. 우리는 이미 여름 방학 전에 이 축제의 하나인 ‘거북선 노 젓기 대회’에 대해 들었다. 통영에 있는 동네별로 팀을 이뤄 노 젓기 대회를 하는데 우리 부부가 같이하자는 제안이었다. 한산면을 대표하는 거북선 탑승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내심 걱정이 되었다.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더운 날, 한산면 유니폼을 착용했다. 이날 처음으로 한산면의 행정선도 타보았다. 여객선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 팀을 통영까지 데려다주었다. 도착하자 막대한 임무를 수행하러 가듯 행사장으로 씩씩하게 걸었다. 한산면사무소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음료까지 주시니 어깨가 더 무거웠다. 작년에 한산면이 이 대회에서 1등을 했단다. 남자 8명 여자 4명이 한 팀인데 그중 남편과 나만 올해 새 멤버로 참가한다. 우리가 들어가서 성적이 안 좋으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되어 편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처럼 전날 연습을 하지 못했다. 날이 더운 것보다 긴장이 되어서 내 얼굴에는 땀이 줄줄 흘렀다. 드디어 예선이다. ‘하나둘, 하나둘’ 누군가 구령을 크게 질렀지만 12명의 노는 구령처럼 딱 맞지 않았다. 그래도 워낙 다들 힘이 좋아 다행히 예선을 통과했다. 대기하는 동안에 사람들은 최대한 구령에 노를 맞춰보자고 결의했다. 준결승은 예선보다 속력이 나는 듯했다. 준결승도 통과하고 드디어 결승이다. 마지막으로 배에 오르면서 쓰러지더라도 젓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는 구령에 맞추어 노를 저었다. 헉헉거리는 숨이 턱까지 찼다. 특히 배 끄트머리에서 방향키를 잡으신 분이 반환점에서 방향 전환을 잘해 다른 팀보다 월등히 빠른 속력으로 반환점을 돈 것이 우리 팀의 승부수였다. 결국 한산면은 작년처럼 우승했다. 우승의 기쁨보다 팀에 폐를 끼치지 않은 것 같아 남편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날 획득한 상금은 기부했고 배 터지게 고기를 먹었다. 우리 부부를 한산면 대표로 흔쾌히 끼워주셔서 지금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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