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무봉 조각천

by 물지우개


핸드메이드 작품을 만들고 나면 늘 조각천이 남는다. 제법 큰 조각천은 두었다가 다른 옷 일부로 쓸 수 있지만, 손바닥만 한 조각 천으로는 옷을 만들 수 없다. 옷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버린다. 나도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버렸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그 천이 아까웠다. 채소를 다듬고 버려지는 진잎에게도 그러했든 작품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버려져야 하는 조각천의 운명이 슬펐다. 채소 진잎은 어쩔 수 없더라도 조각천은 버릴 수가 없었다. 반듯하게 잘라 이으면 뭔가 만들 수 있는 크기가 될 것 같았다.


조각천을 몽땅 모았다. 조각천들은 그동안의 내 작품을 기록한 역사였다. 내가 입기도 하고, 가족이 입기도 하고,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한 옷들이 영화처럼 지나갔다. 소매를 자르고 남은 부분, 바지를 자르고 남은 부분은 조각만 봐도 딱 티가 난다. 화려한 공연이 끝난 뒤 찾아오는 허탈감처럼 조각천은 무력해졌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펼쳐서 다림질했다. 재봉하기 좋도록 반듯하게 줄을 그어 자르고 자른 선의 길이가 비슷한 것끼리 모아서 연결했다. 재봉한 다음에는 오버록을 하고 다시 겉에서 시접이 고정되도록 상침 했다. 그렇게 모으니 제법 큰 크기가 되었다. ‘티끌 모아 태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각천 모아 반 마’정도는 될 듯하다. 반 마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작은 앞치마나 손가방 정도이다. 그런데 그걸 만들려면 다시 재단해야 한다. 또 잘려나가는 부분이 생긴다는 말이다. 겨우 심폐소생 시킨 천을 다시 잘려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 조각을 모은 이 반 마를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무릎 덮개를 떠올렸다. 운전하거나 책상에 앉아 있으면 다리가 추울 때 쓰는 무릎 덮개를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무릎 덮개는 굳이 자를 필요가 없다. 이은 조각천 뒤편에 톡톡한 원단을 덧대기만 하면 된다. 천을 덧대면 시접도 가려지고 보온성도 올라간다. 네 테두리를 창구멍을 남긴 채 반듯하게 박았다. 창구멍으로 뒤집고 다시 테두리를 상침 하니 독특하면서도 귀여운 느낌을 주었다. 커다란 원단 하나로 만든 것과는 다른 색다른 느낌이었다. 데칼코마니가 주는 우연의 효과에 감탄하듯 조각천이 주는 우연의 효과가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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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기로 된 조각천은 거의 버리지 않았다. 도저히 회생 불가능한 크기는 어쩔 수 없더라도 다시 태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차곡차곡 모았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앞치마를 만들 때 그 조각천을 활용했다. 그때는 무조건 사각형을 향해 잇지 않고 패턴을 아래 놓고 패턴에 가깝도록 조각을 얹어 연결했다. 버려지는 천을 최소한으로 하도록 미리 예방하는 것이다. 모아진 조각천 위에 다시 패턴을 얹고 재단했다. 재봉틀과 오버록을 오가다 테두리를 바이어스로 깔끔하게 싸니 큰 원단으로 만든 부분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역시 조각천이 주는 우연의 효과는 큰 원단이 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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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로 된 긴치마를 만들 때도 조각천을 활용했다. 치마 디자인 자체가 여러 부분을 잇는 스타일이라 조각천이 떠올랐다. 큰 원단과 조각천을 7:3으로 배치했다. 조각천으로만 치마를 만들면 정신이 없을 것 같아 큰 원단을 주로 하고 조각천이 포인트가 되도록 설계했다. 공방식구들은 열심히 조각을 잇고 있는 나를 보며 그러다 누더기가 될 수 있다고 놀렸지만 기대해 보라며 열심히 천을 이었다. 역시 조각천은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패턴 책에 나와 있는 사진보다도 내 치마가 더 예뻐 보였다. 누더기라 놀려도 괜찮다. 내 눈에는 길에 아무렇게 난 핀 꽃이 더 예쁘고, 삐뚤빼뚤한 데다 맞춤법도 엉망인 1학년 아이의 편지가 더 감동적이다. 음정과 박자가 맞지 않은 아기의 노래가 더 신나고 장애인들의 공연에 더 눈물이 난다. 버려졌을 작은 조각들이 이어져서 하나가 되고 그것이 다시 작품 일부가 되면 누더기라 놀려도 좋았다. 내 눈에는 매끈한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조각천은 충분히 대견하고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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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무봉(天衣無縫) 일부러 꾸민 데 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면서 완전함을 이르는 말. 완전무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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