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항전망대, 자전거 사고

by 물지우개

무서운 꿈이었다. 신나게 자전거를 타던 중 한쪽으로 몸이 쏠리면서 수풀로 몸이 날아가는 꿈이었다. 붕 뜨는 몸에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눈을 뜨고도 그 느낌이 생생했다. 꿈이라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2학기 개학을 하고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아이들이 등교하자마자 대충 집을 정리하고 집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는 시간은 오후인데 오늘은 오전에 나가고 싶었다. 오후에 날이 흐리다는 일기예보 탓도 있고 숙제를 빨리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라이딩이 숙제는 아니지만, 요즘엔 꼭 해야 하는 운동처럼 타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급한 마음이었는지 장갑은 꼈는데 헬멧을 빠뜨렸다.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 오래 타지 않을 생각이라 그냥 가기로 했다. 꿈도 헬멧도 시작부터 불안했다.

타다 보니 바람도 시원하고 공기도 맑아서 불안한 기분은 어느새 잊어버렸다. 이번 여름은 특히나 더웠다. 아파

트에 있으면 숨이 턱턱 막혀 에어컨을 틀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방학 때 서울에 일주일 동안 있었는데 낮에는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더웠다. 그러다가 섬에 오니 어찌나 쾌적한지, 육지는 폭염경보가 떠도 이곳은 예외였다. 무덥긴 해도 낮에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요즘 매일 자전거를 타는 까닭도 그동안 내 몸에 쌓였던 더위에너지가 페달의 회전에너지로 전환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덥다 싶으면 바람이 불어와 이내 땀을 식혀 주니 재미가 났다. 하포나 장곡까지만 다녀오겠다는 나의 계획은 자연스럽게 바뀌어 어느새 대촌에 이르렀다.

대촌 정자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땀을 식혔다. 신발을 벗고 누워서 잠시 바람을 맞고 있으니 다리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이내 일어나 의항 쪽으로 달렸다. 의항에 정박한 요트를 보고 있으니 비슷해 보여도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었다. 이 배의 주인은 한산도 주민일까, 혹시 아는 분 중에 있으면 태워달라고 조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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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항에서 하천을 건너 왼쪽 길로 갔다. 오른쪽으로 가면 문어포로 가는 숲길이 나온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왼쪽 길로 들어섰다. 낮은 오르막을 오르니 이내 길이 끝나버린다. 그런데 여기는 바다를 보는 전망대 인가보다.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바다 쪽을 향해서 벤치가 두세 개 놓여있다. 저 멀리 장작지와 하포로 넘어가는 고개 보였다. 이 방향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파도가 만들어내는 절벽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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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하천을 건너고 대촌을 지나 신거를 옆에 두고 장작지로 넘어가는 고개로 올랐다. 내가 가본 한산도의 경사길 중 여기가 가장 가파르다. 다시 바닥 흰 선에 시선을 고정하고 자전거와 함께 오르니 이내 정점이다. 오늘은 생각보다 금방 다다른 것 같다. 이마에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심장이 마구 뛰고 있었다. 곧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내리막길이 반가웠다.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천천히 내려가려 애썼다. 시선을 멀리 둘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바닥에 유난히 돌이 많아 보였기에 큰 돌을 밟지 않도록 방향 조정에 집중했다. 그런데 갑자기 자전거가 푹 쓰러졌다. 몸이 살짝 뜨면서 땅바닥으로 철퍼덕 넘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왼쪽 뺨을 바닥에 두고 엎드려 있었다. 얼굴과 이마에 쓰라린 통증이 느껴졌다. 왼쪽 손도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픈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보니 앞바퀴 타이어가 터진 것이 보였다. 바퀴가 터지면서 자전거가 갑자기 쓰러졌고 내 몸도 앞으로 꼬꾸라진 것이었다. 발은 괜찮은데 골반이 바닥에 부딪혔는지 걷기도 힘들었다. 내리막은 아직 인데 도저히 자전거를 끌고 내려갈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지금 집안일로 진주에 갔다. 나를 도와줄 만한 사람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행히 장갑은 끼고 있어 손바닥에는 큰 상처가 없었다. 문제는 벌써 부어오르는 왼쪽 새끼손가락 관절이었다. 장갑을 벗고 왼쪽 뺨을 만지니 상처가 났는지 피도 묻어났다. 아프기도 하지만 넘어진 내 모습이 창피하기도 했다. 나를 본 사람이 없는 것이 불행인 것인지 다행인 것인지 몰라도 살짝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전거를 붙잡고 한 발자국씩 천천히 내려가니 저 멀리 장작지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저기까지만 가면 마을버스를 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한참 멀어 보였다. 다시 자전거를 눕히고 길가에 앉았다. 나 자신이 바보 같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예지몽 같았던 꿈 생각을 하니 섬뜩하기도 했다. 남편에게 전화하니 불같이 화를 낸다.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라 화를 내는 남편도 이해가 됐다. 허탈하게 앉아서 공방 식구들에게 이 황당한 상황을 알렸다. ‘살려주세요. 어이없게 넘어졌어요.’라고 시작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바로 공방 선생님이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냐고 다급하게 물었다. 천천히 내려가면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서 쉬고 있다고 했다. 선생님은 일단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보란다. 나를 데리러 갈만한 사람을 찾아보시겠단다. 조금 있으니 다시 전화가 왔다. 남자분인데 정확한 내 위치를 물어보셨다. 신거에서 장작지로 넘어가는 내리막길이라고 했다. 조금만 기다리란다. 곧 오신단다.

흰 트럭이 도착했다. 어디서 뵌 분 같기도 한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였다. 그분은 나를 보자 잠시 놀라시더니 백마 탄 기사처럼 트럭에 자전거와 나를 싣고 빠르게 보건소로 달렸다. 내 몰골을 본 보건소 직원분들은 깜짝 놀랐다. 응급처치를 해주시고는 빨리 통영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한다. 남편도 섬에 없고 아이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하교 후 아이들이 내 얼굴을 보고 많이 다쳤냐고 울먹였다. 거울을 보니 나도 내 얼굴이 무섭다. 얼굴 반쪽이 보라색이 되고 특히 눈이 많이 부어 흉측했다. 그간 한산도의 많은 곳을 다녔고 그 길이 처음도 아닌데 이런 사고가 난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넘어졌는데 이 정도에 그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고는 전적으로 내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다. 우선 내리막길에서는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갔어야 했다. 헬멧을 반드시 착용해야 했다. 너무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지 말았어야 했다. 꿈을 기억했어야 했다. 소설가 ‘이외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을 보고 그는 반성하고 있는 것이니 비웃지 말라고 했다. 상처가 회복될 때까지 병원 치료를 받으며 꽤 오랫동안 반성했다.

위급할 때는 112나 119로 전화해야 한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다 아는 사실인데 그때는 왜 생각이 안 났는지 모르겠다. 위급전화를 할 만큼 내 사고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112나 119로 전화했으면 한산면에 있는 경찰분이 오셔서 빠르게 도와주셨을 것이다. 이런 사고가 처음이라 침착하게 판단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를 도와주신 공방 선생님과 백마 탄 주민자치회부위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자전거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안전하게 행동하고, 침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실을 온몸으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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