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풍뎅이와 도둑게

by 물지우개

“아빠가 산에서 잡았어!”


등산을 갔다 온 남편은 장수풍뎅이를 데려왔다. 제법 크기가 컸다. 아빠 말에 서진이는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2학년 교실에는 선생님이 데려온 장수풍뎅이가 몇 마리 있는데 서진이는 그것을 특히 좋아했다. 저녁에 공부하러 도서관에 올라가도 맨 먼저 교실에 가서 장수풍뎅이가 잘 있는지 확인할 정도였다. 아빠가 교실에 있는 것보다 더 큰 장수풍뎅이를 잡은 것이다.


“아빠, 교실에 가져가서 키워도 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서진이는 그 장수풍뎅이를 교실에 데려갔다. 서진이는 어릴 때부터 곤충 사랑이 남달랐다. 책도 곤충 책을 특히 좋아한다.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만 나온 꽤 두꺼운 책도 흥미롭게 읽었다. 사진만 봐도 이름을 다 외울 정도다. 서진이는 그 장수풍뎅이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은 나에게 종종 들려주었다. 그 얘기를 할 때만큼은 눈이 빛났다. 여름 방학 때 서울에 가 있을 기회가 있어 아이들을 일산 킨텍스 곤충박람회에 데려갔다. 엄청나게 많은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보고 서진이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처음 보는 종류에 내 핸드폰을 가져가 사진을 찍었고, 직접 만지는 부스에서는 자기가 도우미형보다 더 잘 아는 듯 우쭐댔다. 나를 판매 부스로 끌고 가서는 곤충 젤리와 톱밥, 놀이 목을 사달라고 졸랐다.


하루는 친구들과 등산길 입구에서 놀다가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찾았단다. 집을 만들어 줘야 하니 적당한 통과 톱밥을 내놓으라고 야단이다. 인터넷으로 급히 사 주었다. 등산을 하러 가서도 서진이는 산에서 참나무만 찾았다. 참나무에 장수풍뎅이가 많이 산다며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안타깝게도 장수풍뎅이의 수명은 길지 않았다. 몇 달 지나 갑자기 죽었는데 자기 반 아이들과 함께 무덤을 만들어주고 나뭇가지도 꽂아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정을 쏟았는데 슬프지 않냐 물으니 그게 장수풍뎅이의 수명이라며 덤덤하게 말한다. 자연으로 돌아간 거란다.

덕분에 서진이는 장래희망이 확실해졌다. 생물학자가 되고 싶단다. 생물학자를 하면 돈을 많이 버느냐고 물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냐 물으니 그건 아닌데 돈이 없으면 곤충연구소를 세울 수가 없단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닌데 돈을 아예 못 버는 것도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괜찮단다. 어른이 되어 다시 한산도에 와서 이곳의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연구하는 곤충연구소를 세우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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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말이 소고포 가는 길에 도둑게가 많단다. 낮이 긴 어느 여름 저녁 남편은 애들을 태우고 소고포로 가서 몇 시간 후에 도둑게 2마리를 잡아 왔다. 나더러 보라며 뚜껑을 살짝 열어 주었다. 도둑게는 가로는 가운뎃손가락만 했고 세로는 엄지손가락만 했다. 짙은 빨간 색이었다. 잠시 보는 사이 도둑게는 탈출했다. 순식간에 우리 집 어딘가로 숨어 버렸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빨리 찾아야 한다고 소리쳤다. 아이들이 이불을 들치니 도망간 도둑게가 보였다. 잽싸게 잡아서 다시 통에 넣었다. 남편에게 이름이 왜 도둑게냐고 물으니 도둑처럼 남의 집 음식을 훔쳐 먹어서 도둑게란다. 그러고 보니 도둑처럼 속도도 빠르다. 도둑게와 함께 하는 첫날 밤 우리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두 마리가 통을 탈출하고 싶어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움직였기 때문이다. 집게로 통을 더듬는 그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저러다 통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보내주자. 도둑게도 사람도 못 할 짓이다.”


애들은 얼마나 힘들게 잡은 건데 엄마는 이렇게 쉽게 보내 주냐며 원망했다. 아이들이 눈빛이 간절하다. 그래도 저렇게 자유를 외치는데 가둘 수는 없다 하니 남편이 협상안을 내놓았다. 베란다에 풀어놓고 키우잔다. 세탁기도 빨래도 널려 있는데 그 위를 기어 다니면 어떻게 하냐 했더니 괜찮을 거라고 한다. 아이들과 남편이 도둑게에게 베란다만큼의 자유를 허락한 후 내 아침 일과는 세탁기 속부터 확인하는 일로 시작했다. 베란다에 보일 때도 있었고 안보일 때도 있었다. 집안에만 안 들어오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어느 날 베란다에서 빨래를 너는데 도둑게가 보였다. 도둑게도 나를 보았다. 도둑게의 눈동자가 정확히 나를 향해 있었다. 순간 무서웠다. 나를 향해 돌진할 것 같았다. 그런데 눈을 한번 껌뻑이고 한 바퀴 빙글 돌리더니 집게로 눈을 비비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실 눈을 비빈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모양이 세상 순진한 모습이라 웃음이 났다. 도둑게의 별명이 스마일 크랩이라는데 등딱지의 무늬가 그 눈과 함께 보니 아주 스마일이다. 그 재빠르던 녀석이 며칠 만에 심드렁하니 천하태평 세상 느긋한 게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 모습에 이제는 보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연이, 서진이가 원망해도 할 수 없었다. 인간의 욕심으로 자연의 본성을 잃는 게가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베란다 방충망을 활짝 열었다. 처음에는 그쪽으로 향하지 않더니 한 마리가 넘으려 하자 어디서 숨어있던 다른 하나가 따라서 왔다. 이내 둘 다 창틀을 넘어가서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 마음대로 도둑게를 보내줬다고 애들은 뿔을 냈다. 나는 재빠른 몸으로 도둑처럼 여기저기서 밥을 얻어먹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본성을 잃어버릴 뻔한 기억을 거울삼아 다시는 인간에게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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